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의학 드라마 <흉부외과>는 ‘심장을 훔친 의사들’이라는 부제(副題)가 비유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첫 장면부터 진짜 심장을 훔쳐 달아나는 의사를 보여줬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심장 이식 수술을 위해 심장을 운반하던 태산병원 흉부외과 펠로우 박태수(고수)는 동료 의사를 따돌리고 자신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수술실에서 심장이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던 흉부외과 최석한(엄기준) 교수는 당황했다.
최석한은 분노를 추스르며 박태수를 설득했다. “이제 다 왔어. 이 수술만 끝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어. 지금이라도 당장 심장 갖고 돌아와!” 병원 내에서 모종의 관계를 유지해 왔던 두 사람, 그들이 원하는 건 뭘까? 설득은 실패했다. 박태수는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 원한 거겠지.”라는 냉랭한 대답으로 밀월 관계가 끝났음을 선언한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에 있었던 걸까? 시간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흉부외과>는 '실력은 있지만 힘없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이야기하고 있다. 해원대 출신 박태수는 정의감에 불타는 의사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려 애쓰고, 의료 사고를 덮으려는 전공의를 고발한다. 그로 인한 불이익도 감수할 만큼 꼿꼿한 성격이다. 최석한은 태산 병원에서 유일한 해원대 출신이다. 어려운 환자나 위험한 수술을 떠안는 등 온갖 멸시를 당하지만, 수술 실력만큼은 최고인 능력있는 의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최석한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박태수의 어머니를 수술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이렇듯 소속 집단으로부터 배척받는 외톨이인 두 사람이 태산병원에서 다시 만나고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동지가 된 것이가. 두 사람의 모종의 관계는 확장성 심근증으로 심장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박태수 엄마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사건의 중심에는 ‘심장’이 있다.
뜬금없이 들릴 수 있겠지만, tvN <비밀의 숲> 이야기를 해보자. <비밀의 숲>이 방영된 후, 한동안 웬만한 드라마에는 감흥을 느낄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사회 고발’을 다룬 다른 드라마는 급격히 시시해졌다. <비밀의 숲> 종영 직후에 방송된 SBS <조작>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드라마였지만, <비밀의 숲>으로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 아쉬움만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남아있다.
<흉부외과>도 같은 곤경에 처했다. 공교롭게도 메디컬 드라마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린 JTBC <라이프>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처지다. 물론 <라이프>는 환자와 수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본이 병원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거시적 관점의 사회 고발 드라마였던 만큼 기존의 의학 드라마와는 결이 달랐던 게 사실이다. 그런 차이점을 감안해도 <흉부외과>의 만듦새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세련된 느낌이 없다.
의사가 심장을 훔쳐 달아나는 상황이라든지, 자신이 고발해 수술 정지 처분을 받은 의사에서 어머니 수술을 부탁하는 상황은 매우 작위적이다. 그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뺨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장면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일들을 소재로 삼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극적인 이야기들만 이리저리 끌어모았다는 인상이다. 그러다보니 전반적으로 작가의 의욕만 앞서있다는 인상을 준다.
배우들의 연기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건 캐릭터와 대본 탓일 가능성이 높다. 과장된 상황과 인위적인 대사들은 배우들이 자신의 기량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도록 억제했다. 평면적인 악역인 병원장 윤현일 역을 맡은 정보석은 연극톤의 연기로 일관한다. 흉부외과 과장 구희동(안내상), 기조실장 이중도(차순배)를 비롯한 병원 내의 인물들은 캐릭터가 뻔하디 뻔해 신스틸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나마 엄기준과 고수가 분전하고 있지만, 그들의 연기도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 실제로 고작 한 살 차이의 두 사람이 한쪽은 ‘교수님’이라고 깍듯이 대하고 한쪽은 하대를 하는 양상이 썩 매끄럽지 않다. '실력은 있지만 힘없는 이들의 고군분투’라는 측면에서 응원할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만듦새가 아쉬워 몰입이 어렵다. 히든 카드였을 서지혜의 투입도 큰 효과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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