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지위 향상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김대중 정부가 2001년 발족(發足)시킨 여성부는 2005년 통합적인 가족 정책을 관장하는 여성가족부로 확대 · 개편된다. 정권이 바뀐 2008년 다시 여성부로 쪼그라들었다가, 2010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청소년 및 다문화 가족을 포함한 가족 기능을 다시 가져와 지금의 여성가족부(女性家族部, Ministry of the Gender Equality & Family)가 된다.
김대중 정부가 여성부를 만든 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는 여성의 권익을 지키고자 하는 세계적인 흐름(1970년대 후반 프랑스를 시작으로 세계 일부 국가에서 여성부 신설)에 따른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헌법적 가치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를 보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그 진정한 의미와 역할에 비해 (특히 대한민국에선)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는 여가부를 지탄하는 글이 어김없이 등장하고(게다가 엄청난 '공감'을 얻곤 한다), 어떤 포털의 게시판에는 '여가부 폐지' 청원이 연일 올라오곤 한다. 물론 그동안 여가부가 저질렀던 '헛발질'들을 모른 채 하긴 어렵지만, 지나치게 과도한 비난을 받는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다.
-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
그랬던 여가부가 오랜만에 '나이스 샷'을 외쳤다. 지난 14일 '제60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 맨허튼으로 떠났던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은 "아동 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무적인 부모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 부평 아동학대사건에 치를 떤 많은 사람들은 '부모교육의 의무화'라는 소신을 밝힌 강 장관의 발언에 절실히 동의했고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물론 그는 위안부 합의를 옹호하는 발언("우리가 협상을 했고, 이미 한 협상은 존중해야 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을 하면서 벌어뒀던 점수를 죄다 까먹고 말았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스탠스가 그 정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더라도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됐든 '아동 폭력'의 '원인'을 아이들이 자신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탓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탁월하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부모)교육'으로 풀려고 한 방향성 역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동학대의 가해자가 계모나 어린이집 교사라는 (언론의 보도 때문에 생긴)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아동학대 가해자 최대 가해자는 친부모(2014년 아동학대 판정 건 수의 77.2%가 친부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건 어찌보면 통계적으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친)부모의 사랑은 흔히 '아가페(agape)'에 비유되기도 하고, '내리사랑'의 절대성은 간혹 너무 쉽게 옹호되곤 하지만, 친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아무래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비율이 높은 것은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친부모가 저지르는 아동 폭력(을 넘어 아동학대)이 정상적이라 할 순 없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이 둘째의 설움에 마음이 단단히 상한 덕선에게 "아빠 엄마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래.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는데, 그만큼 우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부모'가 된다. 부모의 의미에서부터 그 역할과 책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과정은 사실상 없다. 그저 '나의 부모'로부터 고스란히 '답습'하거나 혹은 '거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전근대적 인식,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한 낮은 경각심 등은 가정 내에 아동 폭력이 양산되는 루트로 작용한다. 게다가 이런 인식 속에서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저질러지는 '폭력'들은 언제든지 '학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유영철과 정남규, 강호순을 비롯해서 최근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연쇄살인범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아동학대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이 문제가 가벼운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강은희 장관은 "결혼신고를 할 때 의무적으로 부모교육을 받게 하거나 임신했을 때 정부에서 지급하는 바우처에 부모교육을 연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법론을 언급했다. 선진국에서는 부모교육이 의무화되어 있는 실정이고, 서울시도 부모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명주 서울시 가족담당관은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바로 부모교육의 핵심"이라 밝혔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 그것이 부모교육의 핵심이자 궁극적 목표가 될 것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현실성 있게' 진행된다면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가 되어야만 했던 엄마와 아빠들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는 '자녀 체벌'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체벌' 자체에 지나치게 관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인식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연합(EU) 국가에서는 부모의 자녀 체벌이 법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세상에 '맞을 짓'이란 애시당초 있을 수 없고, 잘못을 가르치기 위해 누군가를 '때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잘못을 했기 때문에 맞아야 한다'는 생각은 폭력에 대한 내성을 기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때려도 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물론 물리적인 '체벌'뿐만 아니라 정시적 학대와 언어적 학대를 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별다른 논의 없이 '교육'을 통해서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교육의 의무화는 늘어나는 아동 학대와 이미 빈번히 이뤄지고 있는 아동 폭력을 바로잡고, 이를 넘어 붕괴되고 있는 '가정'을 복원하고 가족의 끈끈함을 되살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부모'가 되는 것이 끝이 아니라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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