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헬조선의 신음에 청년배당으로 응답하다

너의길을가라 2015. 10. 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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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88만 원 세대'부터 '삼포세대', 'N포세대' 등 절망적인 현실 속에 놓인 청년층을 특정 용어로 이름붙이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 속에는 기성세대의 안타까운 시선이 녹아 있었지만, 무시와 비아냥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청년층을 상처입히기도 했다. 지옥(Hell)과 조선(朝鮮)을 합성한 신조어인 '헬조선'은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층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네이밍(naming) 되는 객체에 머물렀던 청년층이 이 사회에 대해 내뱉는 분노와 절망이자 자조섞인 신음이라고 할까?



<디시인사이드>의 '정도전갤러리'에서 19세기 말 근대국가로 발돋움한 일본과 비교해 뒤쳐지진 조선 왕조를 비하하는 용어로 시작됐던 '헬조선'은 포털 사이트 등 각종 커뮤니티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에서 지금의 현실을 비추는 용어로 빈번히 등장하면서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고, 이제는 언론에서도 공공연히 사용하는 하나의 사회적 언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현실을 되짚어보자. 비상식적인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강요했고, 그 빚더미는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꼬리표처럼 달라붙는다. 재능기부 ·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착취, 취업을 둘러싼 극도의 경쟁, 그나마 직장을 얻더라도 비정규직으로 전전해야 하는 현실은 청년층을 절망 속으로 밀어넣었다. 왜 부딪치지 않았겠는가? 왜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유통기한이 지난 지 오래이고, 개인의 노력(노오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쌓여갔다.


ⓒ 한겨레


여전히 '네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야'라는 논리로 일관하는 사람들에겐 '남탓'으로 비춰지겠지만,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화살의 방향을 '조선(대한민국)'으로 겨냥하는 문제 해결방식은 바람직한 것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치환될 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이 발견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헬조선'은 냉정한 현실직시일 뿐 아니라 성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분노가 바꾸려는 열망으로 전환되지 않고, 무기력한 자조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헬조선'이라는 용어에 대한 다수의 걱정은 그런 부분일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청년층의 신음소리에 기성세대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응답을 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기득권을 점하고 있는 기성세대가 어떠한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면, 갈 곳을 잃은 청년층은 계속해서 수렁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 의미에서 성남시에서 시행하는 이른바 '청년배당'은 매우 의미있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기본소득제'를 기본 개념으로 하고 있는 '청년 배당 지급 조례안'은 성남에 3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살고 있는 만 19세~24세 청년들에게 1인당 분기별 25만 원을 지원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지급 대상은 1만여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지급 금액은 성남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나 적립카드 형태로 지급된다.


'청년배당'이 갖는 두 가지 의미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헬조선'을 부르짖는 청년층의 외침에 대한 응답이라는 측면과 성남 지역의 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성남 시장은 "청년배당은 청년고용과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투자'"라면서 "청년배당은 단순한 예산소비가 아니라 청년계층에 대한 사회적인 투자"라고 강조했다. 


ⓒ 오마이뉴스


청년실업 문제를 '청년희망펀드'라는 기부(시혜)로 접근하고자 했던 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정책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성남의 고민이 엿보인다. 물론 갈 길이 멀다. 무상공공산후조리원, 무상교복 등 이재명 성남시장이 추진했던 복지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는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이 노골적인 반대가 예상된다. 설령 조례가 성남 의회의 심의를 거쳐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보건복지부와의 한판 승부가 남아 있다. 


과연 정부가 성남의 '청년배당'을 받을까? 현재로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이유로 복지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퓰리즘으로 몰려 난도질을 당할 것도 충분히 예상된다. 그럼에도 최근 보편적 복지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선별적 복지로 회귀하려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복지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이재명 시장의 시도는 반갑기만 하다. 


이재명 시장은 "보편적 복지 확대는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지만, 소외되는 누군가 없이 국민 전체를 위한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가장 기본된 역할이기도 하다. 임금피크제나 노동개혁으로 청년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넌센스에 가깝다. 기업과의 연계도 중요하겠지만, 정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조차 방기(放棄)한다는 건 비겁한 일이다. 


'청년배당'은 아르바이트에 인생을 저당잡힌 청년층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내미는 정책이다. 최소한의 수당을 통해 그들이 자신들의 꿈을 향해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또, 헬조선 속에서 신음하는 청년층에게 내미는 기성세대의 따뜻한 손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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