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을 견디는 방식. 부당과 허위의 가혹한 시간을 견디는 방식으로 한석율은 입을 닫았다. 오로지 무감해지는 법만 연마하는 사람처럼 시간을 지우고 있었다. 그는 웃음을 잃었고, 우리는 그를 잃었다. 성가시기만 했던 그의 수다가 그리워지기 시작한 건 오래 전이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감히 섣부른 충고를 건넬 수 없었다. 회사에 들어오고 1년 5개월, 우리는 충분히 알게 됐다. 시련은 셀프라는 걸. 그래도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돌을 잃어도 게임은 계속됩니다. 한석율 씨."
이번 주 tvN 금토드라마 <미생> (연출 김원석, 극본 정윤정)은 여전히 밀도(密度) 있는 전개로 시청자들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를 향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16국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그려졌는지 간단히 리뷰해보도록 하자.
우선,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장그래가 자신의 아이템을 빼앗겨야만 하는 과정이 밀도 있게 그려졌다. 안영이는 마 부장의 알력으로 본사로부터 호평을 받은 사업 아이템을 포기해야만 했다. 분위기 메이커 '한석율'은 성 대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트레이드 마크인 5대 5 가르마 헤어스타일마저 바꿨다.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오 차장이 퇴사한 선배를 만나 나눴던 대화였다. 선배는 "피자집이 잘 됐다. 그런데 마트 들어오고 문 닫았다. 퇴직, 대출까지 받으면서 다 쏟아 부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줄 알았다"면서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고 조언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얼해졌다.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러했으니까.
"허리띠 졸라매도 힘들다"..자영업 점포매물 다시 늘어나 <뉴스와이어>
자영업의 몰락..'맞벌이 감소' 기현상까지 <SBS>
"자영업 위기 고조..쇠퇴기·재창업 점포 지원해야" <연합뉴스>
모임 잦은 연말에도 소비심리 '꽁꽁'.. 자영업자들 휘청 <뉴시스>
자영업 3년내 10곳중 6곳 폐업..중기연구원 조사 <매일경제>
[침몰하는 자영업, 탈출구를 찾아라] "비정규직 재취업 싫다"..자영업에 몰리는 5060 <한국경제>
자영업의 위기, 전체 가계소득 끌어내린다 <한겨레>
'자영업'이라는 키워드로 기사들을 검색하면,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진다. 바로 '지옥'의 현실이다. 각종 자료들을 살펴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와닿는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 자영업 페업자 수'는 793만 8,683개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외환 위기 직전인 2007년에 84만 8.062개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2011년(84만5,235개)과 2012년(83만3,195개) 순이었다.
사실상 외환 위기 수준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만큼 경제 사정은 바닥을 기고 있다. 문을 닫는 자영업이 많기 때문일까?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KB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1998년 38.3%에서 2013년 3월 말까지 27.2%로 약 10% 가량 줄었다. 하지만 전체 가계부채 중 자영업자 대출의 비중은 2010년 말 36%에서 2013년 3월 말 39%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1인당 대출은 2013년 3월 말 평균 1억2천만 원으로, 임금근로자(4천만 원)의 3배에 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채(負債)의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부채의 질도 나쁘다는 것이다. 만기일에 한꺼번에 갚는 일시상황 방식 대출 비중이 자영업자는 39.3%로 임금 근로자(21.3%)에 비해 훨씬 크다. 또, 은행과 제2금융권 등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경우 연체율이 2010년 말 0.84%에서 2013년 3월 1.34%로 높아졌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이 느끼고 있을 압박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희망이 있다면 지옥도 살 만한 곳일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경기 불황과 소비심리 위축은 연말연시에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매출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강원 춘천시의 한 먹자골목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정 씨는 "작년에도 힘들다고 느꼈지만 올해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11월말부터 작은 모임 예약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절망을 토로했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 씨는 "거리를 나가봐라.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직원들 월급은커녕 정말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 인건비를 줄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곳이 춘천을 대표하는 먹자골목 중 하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른 가게들은 어떻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다. 추운 날씨조차 야속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영업의 현실, 그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12년 개입사업자 221만 5,754명이 월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개인사업자 395만 6,702명의 56%에 해당하는 숫자다. 물론 자영업의 위기는 퇴직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자영업 진출과 맞물려 있는 측면이 있다. 철저하고 정교한 시장 조사 없이 무분별하게 뛰어든 잘못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영업의 위기는 장기간 동안 이어져온 내수부진과 불안정한 고용시장으로 인한 과당 경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거기에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 등이 겹치면서 더욱 심화됐다. 이를 3중고(三重苦)라고 한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에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상당수 자영업자들을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한편,
대기업의 약탈적 시장진입을 막는 것이 근본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괜찮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이토록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미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정년이 60살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누가 정규직을 뽑으려 하겠나.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가? 정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중규직' 제도를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자 은근슬쩍 '사실 무근'이라며 발빼긴 했지만, 정부의 기본 입장이 무엇인지는 이미 확인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 시장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영업으로의 쏠림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오히려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일방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편가르기'는 여전하고, 사람들은 '더 나아지는 방향'이 아니라 '다 함께 죽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굴리고 있지만, 딱히 어떤 희망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희망이 없는 지옥,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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