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생텍쥐페리와 정여울의 대화

너의길을가라 2016. 6. 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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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텍쥐페리의 보석 같은 문장들과 내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듯한 구성으로 '생텍쥐페리의 모든 것'을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항상 작가와 보이지 않는 대화를 한다. 어떤 구절은 더 많은 사연을, 더 깊은 귀엣말을 걸어온다. 작가가 글자가 아닌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럴 떄마다 나는 미처 작가에게 직접 전할 수 없는 고마움을, 감동을, 내 생각을, 종이 위에 쓴다. 그 보낼 수 없는 편지가 모여 한 편의 글이 된다."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은 생텍쥐페리와 정여울의 '대화'의 산물(産物)이다. 물론 고인(故人)인 생텍쥐페리와 현재를 살아가는 정여울이 직접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독서는 그것을 무한히 가능케 한다. 문장의 층위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목소리'들은 '읽는 행위'를 통해 생생히 발현(發現)된다.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은 생텍쥐페리와 정여울이 나눈 '보이지 않는 대화'들의 모음집이다.



"나는 생텍쥐페리의 작품 중 『어린 왕자』만 널리 읽히는 것이 안타깝다. 사막의 무어인은 물론 카멜레온까지 길들이는 그의 다정함이 폭포수처럼 흘러넘치는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 『인간의 대지』, 『성채』, 『전투 조종사』 등이 더 널리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어린 왕자』는 무려 270개 이상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어린 왕자 백과사전』)돼 1억 5천만 부 이상 판매됐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및 판매)된 문학 작품이다. 지구인이 사랑하는 소설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이쯤되면 '생텍쥐페리=『어린 왕자』'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둘은 따로 떼어내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어린 왕자』가 생택쥐페리 문학의 '정수(精髓)'라고 할 만하지만, 정여울은 이와 같은 지나친 편중이 못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생텍쥐페리와의 '보이지 않는 대화'에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  『인간의 대지』,  『성채』,  『전투 조종사』를 모두 포함시켰다.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가 『어린 왕자』를 다룬 여타의 책들과 '차별'되는 포인트는 생텍쥐페리의 전(全) 작품으로 시야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나무위키(namu.wiki)'에서 발췌 


"어린 왕자는 간결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길들임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따스한 마음으로 서로를 길들일 수만 있다면, 세상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야간비행』은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속으론 조종사들과 하늘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멋진 남자 리비에르가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따뜻한 현자의 역할을 한다. 『남방 우편기』는 생텍쥐페리의 장품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며, 『인간의 대지』는 생텍쥐페리의 모든 것이 응축된, 아포리즘의 보물 창고다. 전쟁 속에 깊어가는 동료애와 작가의 일상을 논픽션적으로 그린 『전투 조종사』, 미완성 유작 『성채』 또한 지혜의 샘 같은 작품이다."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의 분명한 공적은 『어린 왕자』에 국한돼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생택쥐페리의 다른 작품들에까지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더불어 생텍쥐페리의 순수한 마음과 따스한 시선이 녹이 있는 '보석 같은 아포리즘(aphorism)'을 소개하고, 그 옆에 자신이 나눴던 '대화'를 조곤조곤 덧붙여 독자로 하여금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남방 우편기』

"다정한 우정을 포기하는 것은, 이별할 때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 묻혀 있을 보물에 대한 호기심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그녀의 전부를 온전히 사랑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그녀의 일부만을 사랑하고 다른 부분은 어둠 속에 방치한다. 사람들은 음악이나 사치품을 대하듯 그녀를 사랑한다."

"우리는 지금 밤 속으로 들어간다. 담배 한 개비의 불빛에 의지해. 그러면 세계는 그것의 진짜 차원을 다시 찾는다." 

"준비에브가 차라리 욕심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 물건 때문에 속상해하고, 물건 때문에 상처 입고, 어린애처럼 물건 때문에 칭얼거리면서 졸라대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이토록 가난할지라도,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았을 텐데. 하지만 전혀 배고프지 않다는 이 여인 앞에서 그는 힘없이 무릎 꿇을 뿐이었다. 


