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땅콩회항 사무장의 인터뷰, 건강한 분노가 모욕감 주는 사회 바꾸길

너의길을가라 2014. 12. 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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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충격과 분노 속으로 몰아넣었던 '땅콩 회항'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지시로 비행기에서 쫓겨나야 했던 경력 18년 차 사무장이 참고인 자격으로 12일 검찰에 출석해 비공개 조사를 받았다. 한편, 조 전 부사장도 같은 날 국토교통부의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의 진술에는 어긋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바로 폭력과 거짓진술 강요 여부이다.




KBS는 대한항공 사무장을 단독으로 인터뷰했는데, 그의 주장들은 당사자의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인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모욕감과 인간적인 치욕, 겪어보지 않은 분은 알 수 없을 겁니다"며 시작되는 인터뷰에서 사무장의 얼굴은 매우 경직되어 있었는데, 그가 얼마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4주간 정신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사무장의 주장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자신과 여승무원을 무릎을 꿇린 상태에서 모욕을 줬고, 삿대짓을 계속하면서 기장실 입구까지 밀어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무릎 끓은 여승무원에게 파일인지 책인지를 집어던'졌다는 당시 이코노미석 앞쪽에 앉아 있었던 한 승객의 증언에 조금 달리 조 전 부사장은 사무장도 무릎을 꿇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조 부사장은 심한 욕설과 함께 서비스 지침서 케이스의 모서리로 사무장의 손등을 수 차례 찌르는 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사무장은 "당장 연락해서 비행기 세워. 나 비행기 못 가게 할 거야 라는 말을 하는 상황에서 제가 감히 오너의 따님인 그 분의 말을 어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대한항공의 현주소가 아닐까? 대한항공 회장의 맏딸인 부사장이 감정적으로 비행기를 세울 수 있다는 것, 그의 말은 곧 '어명(御命)'처럼 받들어지는 것은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제왕적 경영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사무장이 대한항공으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땅콩 회항'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대한항공 직원 대여섯 명이 거의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사무장인 자신이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해 조 부사장이 화를 냈지만, 욕을 한 적은 없고, 자신이 스스로 비행기에서 내린 것'이라고 진술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대한항공 측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처음에 대한한공이 내놓았던 '사과문(조현아 변명문)'도 이제 이해가 된다.



한편, 조현아 부사장은 사무장의 주장(폭행 · 거짓진술 강요)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뗐다. 거듭되는 질문에 "처음 듣는 일이다. 뭐라고 말씀 드릴 수 없다"고 대답했다. 당황한 상태에서 나온 답변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 전 부사장의 대답에는 다소 의아한 지점이 있다. 자신이 한 행동(폭행)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답하는 게 정상일까? "처음 듣는 일"이라는 대답도 마찬가지다.


무릎을 꿀리는 등 모욕을 주고, 폭행을 가한 것은 다양한 증언과 진술을 토대로 보면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문제는 '거짓 진술 강요'인데, 이 부분은 녹취나 관련자들의 진술이 나오지 않은 이상 실체를 규명하기 까다롭다. 상황적으로 판단하자면 아무래도 사무장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 대한항공이 직원 입단속에 들어간 것을 고려하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무장은 "사과문 발표됐고, 거기엔 전혀 저와 제 동료인 승무원에 대한 배려나 미안함이라든지 품어주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진심으로 사과하겠다"고 말했고, 직접 사과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라고 대답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 게 8일이니, 벌써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했어야 했다. 당장 찾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 사이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이 한 일은 무엇이었나? 사과문이랍시고 '조현아 변명문'을 제출하고, 사무장에게는 직원들을 보내 거짓진술을 강요했다. 진심으로 사과하겠다는 조 전 부사장은 과연 어떤 식으로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사과를 할 것인가? 무릎이라도 꿇을 것인가? 사무장과 승무원이 받아야 했던 인간적 모멸감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대한항공의 제왕적 경영은 어찌할 것인가?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분노' 그 자체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사회 내에 팽배한 갑질 문화를 바꾸는 데까지 이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갑질'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영화 <카트>에서도 잘 그려진 것처럼, 무릎을 꿇리고 모욕감을 주는 '미친' 갑질은 오너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건강한 분노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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