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그대의 자유를 발가벗기는 복면금지법을 금지하라

너의길을가라 2015. 12. 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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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 폭력 시위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복면금지법'에는 반대한다." 뭔가 좀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원래 정상적인 논리 구성이라면 이런 문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불법 · 폭력 시위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를 (더욱 강하게) 규제하는 법에 찬성한다." 가령, 쇠파이프 등을 시위현장에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행위까지를 처벌하겠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왜 '복면'인가? 우리는 왜 '복면'을 이야기하게 됐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복면 시위=불법·폭력 시위'라는 등식을 만들어버린 탓이다. 지난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슬람국가(IS)도 지금 그렇게(복면 쓰고) 하고 있지 않느냐"며 시민들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빗대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복면착용 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새누리당은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5일 '복면금지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모든 시위에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게 아니다. 비폭력, 침묵 시위는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이 법안이 집회 · 시위의 위축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기에 '복면금지법'에 반대하는 것이다.



헌법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헌정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오랜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거쳐 왔고, 또 남북분단이라는 특이한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집회 및 시위의 자유에 대한 제한과 침해가 유독 심했다고 볼 수 있다. 아주 최근까지도 시위의 자유가 집회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기본권인지의 여부가 문제되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시위 또는 행진 등의 문제는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따라 법적 문제로 비화해 왔기 때문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오랫동안 수많은 위헌 논란과 법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2010년 법제처가 발행한 헌법주석서에 나오는 구절)


대한민국의 헌법은 집회 ·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의 정부들도 껄끄럽고 불편하기만 한 집회 · 시위를 방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사법부가 흔들림 없이 집회 · 시위를 보장하는 내용의 판례로 바람막이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 2003년, 외교기관 경계 100m 이내 시위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

"외교적 마찰의 우려가 없는데도 외교기관 인근이라는 이유로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법조항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어긴 것"


○ 2011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집회 · 시위를 막기 위해 서울광장을 에워싼 경찰 차벽에 대해 위헌 결정

"서울광장에서 일체의 집회는 물론 통행조차 금지한 경찰의 차벽 설치는 전면적이고 극단적 조치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했다"


○ 2013년,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와 시위를 금지한 긴급조치에 위헌 결정

"입법목적의 정당성이나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헌법개정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비롯한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해 집회 · 시위를 위축시키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한편, 경찰이 5일로 예고된 '2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해 금지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김정숙 부장판사)는 "집회 금지는 집회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즉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라 답했다.



그렇다면 '복면금지법'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이 법안이 집회 · 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닐까? 섣불리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위헌 소지가 매우 큰 법안이라 볼 수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마스크만 써도 처벌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복면(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다른 범죄 혐의가 없는데도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미 2003년 10월 헌법재판소는 "복장의 자유도 집회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적이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복면금지법에 대해 "집회 시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복면금지법'을 들고나와 이른바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 공포 분위기로 시민들을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 서민호 화백 - 


6.15 경남본부의 김영만 대표는 "집회 참가자들이 복면을 쓰는 이유는, 경찰의 무차별 채증에 초상권 침해를 받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 본능과 최루액으로부터 최소한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 설명한다. 복면은 '범죄의 도구'라기보다는 '저항권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복면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복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표현인 셈이다.


정부는 "최근 3년간 폭력시위 203건 중 129건에서 복면사용자가 출현했고 2008년 촛불집회 106회 중 폭력시위 발생은 52회, 이중 복면시위 출현 44회 등 복면 참가자의 출현과 폭력시위 간에 상관관계가 높다"는 18대 국회에 발의된 국회 상임위의 검토보고서를 근거로 '복면금지법'을 관철시키고자 하고 있지만, 이 숫자만을 가지고 '복면을 한 시위대의 출현=폭력 시위'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또, 독일, 미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이 복면금지법을 도입한 것을 두고, 이것이 '선진적'인 정책이라 홍보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와는 다른 역사적 혹은 사회적 배경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령, 독일은 나치스 역사의 과오 탓에 전체주의 경향을 경계하기 위해서, 미국은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 KKK의 인종차별주의를 겪었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박경신 교수는 "미국의 경우, 복면금지법에 대해 다양한 상반된 판례들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미국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텍사스, 테네시, 인디애나, 오하이오 주 등은) 대부분 규제의 근거가 되는 (복면 관련) 위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헌판정이 내려졌다"고 지적했다. 복면의 위험성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느 국가가 '복면금지법'을 도입했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다른 생각을 배척하지 않는 것.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해서 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면, 언젠가는 그 재갈이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것이 설령 우리를 불쾌하게 하고 또는 불편하게 할지라도 그마저도 보장하는 것, 마음껏 떠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인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한편, 집회 ·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에 대해 스스로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평화적인 시위 문화 정착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우리가 먼저 법을 어기면 당당해질 수 없다.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다. 이 싸움으로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는 <송곳>의 이수인 과장의 말을 기억하자. 우리가 당당해야 우리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민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망설임 없이 자유의 편에 설 것이다. 누군가가 그대의 자유를 발가벗기고자 한다면 나는 반대를 외칠 것이다.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일부 과격한 단체를 골라내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면 흡사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복면금지법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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