『전투 조종사』

"나와 다른 사람은 나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 사람은 나를 풍요롭게 한다. 그 사람과 나의 만남으로 우리는 인간으로서 각자의 존재일 때보다 더 높은 무언가가 된다. 자신의 목소리만을 듣는 사람이나 유리에 비친 자신만을 찾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야간비행』

"불운조차 우리가 가진 자산의 일부다"


『성채』

"사랑이란 결국 사랑에 대한 끝없는 갈증이다." 

"만약 당신이 사랑에 희망이 없다면 소리 내어 밝히지 마라. 그 사랑이 침묵 속에 있다면, 당신 내면의 불꽃이 그 사랑을 보호하여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이나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점점 무감각해지거나,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마음속에 있는 깊은 갈망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경멸한다. 그대는 잊지 말아야 한다. 풀리지 않는 갈등과 모순은 오히려 당신의 마음을 더 크고 깊게 만든다는 것을."


『인간의 대지』

"우리 모두는 세상 무엇도 그것이 오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을 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기쁨을 겪어봤다. 그 기쁨은 너무나 황홀해서, 만약 그것이 비극 속에서 찾아온다면 우리는 비극조차 사랑으로 기억할 것이다."

"인간다움이라는 것. 그것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의 책임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조종사였다. 야간 비행의 선구자로, 위험천만한 항로를 개척하며 수만 통의 우편물을 실어 날랐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수만 통의 우편물에 수많은 사람들의 '절실한' 사연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목숨을 건 비행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무엇보다 '비행(飛行)'을 사랑했다. 비행은 생텍쥐페리의 작가로서의 밑거름이 됐고, 창작력의 원천이었다.


특히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는 '발췌'를 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문장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기본적으로 그의 작품들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었는데, 『어린 왕자』에는 사막에 불시착해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가 유목민에게 구출된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또, 관절 류머티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남동생 프랑스아에 대한 그리움, 이해심 많은 아내 콘수엘로에 대한 미안함 등이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 있다.


『어린 왕자』가 특히 각광받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까닭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가 묻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왕자』를 읽다보면 '그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에 현혹돼 살아가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어린 왕자』

"만약 누군가가 수없이 많은 별들 속에 있는 단 한 송이의 꽃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그저 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가끔 폭풍, 안개, 눈이 너를 괴롭힐 거야. 그럴 때마다 너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을 생각해봐. 그리고 이렇게 말해봐.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밤이 되면 하늘의 별을 바라봐.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줄 수 없지만,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아. 내 별은 아저씨에게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되는 거야. 그럼 아저씨는 어느 별을 바라보더라도 금세 행복해질 거야. 그 별들은 모두 아저씨의 친구가 되는 거니까."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지 말아야 해.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을 느껴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해."  


편협한 나에게 '정여울'은 몇 안 되는 '믿고 읽는 작가'다. 이른바 '정여울 유럽 시리즈(『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나만 알고싶은 유럽 TOP10』'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그림자 여행』 등에서 보여준 따스한 시선과 내면으로 침잠하는 '고민(성찰)'들은 위로와 함께 깊은 울림을 준다. 다만,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는 애초에 한계가 뚜렷한 기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어린 왕자』에 '덧붙여진' 사색들은 '사족(蛇足)'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건 정여울의 책임은 아니다. 『어린 왕자』는 그 자체로 워낙 완전해서 어떤 글을 덧대더라도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신비로운 작품이다. 『어린 왕자』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이해시키려는 수많은 책들이 나왔지만, 독자들의 평가가 시원찮았던 까닭은 그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어린 왕자』 속 다음의 문장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하며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을 그려주자, 놀랍게도 어린 왕자는 그동안의 모든 어른들과 달리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아니, 아니야! 난 보아뱀의 배 속에 들어 있는 코끼리는 싫어."

(…) 고장 난 비행기를 고치는 일이 우선 급했던 나는, 상자 하나를 대충 그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상자란다.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어린 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게 바로 이거야! 이 양을 먹이려면 풀이 많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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