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뱃고동' 소리를 연상케 하는 피아노 선율이 적막한 빈 공간에 울려퍼진다. 그 위로 아이유의 목소리가 얹힌다. 차갑던 공기가 이내 데워지고, 경직된 마음이 어느새 녹아든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꿈에서도 그리운 목소리는 / 이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 글썽이는 그 메아리만 돌아와 / 그 소리를 나 혼자서 들어 / 깨어질 듯이 차가워도 / 이번에는 결코 놓지 않을게 / 아득히 멀어진 그날의 두 손을 / 끝없이 길었던 /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 조용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 오래 기다릴게 / 반드시 너를 찾을게 /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아이유가 지난 21일 발표한 정규 4집 앨범 '팔레트(Palette)'의 더블 타이틀곡인 <이름에게(Dear Name>'. 지난 24일 JTBC <뉴스룸>은 엔딩곡으로 이 노래를 선택했다. 집중하게 만드는 가사, 호소력 짙은 목소리. 이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당신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 이 노래는 우리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건드리다 못해 심하게 뒤흔든다. 4분 50초의 진폭, 그 흔듦의 끝에 우리는 값을 메길 수 없는 위로를 얻는다.
추측할 수 있다. 아니, '해석'할 수 있다. 김이나 작사가와 아이유가 공동으로 작사한 이 노래가, 아이유가 '세월호 아이들'에게 띄운 편지일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아이유가 이 노래의 가삿말을 써내려 갈 때 누구를 떠올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또,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마찬가지다. 다분히 개인적인 아픔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설레발'이라 할지도. 하지만 수많은 청자(聽者)들이 아이유의 '이름에게'를 들으면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 이 부분이 아닐까.
ⓒ 로엔
"이번 앨범에서 가장 큰 사이즈를 자랑하는 곡이다. 길이도 5분 가까이 되고 구성 악기도 스펙트럼이 넓다. 마지막 트랙에 배치해서 마무리를 멋지게 하고 싶었다. 가장 열창한 곡이자 가장 공을 들인 곡이다." (음악감상회에서)
'의도' 못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해석'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심지어 지금 쓰고 있는 잡문을 포함한) 모든 창작품은 창작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수용자'의 것이 된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가 명확하다면 그 생각을 새겨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겠지만, 창작자가 이를 '공백' 상태로 둔다면, 다시 말해서 수용자의 몫으로 남겨둔다면 해석의 여지는 더욱 커진다. '세월호가 생각나 눈물이 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JTBC <뉴스룸>에서도 '이름에게'를 엔딩곡으로 골랐다면 지금의 이 '공감대'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2014년의 봄, 막 스무 살이 됐던 아이유도 (우리 모두가 그랬듯이) 어김없이 '세월호 참사'와 맞닥뜨렸다. 그가 마주했을 절망과 공포, 참담함과 좌절감은 우리가 받았을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유는 당시 콘서트 수익금 전액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이름에게'라는 노래가, 아이유가 '세월호 아이들'에게 띄운 편지라는 해석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가 전하는 위로의 목소리를 마저 들어보도록 하자.
어김없이 내 앞에 선 그 아이는 / 고개 숙여도 기어이 울지 않아 / 안쓰러워 손을 뻗으면 달아나 / 텅 빈 허공을 나 혼자 껴안아 / 에어질 듯이 아파와도 / 이번에는 결코 잊지 않을게 / 한참을 외로이 기다린 그 말을 / 끝없이 길었던 /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 영원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 오래 기다릴게 / 반드시 너를 찾을게 /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 /
수없이 잃었던 / 춥고 모진 날 사이로 /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 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 WESTBRIDGE
그런가 하면 지난 24일 '브로클로너마저'가 발표한 9번째 싱글곡인 <분향>도 가사가 심상치 않다. '죽은 사람을 위하여 향을 피움'이라는 뜻의 분향(焚香)은 그 어휘에서 제법 무거운 느낌을 주고, 노랫말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감수성으로 그득하다. 제작사 스튜디오브로콜리는 '분향'에 대해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묵직하게 울리는 노랫말을 애써 덤덤하게, 아니 오히려 밝게 담아냈지만 복잡한 마음은 노래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곡"이라 설명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분향>을 듣고 있노라면, 아이유의 <이름에게>와 마찬가지로 '세월호'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물론 이 노래는 '세월호'를 의도해서 만든 곡은 아니다. <오마이뉴스> 손화신 기자의 "세월호와 관련된 노래인지"라는 작사·작곡을 맡은 멤버 윤덕원은 "그렇게 읽힐 수도 있지만 곡을 만든 덕원씨는 '주변인을 떠나보낸 개인적인 경험을 쓴 것'이라고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쩌면 핵심은 '그렇게 읽힐 수도 있지만'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떠나가는 사람의 / 하얀 옷자락을 / 잡으면 흩어질 것 같은 그 끝을 / 바라보고만 있었네 / 참 오래간만이네 / 너는 웃고만 있네 / 네가 준비한 밥이 따뜻해 / 나는 연기처럼 마셔버렸네 / 우리가 처음으로 만났던 때와 / 멀지 않았을 사진 속의 너 / 떠나가는 사람의 / 지금 모습은 알 수 없지만 / 이젠 영원히 너의 / 뒷모습만을 바라보겠지 / 언젠가 마주쳤던 웃는 모습을 /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 그때는 정말 몰랐었지만 / 좋은 날들이었던 것 같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수들이 들려주는 여러 노래를 통해 대중들은 '세월호'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위로를 얻고, 마음 속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보듬는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다시 '세월호'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26일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의 조타실 내부 모습이 공개됐다. 조타실 내부에 걸려있는 벽시계는 10시 17분 12초(비록 오전인지 오후인지 알 수 없지만)에 멈춰져 있었다.
그렇다. 2014년 4월 16일 10월 17시 12초, 우리는 여전히 3년 전의 그 시간에 멈춰있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는 인양됐지만, 여전히 미수습자 9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정치권이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은 더욱 커지기만 했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에도 피멍이 들었다. 3년이 지났건만, 무엇 하나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정치권은 권력을 향한 레이스에만 목숨을 걸고 있을 뿐이다.
"황폐해진 심리상태에서 노래하기조차 힘들었는데 주말마다 광화문에 나오면서 저도 모르는 삶의 공감대가 느껴졌어요." (이은미)
'자유롭고 길을 잃은 새 / 거친 폭풍 앞에 섰을 때 날 수 있단다. 너를 던져라. 널 흔들고 있는 바람 속으로 / 그 바람이 나를 펼친다. 너무 커서 아팠던 날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하늘에선 최고로 멋진 새죠.' (<알바트로스>의 가사 중 일부)
멈춰진 시간, 아물지 않은 상처는 조금만 움직여도 벌어지고 찢겨져 피가 흐른다.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듣고, 그 가삿말에 마음을 의지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28년동안 음악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가수 이은미는 "내가 받은 이런 사랑을 공동의 선으로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이건, 사회적인 문제이건 함께 힘을 나눠야할 순간엔 기꺼이 내 의견을 드러내야 한다고 믿는다. 또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지난 25일, 이은미는 신곡 <알바트로스>를 공개했는데, "어지러운 시국을 위로할 수 있는 노래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아이유부터 브로콜리너마저, 그리고 이은미까지.. 어디 이들뿐이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대중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하는 창작자들의 마음이 참으로 고맙다. 대중문화의 힘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바라건대, 다가오는 5월 9일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좋은 리더'가 주는 위로를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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