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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빙에 대한 관심 일깨운<무한도전>의 마이너를 향한 애정

너의길을가라 2015. 9. 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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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평균 이하'를 지향(志向)하는 프로그램이다(혹자는 '이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자신들을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고 시청자들에게 소개했고, 거침없이 스스로를 낮췄다. 다소 허름하고 어수룩한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은 10년 전과 달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판 프로그램이 되었고, 찌질했던 멤버들은 어느덧 대한민국 최고의 MC 반열에 올랐다. 



좀처럼 예능에 출연하지 않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영화 배우도 <무한도전>의 팬임을 자처하고, TV에서 구경하기 힘든 유명 스타들이 서로 출연하고 싶어 안달(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이 났을 만큼 <무한도전>은 화제성으로 보나 파급력으로 보나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파워를 지니게 됐다. 그렇다. <무한도전>은 이제 하나의 '문화(文化)'가 됐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무한도전>이 '초심(初心)'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대체로 그런 비판의 목소리는 '애정 어린 것'이라기보다는 '비아냥'에 가깝다는 것이 흠이지만 무심코 넘기기엔 참 아픈 말이다.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초심'이란, 그러니까 초심을 유지한다는 건 일종의 자기기만(自己欺瞞)에 불과하다. 현실은 달라졌고, 위치도 변했다. 그만큼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한도전>이 '변질(變質)'됐다고 할 수 있을까? <무한도전>은 '평균 이하'를 자처했고, 또 지행했다. 여기에서 '평균 이하'라 함은 달리 표현하면 '마이너'라는 것 아닐까? 주류에서 벗어나 소외되어 있는 무언가, 외면받고 이탈된 소수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무언가를 보듬는 혹은 응원하는 정신만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무한도전>이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정신이다. 


바로 '마이너'를 향한 애정어린 시선 말이다. 그들 스스로가 애초에 '마이너'로부터 출발했기에 그 아픔과 설움을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가짐. 메이저가 되어버린 그들이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태도가 여실히 눈에 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동정'이나 '수혜'를 베푸는 것이 아닐 수 있는 건, 바로 <무한도전>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성실함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무한도전>이 해왔던 특집들을 떠올려보라. 2007년 댄스 스포츠 특집, 2009년 봅슬레이 특집, 2010년 레슬링 특집, 2011년 조정 특집 등에 도전하며 비인기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어넣었다. 대중으로부터 잊힌 채 사라져간 90년대 가수들에게 또 한번의 전성기를 안긴 '토토가' 특집은 <무한도전>의 정신과 영향력을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줬다. 거기엔 어김없이 멤버들의 진심이 녹아 있는 땀방울이 있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밥상을 배달하는 '배달의 무도' 특집에선 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들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고,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됐던 150여 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우토로 마을을 찾고, 강제 징용이 이뤄졌던 하시마 섬을 방문하기도 했다. 잔잔한 감동과 함께 애통한 역사를 일깨운 '배달의 무도' 편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무한도전>이 대신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지난 26일 방송된 '주말의 명화' 특집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영화 더빙에 도전했다. 그리고 멤버들이 목소리가 입혀진 영화 <비긴 어게인>이 지난 29일 방영됐다. 최근에는 영화를 성우들의 목소리로 더빙하기보다는 자막을 그대로 내보내는 경우가 많아지는 터라 전문 성우들이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한도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영화 더빙에 도전했는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 않은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일각에서는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11시간에 걸쳐 녹음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전문 성우가 아니었던 탓에 어색한 부분이 있었을 터. 이에 대한 지적은 충분히 감내하고 들어야 할 내용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주말의 명화' 특집이 성우들의 밥그릇(일자리)을 위협한다는 우려는 제작진이 예상하기 힘든 범위였다.




과연 성우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모든 성우들의 입장을 확인할 순 없지만, 방송에 직접 참여했던 성우 안지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안지환은 "'복면가왕'을 보면 노래하는 프로그램이지만 가수가 아닌 배우, 개그맨. 성우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더빙을 성우만의 영역으로 국한 짓고 싶지 않다. 성우들이 할 일을 뺏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성우가 참여하면 완성도는 더 높았겠지만, 이들의 더빙 연기를 통해 붐이 인다면 이 또한 전문 인력들의 참여 기회가 늘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무한도전>은 더빙이란 단순히 외국어를 알아 듣을 수 있도록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를 입히는 작업이라는 진정한 의의를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틈이 날 때마다 연습에 매진했던 멤버들의 노력은 빛이 났고, 그만큼 성우들의 존재도 더욱 가치있게 여겨졌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 <무한도전>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저희는 한 주, 한 주가 무섭고 두렵고 도망가고 싶다. 중압감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항상 저희 멤버들과 함께 가는 스태프들 있기에 믿고 목요일 녹화장에 나간다. 대한민국 예능프로 퀄리티가 알고 계신 것보다 높은 수준으로 성장했다." - 제42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 김태호PD의 대상 수상 소감 -


10주년을 맞이한 <무한도전>에게 '처음'과 같은 '느낌'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건 가혹한 일이다. 그렇지만 오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한도전>이 처음부터 추구했던 '정신'을 여전히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마이너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소외되고 외면받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따뜻한 손길, 사회적 이슈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 이번 '주말의 명화' 특집도 <무한도전>의 정신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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