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복희(진희경)는 고동만(박서준)과 최애라(김지원) 중 누구의 엄마일까?
KBS2 <쌈, 마이웨이>가 난데없이 '남일 찾기'에 빠졌다. 마치 tvN <응답하라> 시리즈가 '남편 찾기'를 통해 시청자와의 '밀당'을 이어나갔던 것처럼.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달콤쌉싸래한 분위기로 진행됐던 <응답하라> 시리즈와 달리 <쌈, 마이웨이>의 경우에는 씁쓰레한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닮은꼴을 찾으려면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윤균상)의 잃어버린 여동생 어리니를 찾는 과정과 닮아 있는 듯 하다. 궁금증이 유발되기보다 의아함이 앞선다. '뭣이 중헌디?'
물론 <쌈, 마이웨이>의 이와 같은 설정이 난데없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드라마 속에서 '남일 빌라'의 주인 황복희의 존재감은 생각보다 강렬했고, 도대체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커져왔던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월세를 꼬박꼬박 챙기는 평범한 집주인 쯤으로 여겼지만, 그가 보여주는 행동거지는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용접복을 갖춰 입고 빌라 구석구석을 수리하고, 방역에도 손수 나서는 등 황복희는 말 그대로 못하는 게 없는 능력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뿐인가. 애라를 무릎 꿇렸던 백화점의 갑질 VIP를 제명시키고, 동만과 악연으로 얽힌 김탁수(김건우)가 황장호(김성오)의 체육관을 넘보자 아예 통째로 인수하는 등 재력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쯤되자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도대체 황복희는 누구인가? 일각에서는 순대 장사를 하며 고동만의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는 황장호와 청춘들을 묵묵히 지원하는 황복희를 '진정한 어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조명하기도 했다. 이들의 관계는 왠지 모르게 가슴 뭉클했고, 또 한번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라는 의문이 든다. 굳이 황복희가 동만이든 애라든 간에, 특정한 누군가의 엄마일 필요가 있었을까? <쌈, 마이웨이>는 애써 '혈연'이라고 하는 관계를 삽입함으로써 '애틋함(한바탕 눈물 바다가 예상된다)'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이러한 설정이 오히려 '진정한 어른'에 대한 판타지를 축소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되면 황복희가 보여준 청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어른'으로서의 자각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핏줄'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전환된다.
황복희가 누구의 엄마일까, 라는 궁금증이 드라마의 핵심 줄거리로 떠오르면서 황복희의 캐릭터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초중반까지만 해도 황복희는 매사에 당당했고, 할 말을 하는 '사이다'이자 '걸크러시'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혈연 관계가 강조되면서 그의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난 13회에서는 라식 수술을 받고 눈부심 때문에 몸이 휘청하며, 동만과 애라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과거 자식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로 '전락'한 것이다.
극의 후반으로 치닫는 시점에서 <쌈, 마이웨이>는 '청춘'에 맞춰져 있던 초점을 틀어서 황복희에게 시선을 고정하기 시작했다. 분량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급기야 황복희의 존재를 알게 된 동만의 아빠인 형식(손병호)과 애라의 아빠 천갑(전배수)이 차례차례 황복희의 집을 찾아드는 꼴이라니. 이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하려는 장치였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만큼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게다가 동만의 아빠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 아닌가.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했는데도, 혹자는 '그래서 황복희가 누구 엄마야?'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황복희는 애라의 엄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남일'이라는 이름은 연막에 가깝다. 하지만 애라가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복희가 굳이 '혼숙을 금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무래도 자신이 그와 같은 이유로 인해 '남일'을 낳게 됐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황복희가 애라의 엄마여야 하는 이유가 여럿 있다. 우선, 동만의 엄마가 살아있는 것과 달리 애라의 엄마는 죽은 것으로 설정돼 있다. 만약 황복희가 동만의 엄마라면 이 드라마는 파국이 불가피하다. 제작진이 '막장'에 가까운 무리수를 둘 리가 만무하다. 또, 이미 황복희에겐 '남일(곽시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이 있다. 14회 후반부에서 김남일은 섬뜩할 만큼의 질투를 보여줬는데, 진짜 남일이 그와 같은 '아들'이라면 또 하나의 파국이 예고된다. 따라서 진짜 남일은 '딸'이어야 한다.
이처럼 '답'은 예정돼 있으나 <쌈, 마이웨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남일 찾기'로 쏠리는 건 못내 아쉽다. 고동만과 최애라, 김주만(안재홍)과 백설희(송하윤), 이 네 명의 청춘의 삶과 사랑이 그만큼 뜨거웠고, 이들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꿈을 향한 청춘들의 치열한 도전이 결국 '금수저 엄마의 등장'으로 귀결된다니.. 차라리 황복희와 황장호를 '좋은 어른'이라는 포지션에 두고, 청춘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역할을 고수했다면 어땠을까. 그것이 밋밋하다면, 둘 간의 멜로를 강화하는 것 정도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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