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자원 외교, 아프리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너의길을가라 2013. 8. 2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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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외교(Resource Diplomacy)'


어느덧 우리에게 참 익숙한 말이다. 물론 안 좋은 의미에서 익숙한 용어이다. 최근 '자원 외교'는 이런 뉴스들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지난 MB 정부는 '자원 외교'를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로 선정했고,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사실상 '올인'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상당항 공을 들였다. 당시 정부는 언론을 통해 '자원 외교'의 실적을 부풀려서 홍보했고, 마치 엄청난 자원을 획득한 것처럼 떠들어댔다. 하지만 결과는 위의 뉴스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처참했다. '만사형통' 이상득, '왕차관' 박영준은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 낙하산 공기업 사장들은 두 사람의 지휘를 받고 충성스럽게 움직였고, 국가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 이들은 곧 구속 조치될 것으로 보인다.




<자원외교 실종> "지난 정부 정책 '무조건 반대'는 안돼 '국가 100년 대계'… 정책 일관성 필요" <문화일보>


이렇듯 MB 정부의 자원 외교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자원 외교'를 폐기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문화일보>이 보도처럼, '무조건 반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의 일관성도 요구하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은 '자원이 없는 나라'가 아니던가? 필자는 '자원 외교'의 당위와 필요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만, 한 가지 짚어볼 것은 '자원 외교(Resource Diplomacy)'라는 용어가 적합하냐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자원 외교'는 '등가교환'적 성격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자원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돈이나 인프라를 제공하고, 자원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자원이 풍족하지만 돈이나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자원을 팔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합리적인 거래일 것이다. 반대로 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돈과 인프라를 제공하고, 그 값어치만큼의 자원을 받는 것이 좋은 일이다.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는 아주 훌륭한 '윈-윈' 거래(무역)인 셈이다. 




- <세계일보>에서 발췌 - 



흥미로운 것은 (책의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자원 외교(Resource Diplomacy)'라는 용어를 한·중·일 세 나라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은 미국을 밀어내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를 강요하는 미국에 비해서 중국은 아프리카 독재자들을 묵인 내지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중국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지만, 재외 대사관 수를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대(對)아프리카 외교를 강화를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서구 국가들은 어떨까? 이미 서구 국가들은 이미 엄청난 양의 자원을 아프리카로부터 가져갔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지 않은가? 그 수치는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그렇다면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원 외교'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할까? 






서구 국가들의 자원외교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서구 제국은 15세기부터 아프리카에 진출하여 온갖 자원을 수탈해 갔다. 초기에는 총이나 술 등을 자원과 맞바꿨지만 나중에는 이마저 귀찮아(?)지자 아예 식민지를 만들어 아무런 대가 없이 빼앗아 갔다. 그 결과 '자원'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식민지'라는 개념과 연결이 돼 버렸다. 결국 '자원 외교'는 '신식민지화'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구 열강들은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엄청난 자원들을 가져가고 있지만 '자원 외교'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김명주,『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 p.260)




아프리카에서 '자원 외교'는 '신식민지화'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서구 국가들은 의식적으로 '자원 외교'라는 용어의 사용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미뤄볼 때,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원 외교'라는 말을 얼마나 불쾌하게 여기고 있을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럼에도 한·중·일 세 나라는 눈치 없이(!)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는 용어를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이 얼마나 외교적 결례(缺禮)인가?




문제는 우리가 자원에 대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복잡한 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자원외교'의 성과를 자랑하는 순간 한국은 신식민주의 국가로 매도 당한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미래 한국의 아프리카 진출에도 걸림돌이 된다. (같은 책, p.261)




자원외교에 성공하여 아프리카에서 석유나 가스, 토지를 확보했다는 뉴스가 우리나라에서 나오면 바로 다음날 유럽이나 아프리카 현지 신문에서는 '한국의 신식민지주의화'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등장한다고 한다. 참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우리 언론들은 이런 사정을 알기는 하는 걸까? 아무래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 <중앙일보>에서 발췌 - 


朴대통령 자원외교 닻 올려 <머니투데이>


朴대통령, 우간다·모잠비크 초청 정상회담…자원외교 시동 <뉴시스>


'자원 외교'라는 용어에 대한 아프리카의 부정적 인식 혹은 반감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들은 최근에도 '자원 외교'라는 용어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이런 기사가 나오면, 앞서 인용했던 것처럼 아프리카 현지 신문에서는 '한국의 신식민주의화'라는 기사가 등장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과거 서구의 제국들과 '대한민국'이 별반 다르지 않게 여겨질 것이다.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이다. 


한마디 말이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한마디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무 말이나 마구 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관계' 아닌가? 그렇다면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한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역사, 사회, 문화 등을 공부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지나친 오만 아닐까? 혹시 '아프리카는 후진국이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 별로 차이가 심하지만, 아프리카는 여전히 성장가능성이 가장 큰 대륙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놀라울 정도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들의 가장 큰 동력은 '인구'와 '자원'일 것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아프리카와의 교역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풍족한 자원을 거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MB 정부가 보여준 것처럼, 근시안적이고 무계획적인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사기 치는 대한민국'을 어느 국가가 신뢰하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용어 하나를 쓰는 데 있어서도 세심함이 필요하다. 정부와 언론은 앞으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서구에서도 쓰지 않고, 아프리카 국가들도 불쾌하게 여기는 '자원 외교(Resource Diplomacy)'라는 용어가 정부와 언론을 통해 마구 흘러나오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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