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동작구는 정말 호화청사를 건립하려는 것일까?

너의길을가라 2016. 4. 2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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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구청, 주민센터 등 전국의 지자체(地自體)들이 마치 경쟁하듯 쌓아올린 으리으리('비까번쩍'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일본어 '삐까삐까(ぴかぴか)'로부터 비롯된 말이기에 지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한 공공건축물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곤 한다. '못 해도 수 백 억은 들어갔을 텐데, 저 돈이면…' 같은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지자체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황에서 마구잡이 식으로 예산을 책정해 '공공건축물'을 짓고 보는 건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물론 2016년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52.5%로 최근 5년 사이 최고지를 기록하면서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의 1/3에 해당하는 75곳의 기초자치단체가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구석구석 뒤져보면 상황은 더 열악할 것이라 짐작된다.


'토건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지방의 토호 세력, 즉 '토건족'들을 배불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그 예산을 좀더 '가치 있는' 곳에 쓸 수는 없었을까, 라는 아쉬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인 혹은 지자체장들이 '대형 건축물'을 짓는 까닭은 그 자신의 '(정치적) 욕망'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건축을 통해 자연의 풍경을 변화시키는 것과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심리적 유사성을 가진다. 시민 개개인의 의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권력자에게는 도시 전체를 인형의 집 크기로 축소한 모형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 건축은 자의식이 약한 사람들의 자의식을 부추긴다. 그런 사람들은 점점 더 건축에 집착하다가 마침내 건축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되고, 더 큰 규모로 건물을 짓고 또 지으면서 중독자가 된다." 


데얀 수딕(영국 건축가), 『거대건축이라는 욕망』


강준만은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4'라는 부제가 붙은 『독선사회』라는 책에서 '왜 정치인들은 대형 건축물에 집착하는가?'라는 챕터에서 '거대건축 콤플렉스'를 다루고 있다. '정치인들이 '거대건축 콤플렉스를 갖는 이유'는 '자신의 업적을 가시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시각주의' 효과를 노리기 때문'인데, 이것은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가령 MB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대표적인 토건 사업인 '청계천 복원'과 '4대강 사업'은 '시각주의 원리'에 따른 것이었고, 제20대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하며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가 정세균 당선자에게 '완패'하고 만 오세훈 전 시장이 서울시장에 재직하던 시기 2,989억 원을 들여 서울시청을 지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김대식은 "오세훈 시장이 만든 서울시청 건물을 보면서 저는 대통령직에 대한 그의 열망을 읽어요. 랜드마크 건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거겠죠. 그 뻔한 욕망을 숨기는 게 보기 싫습니다.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그의 열망이 짝퉁이기 때문에 더 싫어요. 청계천을 복원해 대통령까지 간 건 이미 이명박으로 끝난 길"이라고 꼬집었다. 



서울 동작구가 1,809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신청사(종합행정타운)를 건립하겠다고 나섰을 때, 이런 시각에 입각해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것이 사실이다. <중앙일보>는 동작구의 재정자립도가 28.7%에 불과하다면서 비판에 열을 올랐다. (동작구청, 1800억원 들여 신청사 짓는다는데..)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맥락'과 무관한 것들이 많았지만)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비판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 사업은 '비용보다 편익이 큰 공공투자사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동작구의 장승배기 종합행정타운 조성 계획안은 행정자치부의 타당성 심의를 통과했다. 500억 이상(그렇다면 500억 미만의 사업은 심의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얘긴데, 이것이 '허점'은 아닐까?)을 투자하는 공공건축사업은 이 심의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구 관계자에 따르면, "행자부가 호화 청사 논란을 의식해 새 청사 건립을 잘 승인하지 않는데 우리 신청사에 대해서는 경제·정책적 타당성을 좋게 평가했다"고 한다. 남은 절차는 서울시의 투자 심사뿐인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동장구 신년인사회에서 "그동안 자치구 신청사 건립을 반대해왔지만, 동작구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가능할 것 같다"며 협조를 약속했던 점을 미뤄보면 심사 통과는 충분해 보인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좀 살펴보자. 지난 13일 행정자치부 산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결과보고서를 통해 장승배기 종합행정타운이 경제적 타당성과 정책적 타당성을 모두 확보했다고 발표했고, 박원순 시장의 '동장구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 동작구는 1,809억 원에 달하는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계획인 것일까? 


