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대통령 막아선 이화여대 학생들, 그 청년의 용기가 자랑스럽다

너의길을가라 2015. 10. 3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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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막아선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 지난 29일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화여대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을 저지하기 위해 250여 명(경찰 추산 100여 명)의 학생들이 뭉쳤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박근혜 대통령 환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학생들 중 일부는 '박근혜는 이대에 발도 붙이지 마라', '박근혜는 '여성'을 말할 자격 없다'는 피켓을 들었다.


후문으로 들어왔다 후문으로 빠져나간 박 대통령은 화가 단단히 났을 것이다. ''감히' 대통령을 막아서다니!' 어쩌면 새누리당은 이화여대 학생들이 잘못된 역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저 모양 저 꼴이라며,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들이댈지 모르겠다. 색깔론을 좋아하는 누군가들은 '빨갱이', '좌경화' 등의 용어를 갖다붙이며 학생들을 비난할 테고, 그나마 젊잖은 어른들도  학생들이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했다고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부럽기도 하다. 한 국가의 '최고 존엄'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들이 멋지기만 하다. '권력'이라는 구조를 뼛속 깊이 체화하게 되는 '어른'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닌가? 사실 '대통령'이 별 건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그 국민들이 5년마다 투표를 통해 잠시 누군가를 앉혀두는 '자리'에 불과한 것 아닌가? 


존중의 대상이 될 순 있지만, 존경의 대상은 아니다. 무조건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현실적인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을 저지하고 나선 학생들의 용기가 부럽고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편, 대통령이 지나고 간 자리에 남은 쓰레기를 치운 것도 이화여대 학생들이었다. 대강당 앞에 방치된 라면 상자를 비롯한 쓰레기를 발견한 한 학생이 "대강당 앞이 너무 더럽다. 함께하면 금방 치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글을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했고, 이를 본 11명의 학생들이 힘을 함쳐 50분 만에 청소를 마친 것이다. 대통령은 부랴부랴 떠나버렸고, 주최 측은 아무런 뒤처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학생들 보기가 부끄럽지 않은가?


"여성을 위한 행사라고 참가자들에겐 두 손 가득 선물을 주었지만 그들이 떠나고 남겨진 건 사회 최약계층인 미화원 어머니들께 남겨둔 선물인가요?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요?" (학생 이예은 씨)



'청년 세대'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과도하리만큼 잔혹한 요즘이다. 진심 어린 걱정이 아니라 '적개심'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비아냥은 기본이다. 나태하다, 게으르다, 열정이 없다.. 이런 말들이 가뜩이나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청년들을 가슴을 얼마나 후벼팠는가? 희망과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헬조선'을 넘겨준 어른들이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여화여대 학생들이 보여준 기개는 '감히' 어른들이 넘볼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남겨진 쓰레기를 힘을 모아 치우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부조리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어른들,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윽박지르려고만 하는 어른들이야말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의 '어른'들도 자신들이 훗날 '꼰대'가 되리라곤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윗세대를 들이받고 지금의 기득권이 된 것 아닌가.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어느덧 기득권을 점한 그들은 방어하는 위치에 서 있게 됐고, 밀고들어오는 미래 세대를 제압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두려워해야 한다. 언제 우리도 '그들'처럼 변할지 모르니 말이다.


KBS 2TV <나를 돌아봐>에서 김수미가 '감히' 선배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며 조세호에게 "내가 사러가는 거 봤니, 안 봤니. 네가 감히 나한테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오라 그러냐"며 호통을 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기보다는 '눈살'을 찌푸르게 했다. "지금 연예인 생활 몇 년인데 통밥을 못 재냐"고 말하는 김수미의 모습은 그것이 '예능'이고 일종의 짜여진 각본이라 할지라도 '꼰대' 그 자체였다.



JTBC 드라마 <송곳>에서 "후회된다. 그보다 다음에 후회할 짓을 하게 될 것 같아서 두렵다"는 이수인에게 군의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 친구가 대한민국을 너무 우습게 보네. 당신 같은 청년이 그 모습 그대로 나이 먹게 둘 만큼 이 나라가 허술하진 않아. 몇 년만 잘 버텨봐. 어디 내놔도 손색 없을 꼰대가 되어 있을 테니까" 참으로 섬뜩한 말 아닌가? 


'저런 어른은 되지 말자'고 수없이 되내였던 다짐을 잊지 말자. 적어도, 우리 저런 어른은 되지 말자. 그리고 기억하자. 언제든지 우리도 저런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나라가 그리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두려워하자. 어디 내놔도 손색 없을 꼰대가 되어버린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처참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두려워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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