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9. (화)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를 심판하고자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던 '촛불'이 쏘아올린 이른바 '장미 대선'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 시행되는 사전 투표(5월 4일~5일)를 감안하면 더 짧은 기간이 남아 있다. 방송사들은 TV 토론회를 열어 후보들은 검증하(겠다고 설치)고, 후보들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뻔한 방식의 선거 유세에 여념이 없다. 거리 곳곳에는 현수막과 선거 벽보가 난잡하게 깔렸고, 확성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끄럽게 울려퍼진다. 네거티브가 정책을 잡아먹고, 신변잡기와 가십이 날뛰는 또 한번의 선거.
과연 대한민국은 좀더 나은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을까. 잘 골라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한 선결과제는 역시 '투표율'이다. 세대별 투표율을 따져가며, 어느 세대가 더 많이 투표에 참여해야 어느 쪽에 유리한지 혹은 어느 세대의 참여가 높으면 어떤 후보가 불리하다는 분석은 굳이 하지 않으련다.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해 자신의 '의무'이자 '권리'를 행사하길 바랄 뿐이다. 더 많은 참여가 만들어낼, 그래서 더욱 정교해진 '집단 지성'에 희망을 걸어본다. 그것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집단 지성을 믿어볼 밖에.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75.8%였다. 총 유권자 수 40,507,842명 가운데 30,721,45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과거의 대통령 선거들을 차례대로 짚어보자. 민주화의 열망이 그득했던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했던 직선제(13대 대선)는 무려 89.2%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투표율은 조금씩 떨어졌는데, 14대 대선의 경우 81.9%, 15대 대선은 80.7%, 16대 대선은 70.8%까지 하락했다. 가장 뻔한 승부가 예상됐던 2007년 17대 대선은 63%라는 초라한 투표율로 마감됐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역시 승부의 치열함이 투표율을 견인하기 마련이다. 진보와 보수가 각각의 후보들 곁으로 총결집하며 건곤일척의 대결이 펼쳐졌던 18대 대선의 투표율 반등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도 큰 기여를 했다. '정치가 곧 삶을 규정한다'는 명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덕분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대 대선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 관심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88.1%, '반드시 두표할 것'이라는 응답은 82.8%였다고 한다.
'관심도'는 지난 18대 대선 때와 큰 차이가 없지만, '적극적 투표 참여' 의사를 표명한 사람들은 4.6% 증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29세 이하(+18.5%)와 30대(9.8%), 40대(6.3%)에서 증가했고, 50대(-2.6%), 60대와 70대 이상(-7.9%)에서는 감소했다는 것인다. 아무래도 누가 이겨도 정권교체(에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라 할 수 있는 문재인 vs 안철수, 양강 구도로 짜여진 선거 지형과 보수의 궤멸이라 할 수 있는 정치 지형과 선거 분위기가 이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 (<특별시민>의 대사)
전반적으로 투표에 대한 관심, 좀더 나은 대통령을 뽑겠다는 의지가 뜨겁다. (주책 없는) 정치권이야 항상 뜨겁지만, 이번에는 연예계도 만만치 않다. 지난 MB 정부과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이른바 '피맛'을 가장 많이 봤던 게 그들이 아니던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침해 받는 경험을 실체적으로 했기에 이번에는 사뭇 진지하고, 상당히 적극적이다. 특히 26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특별시민>의 주연배우들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현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의 선거전을 다룬 영화답게 출연 배우들의 '정치 의식'이 돋보인다. 지난 18일 <특별시민>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최민식은 "우리나라 좋은 정치 환경, 좋은 지도자를 통해 삶이 더욱 윤택해지려면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게 바로 이 '지겹다'는 생각인 것 같다"면서 "결론은 아주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투표를 잘 하자는 거다. 잘 뽑자는 거다. 잘 뽑으면 좋아지는 것"이라며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곽도원도 "지친 현실에 또 정치 영화라서 진절머리날지도 모르겠다. 최악의 정치인에게 당하지 말고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자는 게 '특별시민'의 메시지다. 나쁜 정치인에게 지배당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라는 심은경은 "막연히 정치에 대해 알고 있었고,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었다면서도 "유권자로 행해지는 권리와 그것으로 인해 받는 의식들을 계속 예의주시 해야겠다. 이번 선거에 많은 관심이 있고, 박경처럼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과정이다"며 진중한 태도를 드러냈다.
ⓒ 김영준 스튜디오
고소영, 고수, 고아성, 권율, 김성령, 김영광, 노희경, 류준열, 박근형, 박서준, 박정민, 배성우, 배종옥, 백진희, 변영주 감독, 비와이, 서지혜, 소이현, 유노윤호, 이병헌, 이서진, 이순재, 이영진, 이정현, 이준, 이준익 감독, 이특, 이해영 감독, 이현우, 정연주, 정우성, 조진웅, 지진희, 진구, 한예리, 한재림 감독, 한지민, 한지선 (가나다순)
한편, 38명의 스타들은 '무현찹 무단체 노개런티'로 진행되는 '0509 장미 프로젝트'에 참여해 투표 독려에 나섰다. "이번 캠페인은 국민들의 투표 참여를 이끄는 한편, 지나치게 후보의 이미지에 의존해 투표하는 성향을 제고하고, 인물의 발자취와 공약, 정책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투표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는 것이 0509 장미 프로젝트 측의 설명이다. 스타들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투표 참여를 호소했고, "나에게 투표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현실 정치'에 한걸음 비껴셔서 방관 혹은 무관심한 듯 보였던, 혹은 두려움에 뒷걸음치거나 움츠러 들었던 연예계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참으로 반갑고 또 고맙다. 결국 정치 권력이 나의 삶, 내가 딛고 있는 영역을 좌지우지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가능한 변화다. 스타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런 참여 의식이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서진은 "대통령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잘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면서 "투표는 투자다. 투자를 하시는 모든 분들이 이익을 잘 따져보시고 하셨으면 한다"는 생각을 전달했다. 그의 말을 곱씹어 다시 우리에게 되물어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꿀 '투자'에 참여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투자'할 생각인가. 당신의 '진주'를 찾아냈는가. 부디 '이익'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현명한 투자를 하길 바란다. 최민식의 말처럼, 잘 뽑으면 분명히 좋아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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