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공정무역커피/윤리적 소비.. 마음이 좀 편안하신가요?

너의길을가라 2013. 8. 1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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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기사를 읽어보자. (기사라기보다는 거의 홍보에 가깝지만..)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공정무역 커피 세계 최대 구매 <한국경제>


경상이익의 2.5%인 6억 6천만 원을 사회공헌활동 비용으로 지출했으며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임직원들은 지난해 1년간 총 2만 4182시간의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친환경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업계 최초로 일회용 컵 없는 매장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커피 원두를 재활용해 폐기물을 줄였다. 올 들어서는 유기농으로 재배한 제주산 녹차를 분말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도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공정무역하면 '아름다운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언젠가 서울대 조국 교수가 '공정무역 카페'를 언급하면서 '아름다운 커피'를 추천하기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헤럴드경제>에서 발췌 -



참 멋지지 않은가?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오고, 가슴이 뿌듯하다. 이른바 '윤리적 소비'를 하는 나의 모습은 참 그럴듯하다. 사회적 의식이 있는 사람처럼 근사하게 보이기도 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구를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한다는 자각도 느껴진다. 그렇다. '윤리적 소비자'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다. 기왕 커피를 사먹을 것이라면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편이 낫지 않은가? 


- 우리가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이유?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의 '착각'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굳이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유기농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것일까? 지젝은 우리가 그렇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그런 행동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는 우리가 '약간의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세상에, 우리가 환경을 얼마나 손상시킨 거지,' 이렇게 말하면서 값싼 출구를 찾고 있는 셈"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p.30)이다. 




- 출처 : www.khaiyang.com/661  - 



우리는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미술 시간이면 상상화를 그리곤 했다. 하얀 스케치북에 전기로 가는 자동차를 그렸고, 걸어다니며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소형 기기를 그려넣었기도 했다. '에이, 그건 말도 안돼' 라는 친구의 비웃음도 감수해야 했다. 인간의 말을 이해하는 로봇을 상상하며 감동에 젖기도 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를 할 수 있는 의학기술의 발달도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전공학은 제어할 수 없는 정도의 지점까지 나아가고 있다. 단언할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물론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단 한 가지!


그 한 가지는 무엇일까? 지젝의 말처럼, 우리는 '자본주의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작되고 상영되고 있는 수많은 SF영화들은 '상상력'의 범위를 끝없이 뛰어넘고 있다. 슈퍼맨도 있고, 배트맨도 있고, 외계인과의 전쟁도 벌어진다. 대재앙이 발생하기도 하고,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류가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펼쳐진다.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 없는 세상'은 그 누구도 생각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자본주의는 인류 최후의 체제인 것일까?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강력함을 인정하더라도, 혹은 자본주의가 마지막 대안이라고 상정하더라도 '상상'은 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고보면 우리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참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아니, 철저히 통제되고 제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공정무역과 유기농 제품으로 돌아가자. 지젝의 말처럼 이건 그야말로 '정말 멋진 자본주의적 해결책'이다. 시도때도 없이 우리의 정신을 간질이는 속삭임을 들어보자. '소비자가 됐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까? 걱정 마세요. 조금만 더 내세요. 이로써 당신은 건전한 소비를 위한 돈을 낸 셈이 될 테니까요.' 정말 달콤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정도면 우리의 죄의식을 털어버리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것이 위기를 맞은 자본주의가 조금 변형된 모습이며, 지금의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 <파이낸셜뉴스>에서 발췌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1997년 에티오피아와 스타벅스 사이에 벌어졌던 분쟁을 잊지 않도록 하자. 당시 스타벅스는 에티오피아의 시다모 지역의 커피를 파운드당 75센트에 샀고, 스타벅스는 이 커피를 '시다모 커피'라는 브랜드로 파운드 당 26달러에 판매했다. 엄청나게 뻥튀기된 가격도 놀라운 일이지만, 분쟁의 초점은 스타벅스가 함부로 '상표권'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에티오피아는 시다모, 하라르, 이르가체페 세 브랜드를 상표로 출원하고 스타벅스에 상표 사용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스타벅스는 거부했다. 오랜 분쟁이 이어졌고, 결국 2007년 6월에야 합의에 이르렀다. 상표권은 인정하지만, 사용료는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정무역커피 스타벅스의 민낯은 이렇다. '아름다운커피'의 경우는 이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공고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공정무역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고, 유기농 제품을 구입하는 편이 낫다. 그냥 버리기보다는 재활용할 수 있는 물품은 재활용해야 하고, 자선 활동이나 기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자체를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상황/환경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이다. 지젝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하는 행위를 한번쯤 되새겨보자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한 걸까? 나는 어떤 이데올리기 속에 포섭된 채, 매뉴얼화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의 죄의식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나는 상상할 수 있도록 통제된 상상만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 이런 생각들을 해보자는 것이다. 


난삽한 글의 마무리는 지젝의 말로 갈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우리 급진적 성향의 좌파들을 유토피아를 지향한다는 이유로 비난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꾸할 것입니다. '상황이 지금 같은 식으로 그저 계속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유토피아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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