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직원 위해 갑질 고객 거부한 대표, '공정서비스 안내'가 보편화되길

너의길을가라 2015. 11. 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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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에는 두 종류가 있다. 우선, 고용자의 위치에 있거나 계약상 우위에 있는 '갑'이 '을'에게 저지르는 횡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나 남양유업의 '밀어내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반적인 의미의 갑질, 전형적인 형태의 갑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첫 번째 케이스보다 좀더 씁쓸한데, '을'이 '갑'이 되어 또 다른 '을'을 괴롭히는 것이다. 


바로 서비스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고객'들의 갑질이다. 잊을 만 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슈가 아닌가? 스토리는 매번 비슷하다. 상식선을 넘어선 몰상식한 고객이 직원들의 감정에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 무릎을 꿇리는 등 인격 모독을 당당히 저지른다. 이런 장면은 시민들에 의해 SNS 등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다. 네티즌들이 공분하고 한바탕 논란이 되지만, 그건 고작해야 며칠 뿐, 금세 잊히고 만다. 달라지는 건 없다. 



지난 10월 16일,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성 고객이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 2명을 다그치는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카트>에서도 직원의 무릎을 꿇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트의 직원이 고객의 항의를 받자, 상사는 잘못이 없는 직원에게 무릎을 꿇을 것을 강요한다. 


현실은 더욱 끔찍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화점 관계자는 "항의가 계속되자 사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여직원들이 잠시 무릎을 꿇은 것이지 손님이 강제로 시키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보면, 관계자의 설명이 거짓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회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자신의 부하 직원이 모멸감을 참아가면서 손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순간에 '상사'는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직원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릎을 꿇어야만 이 상황이 종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갑질'을 하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상황에서 회사가 누구의 편을 드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그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존중받아야 할 훌륭한 젊은이들이며 누군가에게는 금쪽같은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직원에게 인격적 모욕을 느끼는 언어나 행동, 큰 소리로 떠들거나 다른 고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실 경우에는 저희가 정중하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스노우폭스 매장에 게시된 '공정서비스 안내')


고객과 직원의 충돌이 생기면, 무조건 고객의 편을 드는 회사 앞에 직원들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고객은 무조건 옳다'는 잘못된 생각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처럼 갑질 논란에 대한 씁쓸한 이야기만 들려오는 와중에 손님의 갑질을 거부한 업체가 화제가 됐다.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는 갑질 손님을 거부하는 안내문을 쓴 도시란 전문점 스노우폭수의 김승호 대표를 인터뷰 했다.



"한국 매장은 젊은 직원들이 많아요. 특히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는 사회 초년생부터 대부분 연령대가 20대들이거든요. 저는 제 젊은 직원들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일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사랑받고 존중받을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 나이에 젊은이들이 성실하게 일을 한다는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실 충분히 존중을 받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무례한 고객들 하나 때문에 삶의 회의를 느끼거나 일상의 상실감을 느낀다든지, 좌절하는 것, 이런 걸 지켜볼 수는 없죠. 우리 직원들을 지켜줄 사람은 사실 저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런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요. 결국 이렇게 하면 직원들도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니까요. 직원들 역시 고객을 대하는 태도 역시 진정성을 더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직원들을 지켜줄 사람은 사실 저밖에 없다'는 말은 부하 직원들을 고객들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기존의 서비스업의 '갑'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고객들의 갑질 논란에 대해 여러가지 관점의 연구가 있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부의 양극화라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했고, 문화적 요인에서 해답을 구하기도 했다. 


당연히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복합적인 것이라고 봐야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도를 넘어선 고객 중심주의'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얼굴을 잃어버린(애초에 자본주의에 사람의 얼굴이 있었던가?) 천민 자본주의 하에서 직원은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보듬고 지켜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최대한 쓰고 버릴 존재일 뿐이다. 



- 출처 :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41229010003999 -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비스 업종에서는 '손님은 왕이다'며 고객의 입장을 과도하게 중시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고객에 종속되기 쉽다. 기업도 상품 판매량을 늘려 이윤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종속을 은연중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제 '손님은 왕이다', '손님은 무조건 옳다'와 같은 천박한 문구는 사라져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갑질 고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때마침 나타난 스노우폭스의 김 대표의 '공정서비스 안내'는 선순환을 위한 반가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갑질 고객을 거부하는 업체에 대한 수많은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작은 기업들이 앞장서는 것도 좋지만, 대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갑질 고객으로부터 직원들을 지켜나가는 흐름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업으로 하여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좋은 고객', '서비스를 받을 만한 고객'이 되는 것이다. 고객으로서 일정한 비용을 내고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에게 타인의 감정에 상처를 입힐 권리는 없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두려워 해야 한다. 나도 어느 순간 '갑질'을 하는 진상 고객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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