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익 창출'이다. 아무리 이윤을 나누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소위 '사회적 기업'이라는 '양의 탈'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이익을 창출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지닌 늑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결국 그조차도 '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한 합리적인 선택이고, 그로 인해 더 큰 이익이 창출된다는 계산이 서 있는 영리한 판단일 뿐이다. 가령, 기업들은 '소비자를 위해서'라는 달콤한 말을 곧잘 쓰곤 한다. '저희는 고객님들만을 생각합니다. 많은 혜택을 드리겠습니다'처럼 말이다. 매력적인 CF와 매혹적인 모델들을 써가며 여러가지 홍보를 펼치지만, 역시 본질은 '늑대'와 '속임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쯤에서 논란의 CGV를 살펴보자.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인 CGV는 지난 3일부터 영화관람료를 차등화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우선, 기존의 조조, 주간, 프라임, 심야 등 4단계로 구분되어 있던 시간대를 모닝, 브런치, 데이라이트, 프라임, 문라이트, 나이트 등 6단계로 잘게 쪼개 가격을 차등화했다. '시간대'를 기준으로 영화 티켓 가격에 차이를 두는 것은 기존에도 있었던 방식이라 '세분화'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무덤덤한 편이다.
하지만 극장의 좌석을 '이코노미존(1,000원 싸게)', '스탠더드', '프라임존(1000원 비싸게)'으로 나누고, 좌석에 따라 가격을 차등화한 부분에 대해서는 강한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대해 CGV 측은 "스크린과 가까운 앞쪽 자리의 관객 선호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관람료를 내야 했던 불편함을 개선했다. 가격 다양화를 통해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마치 '소비자(관객)'을 위한 것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기업의 행위의 본질은 '이익 창출'에 있다는 사실을 점검했다. CGV의 가격 차등화도 역시 극장 수입을 높이기 위한 것일 뿐이다. 아무래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스크린을 쳐다봐야 하는 고역을 감수해야만 하는 앞 좌석(이코노미존)을 선호하는 관객은 없을 것이기에 '이코노미존'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은 이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 무엇이든 선택지가 복잡해지면 소비자에겐 불리하다. 일부 '영리한' 소비자들은 약간의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수의 '평범한' 소비자들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고, 이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기업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
'매진(에 가까운 관객이 들었을 경우)'의 경우에 약간의 손해가 발생하겠지만, 전체 좌석 중 20%에 불과한 이코노미존의 마이너스는 35%의 프라임존의 플러스로 만회하고도 남는다. 언론에서는 '사실상 가격 인상'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굳이 '사실상'이란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가격 인상'을 한 셈이다. 동부증권의 권윤구 연구원은 "이번 정책 시행으로 최소 1.5% 이상 ATP(평균티켓가격)가 인상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CGV 측의 진짜 속내와 여전한 헛소리
"공연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영화 가격 인상에는 유독 민감한 것 같다. 영화관의 월세와 인건비가 매년 오르고 있어 가격을 인상할 필요가 있었다. 대신 평일 낮 시간과 야간 시간의 영화 가격은 인하돼 대학생이나 중장년층 등이 더 싸게 볼 수 있게 된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CGV는 왜 이런 짓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실제로 영화계에서 티켓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CGV의 티켓 매출 증가율을 살펴보면, 2012년 22.9%, 2013년 15.9%, 2015년 2%로 뚜렷한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2015년 영화 관객 수는 2억 1,729만 명이었는데, 이는 2013년에 비해 고작 1.8% 증가한 것이다. 어찌보면 한국 영화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티켓 매출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극장의 유지비는 점차 늘어나고 있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매점과 광고를 통해 관객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는 실정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약 10분 가량 '강제 시청'하게 되는 광고로 CGV는 지난 2015년 933억 원을 벌어들였다. 2011년 642억에 비해 크게 늘었다. 또, 과도하게 부풀려진 팝콘과 콜라 등으로 인한 수익은 1,538억 원에 달한다. 2011년 899억 원에 비해 약 2배 가량 증가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팝콘을 많이 사먹기 시작한 것일까?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솔직하지 못한 게 가장 큰 패착"이라며 CGV의 '눈 가리고 아웅'식 가격 인상을 꼬집었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관객들에게 그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순서 아닐까? 그리고 정작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그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개선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관객 서비스로 환원되는 것은 팝콘의 질이 좋아지느냐가 아니라,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국내 멀티플렉스들은 하드웨어적인 시설 투자를 어마어마하게 하면서 적자를 자초하고 있다. 그들이 충족시켜야 할 관객들의 욕구는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려는 욕구다. 그런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다양한 영화에 대한 요구, 광고를 강제 시청해야 하는 불만과 짜증, 비싸도 너무 비싼 팝콥 · 콜라 가격 논란 등 CGV를 비롯한 멀티플렉스들이 안고 있는 '숙제'는 여전히 미뤄두고서 그저 '꼼수'를 통해 가격 인상만을 꾀하는 저 기업들의 늑대스러움이 가증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CGV는 광고물량을 이재현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재산커뮤니케이션즈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완벽히' 속일 수 없다면, 차라리 '정직한' 것이 훨씬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그들의 존재 이유가 '이익 창출'일 수밖에 없는데, 어설프게 '고객'을 위한다는 거짓부렁을 늘어놓는다면 지금처럼 '역풍'에 휩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관객들은 '시간에 따라' 가격을 차등화하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시간'은 전적으로 '선택'의 영역에 속했지만, '공간'을 건드린 건 좀 다른 문제다. 영역이 넓어 그것이 100% 선택의 영역에 속하지 않기도 하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로 나뉜 채 다른 돈을 내고 영화를 본다는 건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이것이 일반 공연과는 차별화되는 (가장 친근하고 밀접한, 서민적 문화 생활로서) 영화가 지닌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독과점'의 지위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CGV이기에 비난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차라리 (영화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영화 티켓 가격을 인상하고, 매점의 가격을 합리화하는 건 어떨까? 더불어 고질적인 광고 문제도 해결하고 말이다. 그런 방향으로 접근한다면, 관객들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환영하고 나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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