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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과 지민의 무지? 안중근의 얼굴을 아는 것이 역사의식인가?

너의길을가라 2016. 5. 1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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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이 있다. 당신은 저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른다. 단지 저 사진 속의 인물들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암살과 파괴라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의열단(義烈團)의 단원들'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의열단을 조직한 김원봉의 얼굴을 알고 있는가? (조승우가 아니다)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한 김익상의 얼굴은 떠오르는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은 어떤가? 나석주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면면(面面)을 쉽게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아예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당신들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다. 혹시 '절대 몰라선 안돼! 어떻게 의열단의 얼굴을 모를 수가 있어!'라고 분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안중근의 얼굴'을 모르는, 그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시키지 못한 AOA의 설현과 지민에겐 십자포화를 쏟아내고 있을까?




안중근은 의열단의 단원들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라서? 교과서에 얼굴이 또렷하게 박혀 있기 때문에? 언론들은 설현과 지민을 '씹어대는'(혹은 제작진에게 책임을 미루는) 사냥에 마치 총력전을 방불케 하는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 대중들도 저 걸그룹 멤버들에게 '무식하다', '무지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격분'했다. 어느 쪽이 '편승'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를 흥분시키는 구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으로 인해 역사 의식에 대한 대중들의 민감도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그 예민함이 '걸그룹'을 비롯한 방송인들에게도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떠나서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인'이라면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지적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안중근'이고, 그래서 그의 얼굴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도 자연스러운 연결인 듯 싶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 <채널AOA>에서 설현과 지민은 인물들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맞히는 퀴즈를 풀어야 했다. 신사임당과 김구의 이름은 쉽게 써넣었던 그들은 '안중근'에서 막혀버렸다. 그리고 논란의 '긴또깡' 발언을 해버렸다. 안중근의 '얼굴'을 몰랐던 그들은 졸지에 역사를 모르는 '무식하고 무지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태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역사적 인물을 대하는 데 '장난'처럼 임하는 게 불쾌했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저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사에 대해서 진중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있다.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고, 또 불편을 느꼈을 분들에게 마음 속 깊이 죄송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 (설현)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가벼운 태도로 방송에 임하여 많은 분들께 부적절한 모습을 보였다.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는 연예인으로서 오히려 장난스러운 자세로 많은 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지민)


화들짝 놀란 설현과 지민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대중들은 사과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문장이 유려하다'며 비아냥대기에 바빴다.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 문제를 '점잖게' 접근하는 방법은 저들에게 외면만 꾸밀 것이 아니라 '내면'도 채워나가라는 조언을 건네면서, 한편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역사를 아는 것이 그리도 중요하다면, 그에 걸맞은 역사 교육을 실시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교과서에 달랑 사진 한 장 넣어두는 것이 교육의 전부인가?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의열단 단원들의 얼굴을 모른다. 이름은 알아도 얼굴을 매칭시키기 어렵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창피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정한 무식의 커트라인인 '안중근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을 향해 '무지'를 운운한다. 우리가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안중근의 얼굴이 아니라 안중근의 '생각'이 아닌가?


우리는 안중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것 말고 또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안중근의 '삶'에 대해서, 안중근의 '고뇌'에 대해서, 안중근의 '시대정신'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가? 우리는 왜 안중근을 '존경'해야 하는가? 그 까닭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가?



설현과 지민을 '욕'하는 사람들은 안중근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이 '역사'라고 믿는 모양이다. 그들 앞에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의 얼굴을 들이민다면 과연 '답'할 수 있을까? '적어도 안중근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직도 그런 말을 늘어놓을 셈인가. 안중근의 얼굴을 안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 알량한 '얼굴 인식 능력'이 대체 무슨 '역사'란 말인가?


앞으로 걸그룹(혹은 아이돌)으로 데뷔를 앞둔 기획사의 연습생들은 회사에서 역사 속 인물의 사진을 놓고 이름을 맞히는 트레이닝을 받게 되겠지만, 그렇게 '망신'을 모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진 않다. 설현과 지민으로부터 비롯된 '역사 교육'의 문제는 새로운 고민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 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또 진정한 역사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더불어서 '손가락질'에 익숙한 대중들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저 유명한 격언이 폭력이 되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란다. 민족이라는 단일 개념에 사로잡혀 수많은 '개인'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일도 사라지길 바란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그리고 그 존속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민족의 존재 이유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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