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비정상적인 공시 열풍? 사람답게 살고 싶은 바람은 당연한 것

너의길을가라 2016. 4. 1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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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지난 9일,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이 치러졌다. 17개 시 · 도 306개 시험장 7,764개 교실에 무려 16만 3,791명의 응시생들이 가득 들어찼다. 최대 규모의 응시 인원이다. 응시율은 73.5%로 작년의 74.2%에 비해 다소 낮아졌지만, 선발 규모가 다소(420명) 늘면서 그 바람에 응시자들도 늘어난 것이다. 경쟁률은 39.7:1, 그 가운데 허수(虛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치열함과 절박함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공시 열풍은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인 나라, 부모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공무원'이 돼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은 장래희망을 적는 난에 자연스레 '공무원', 세 글자를 기입한다. 9급 공채 시험 지원자의 평균 연령은 28.5세인데, 그 중 20대가 63.8%(14만 2002명)를 차지하고, 30대는 30%(6만 6,779명)다.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인생을 '올인'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몇 번째 응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시험을 많이 봤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또 보게 된다. 작년 말에 기업 임원 차량 운전사로 취직했지만 출근해서도 시간이 빌 때는 시험공부를 한다" (35세 직장인 공시생 김모씨)


공무원의 미덕은 '안정'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이고, 삶이란 여러 층위의 '울타리'를 구축해 그것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봤을 때,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다수의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불사르고 있는 '공시 열풍'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일이다. 


한편, 인간의 미덕은 '도전'이 아니겠는가? 정신을 억압하는 공포를 이겨내고, 동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두려운 한 걸음을 내딛고야마는 것. 그것이 인간이 지구를 살아낸 방식, 우리를 존재케 한 숭고한 힘이 아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공시 열풍'은 기이하고 비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려 오로지 '안정'만을 희구하는 사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민낯이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기성세대'들은 미안한 마음을 갖거나 반성을 하기는커녕 저들을 향해 혀를 차고 한심하다는 듯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물론 선량한 '어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요즘 청년들은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느니, '우리 때와는 달리 노력을 안 한다'는 식의 시대몰이해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헛소리'가 난무(亂舞)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1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MB는 신년인사에서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하는 청년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며 (진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가슴 아파했지만, 그 역시 자신의 세대와 자신의 성공에 비추어 지금의 청년들에게 '도전정신'이 없다며 훈계나 늘어놓았던 대표적인 정치인이 아니었던가. MB의 성공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어찌 MB만의 전유물일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떠한가. 지난 8일 충북 창조경제혁신센터 방문한 박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는 창조경제에 있고 또 우리 경제의 미래도 창조경제에 있다는 생각으로 사례를 계속 만들어 주니까 다른 많은 젊은이가 이걸 보고 용기를 얻어서 더 많은 창업이나 벤처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실체가 불분명한 '창조경제'에 대한 홍보로만 가득하다. 더 많은 창업이나 벤처에 나설 것이라고?



과연 지금의 청년들은 '용기'가 없어서 창업이나 벤처에 나설 수 없는 것일까? 실패를 하더라도 재기가 가능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청년들에겐 아무런 안전 장치가 없다. 한 번의 실패는 영원한 나락이고, 패자부활전은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수준을 넘어 사지로 떠미는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 경제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경제 여건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창업과 벤처가 웬말인가.


'공시 열풍'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식했다면, 그 다음 따라와야 할 '절차'는 '문제'에 대한 타박이나 훈계가 아니라 '이유'와 '원인'을 고민하는 것이어야 한다. '왜 그런 것일까?'를 진지하고 섬세하고 묻고 대답한 이후에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이 도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번 물어보자. '공시 열풍'의 이유와 원인은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공시 열풍'은 불확실성이 '넘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존본능일 것이다. 좀더 '적나라한' 표현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는 게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판사, 검사, 의사 등 사회적으로 '높은' 직종이 있지만, 이미 그 직업은 하나의 사회적 계급이 돼 되물림 현상이 현실화된 점을 고려하면 '흙수저'들이 감히 쳐다볼 수 없다.


그나마 7급과 9급 공무원이 대한민국의 '흙수저'들이 비교적 적은 투자 비용으로 노려볼 수 있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직업인 셈이다.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이 지켜지고, '빨간날'은 마음 편히 쉴 수 있으며, 육아 휴직 등 각종 복지를 (비교적) 눈치보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직업. 게다가 '저녁이 있는 삶'은 온전히 공무원의 것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명예퇴직'의 칼바람 속에서 정년에 대한 보장은 공무원만의 특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공시 열풍'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용기를 내라'는 어설픈 응원이나 '노력을 해라'는 역겨운 자기계발식 언어가 아니라 '노동 시장의 불안정성(어느 정치 집단은 이를 유연성이라 표현하더라)'을 해소하는 것밖에 없다. 더불어 복지를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이를 튼실하게 가꾸어나가는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성남시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청년수당'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사람'을 '기계'나 '물건' 취급하는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작디 작은 바람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들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성세대가 먼저 해야 할 것은 '반성'이고 '사과'여야만 한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아서 정말 미안하다는 한마디, 이런 사회를 물려줘서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그 처절한 자기반성만이 세대 간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냉소'적인 몇 마디를 보탠다면, 당장 정치 · 경제 · 사회 등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그럴 동력조차 눈에 띠지 않는다. 당연히 기성세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도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게다가 베이비부머 공무원의 은퇴로 2023년까지 신규 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공시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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