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문구를 기억하는가? 지금은 칩거에 들어간, 야당의 한 유력한 정치인이 지난 18대 대선 국면에서 당내 경선에 나서며 내건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다. 대중적 지지도가 약한 탓에 그는 최종 후보로 선정되진 못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캐치프레이즈로 기억되는 문구를 남겼다. 각설(却說)하고, 결국 '저녁이 있는 삶'은 실현되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모여 앉아 먹는 저녁 식사, 퇴근 후 연인과의 달콤한 데이트, 친구들과 만나 시원한 맥주와 함께 수다를 나누는 모임,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동호회.. 우리에겐 왜 이런 저녁이 없는 걸까? 우리는 왜 이런 저녁을 꿈꿀 수 없는 걸까? 언제부터 우리는 '저녁'을 '상실(喪失)'했는가, 언제부터 우리는 '저녁'을 '거세(去勢)'당했는가?
한번 빼앗긴 것은 돌아오지 않고, 빼앗기기 시작하자 계속해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저녁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이제 '아침'마저 빼앗기게 됐다. 지난 6월 27일, 서울시는 '지하철 · 버스요금 조조할인제'를 도입했다. 영화관에서 첫 영화에 한해 할인된 금액(대략 5,000원에서 6,000원)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조조할인제도가 대중교통에도 적용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오전 6시 30분 이전에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면 요금의 20%를 할인해준다. 지하철의 경우 1,250원 → 1,000원, 버스의 경우 1,200원 → 960원이 되는 것이다. '고작 250원(버스는 240원)? 난 그냥 내 시간을 지킬래!'라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250원이 쌓이고 쌓이면 어디야?'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승객 분산 효과를 노린 이 제도는 즉각 효과를 봤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2주 간의 모니터링을 통해 "6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조조할인으로 14억여원의 요금 절감 혜택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시간대(오전 6시 30분 이전)에 버스는 6,619명(3.1%), 지하철은 4868명(3.6%)이나 하루 평균 이용객 수가 증가했다. 무엇보다 '지옥철'로 악명 높았던 9호선에서 효과(5.58% 증가)가 가장 도드라졌다.
'지하철 · 버스요금 조조할인제'를 도입한 서울시의 선택은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인해 '지옥철'이 되어버린 9호선에서 고통받아야 했던 시민들의 원성(怨聲) 때문에 고안된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지만, 어찌됐든 시간대 별로 다른 요금을 책정해 이용객을 분산시키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참신한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는 있다. 그로 인해 '자발적' 분산을 선택한 다수의 시민들은 누구일까?
일러스트 유은지(ginppum@nate.com)
뻔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경제적으로 (더욱) 취약한 계층일 것이 분명하다. 250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일 것이 자명하다. 서울시는 다른 요금을 정해놓고, "당신들에게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드리겠습니다"라며 '선택권'을 부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할인된 요금이 적용되는 시간대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러한 선택은 진정으로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자발적이라는 미명 하에 '강요된' 분산은 아닐까? '지옥철'도 피하면서 더 저렴한 요금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를 누린다지만, 그로 인해서 안 그래도 빠듯한 아침 시간을 잃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아침형 인간'이라는 또 하나의 합리화를 꺼내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비참함을 감추는 건 하등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지옥철 및 대중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증차(增車)'일 것이다. 하지만 증차를 위해선 시일이 걸리고 엄청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시간대 별로 다른 가격을 책정해 승객을 분산하는 방법은 그에 못지 않은 효과를 거두면서도 즉각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충분히 매력적인 정책적인 시도다. 하지만 고민을 해볼 필요는 있다.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 글이 그런 측면에서 도움이 되길 바란다.
더 늦게 퇴근하고, 더 빨리 출근해야 하는 삶. 저녁도 잃고, 이젠 아침까지도 잃어버린 삶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어디까지 밀려날 것인가? 어디까지 빼앗길 것인가? 언제쯤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소리칠 것인가?
'사회를 듣는 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별사면의 핵심? 부패한 기업(인)에 대한 구제 (3) | 2015.08.15 |
---|---|
노동개혁의 방향.. 노동 유연화인가, 노동시간 유연화인가? (2) | 2015.07.24 |
신경숙 표절에 대한 조정래의 일침, 그러나 결국 구조의 문제다 (11) | 2015.07.16 |
그리스는 정말 과잉 복지 때문에 망한 걸까요? (14) | 2015.07.04 |
예정대로 진행되는 서울시 공무원 시험, 무엇이 문제일까? (6) | 2015.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