동작구에 따르면, 현 노량진 청사부지(동작구청사 · 구의회 부지) 매각대금이 1,329억 원으로 재원조달 금액의 총 68%를 차지한다고 한다. 여기에 서울시 특별교부금으로 건축비의 50%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추가 잉여분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경제적 타당성 즉, 비용편익(B/C)분석 결과가 1.1을 상회하는 근거다. 



최낙현 동작구 행정타운건립추진단장은 신청사 건축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동작구 상업가능지역(상업+준주거) 비율은 전체 면적의 2.95%,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하위 수준으로 전체 상업지역중 47.6%가 노량진역세권에 편중돼 있고 이중 절반은 수산시장·구청·경찰서 등이 차지하고 있다. 공공청사의 비효율적 토지활용이 지역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동장구의 상업가능지역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4위인데, 상업 지역에 구청과 경찰서 등이 자리하고 있어 개발이 여의치 않다. 구청과 경찰서가 지역 노른자 땅을 차지하고 있어 지역 개발에 어려움을 줬던 것이 사실이다. 또, 노량진역 인근에 있는 구청사는 1980년에 세워진 이후 36년 동안 개·증축을 한 번도 하지 않아 건물 안전도 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작구는 상도2동 영도시장 일대에 종합행정타운을 만들어 구청사와 구의회, 시설관리공단을 입주시키기로 했고, 경찰서와 소방서의 이전도 추진 중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이효 총괄연구원은 "종합적으로 행정타운 건립사업은 안전문제 해결을 비롯 행정효율을 제고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돼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업"이라 설명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호화 청사'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 단장은 "행정자치부의 타당성 조사 결과 리모델링과 수직증축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호화청사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공간활용성이 높도록 디자인을 사각형으로 하고 대지도 다른 자치구에 비해 넓지 않다"고 해명했다. 주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작구의 발전을 위해 장승배기 종합행정타운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종합행정타운 건립은 지역 여론을 반영한 이창우(46) 서울 동작구청장의 '공약'이었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장 226명 가운데 최연소인 그는 소위 '진보 정권' 10년의 핵심부의 숨은 조력자로 평가([자치단체장 25시] 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 받는 인물이다. "내 정치 철학과 행동, 의사결정 과정 등은 하나도 빠짐없이 노 대통령께 배운 것"이라는 이 구청장은 풀뿌리 정치를 강조했던 노 대통령의 생각을 이어받아 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노량진 컵밥거리'를 조성했던 것에서 그의 '추진력'과 '지구력'을 엿볼 수 있다. 통행불편을 호소하는 민원과 생존권을 주장하는 상인 사이에서 훌륭한 '대안'을 찾아냈다. 또, 만 60세~71세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대행업체 '동작구 어르신 행복주식회사'는 기초지자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나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구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동장구가 '생활임금'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최저 수준의 삶을 보장(하는지 의문스럽다)하는 '최저임금'과는 달리 '생활임금'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주거비, 교육비, 문화비 등을 고려해서 책정한 임금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최저 임금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활 임금'을 도입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동작구인 것이다. (참고로 동작구의 생활임금은 7,185원)


이런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 동작구라면 종합행정타운 건립에 대해서도 (약간의) 신뢰를 보낼 만 하지 않을까? 분명 '랜드마크'를 세워서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려는 여타의 경우들과는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지만) 차별점이 보인다. 물론 꼼꼼하게 따져보고, 만약 줄일 수 있는 예산이 있다면 삭감하는 등 신중함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고, 서울시의 특별교부금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다만, 덮어놓고 '호화청사'라 손가락질하며 비판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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