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당신의 주사위를 확인하라!

너의길을가라 2014. 3. 6.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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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개인화된 이 소비사회에서 우리가 계속 던질 수밖에 없는 주사위들은 대부분 불평등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정해져 있다.


-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논란 끝에 종영한 <더 지니어스2>의 제7회(지난 1월 18일 방송)는 '신의 판결'이라는 메인 매치 게임으로 진행됐다. '신의 판결'이라는 게임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자신이 미리 예측했던 숫자가 나오면 승점을 획득하는 방식의 게임이다. 완전히 운으로 결정되는 게임이라고? 물론 여기에는 비밀이자 필승법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사위가 분리되어 각각 분리된 주사위들을 잘 조합하면 자신의 원하는 숫자를 100%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가령, 1~6까지 숫자가 적힌 주사위 2개를 던져 일정한 숫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운'에 달린 문제지만, 주사위를 분리·조합해서 5와 6만 적힌 주사위를 2개 만든다면 어떻게 던져도 그 숫자의 합은 11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의 판결'에서는 출연자들이 주사위를 조합할 시간과 가능성이 주어진다. 공평한 게임인 셈이다. 모두 똑같은 기회를 보장받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만약 출연자들에게 처음부터 분리·조합할 수 없는, 숫자가 정해진 주사위를 지급했다면 어떨까? 당연히 하나마나한 게임, 불공평한 게임이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럴 경우, 확률은 이미 정해져있고, 심지어 승패까지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의 현실이야말로 하나마나한 게임, 불공평한 게임이 아닌가? 물론 대한민국 사회는 1만 적힌 주사위 2개를 주고 11라는 숫자를 만들어내라고 할 정도로 야박(?)하진 않다. 그 정도로 철저한 '계급'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의 대물림과 교육의 대물림의 구조는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다.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벽을 허무는 것이 사실상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이제는 그 사용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통계 자료들을 통해 조금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대한민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는 2012년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9번째로 높다. 2010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상위 10% 가구의 평균 소득은 하위 10% 가구의 10.5배에 달했다. 또, 대한민국의 빈곤율(상대적 빈곤을 나타내는 지표로, 중위소득의 50%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16.5%로 OECD 회원국 중에서 6위다. 



- <세계일보>에서 발췌 - 



보다 디테일한 자료들을 좀 살펴보면, 대한민국 노인 빈곤율 상승 속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고, 노인 빈곤율 자체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의 추이를 살펴보면, 2007년 44.6%, 2008년 45.5%, 2009년 47%, 2010년 47.2%, 2011년 48.6%로 가파른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인 '교육' 쪽의 사정은 어떨까? 참담하기는 여기도 마찬가진데,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교육비 지출액은 6.58배에 달했다.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는 월 평균 50만 4,300원을 지출한 반면, 소득 1분위(하위20%)는 7만 6,600원에 불과했다. 교육격차의 심각성은 정말이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절망적인 수준이다. 이러한 교육격차, 즉 교육 불평등은 필연적으로 계층 고착화를 낳는다. 주사위의 수자가 정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빈곤탈출률(저소득층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이동한 비율)은 2000년 48.9%에서 2012년 23.45%로 곤두박질 쳤다. 


부자와 권력자에 대해서는 거의 숭배에 가까운 감탄을 표하면서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은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이러한 성향이야말로 우리의 도덕 감정을 타락으로 이끄는 주된 원인이자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다. 


- 애덤 스미스 - 





이상에서 살펴본 자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천민 자본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사람들의 도덕 감정은 타락 일로를 걷고 있다. 돈이 지상 최고의 가치로 군림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돈 타령'을 할 수밖에 없는 부모 탓일까? '2013년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에서 고등학생 응답자의 무려 47%가 '10억 원이 생긴다면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또, '이웃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나만 잘 산면 된다'는 응답은 초등학생 19%, 중학생 27%, 고등학생 36%이나 나왔다. 이런 대답들이 어른이 아닌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것이라는 것이 충격적이다.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만회하거나 역전시킬 가능성도 소멸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늘도 내일도 미친듯이 열심히 살고 있지만, 딱히 빛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이제 잠시 멈춰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는 주사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1과 2로만 아뤄진 주사위를 아무리 던져본들 11이라는 숫자가 나올 리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사위가 잘못 주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저 나 자신을 탓할 뿐이다. 조금 더 세게 던져 볼까? 조금 더 높이 던져볼까? 라면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기 시작했다. 


변상욱 기자는 처드 일킨슨의 『평등이 답이다』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불평등이 커질수록 경쟁이 커지고 불평등은 사회정책에서 더 확대되는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을 줄이면 사회적 약자는 자존심이 손상되고 자신보다 더 낮은 계층을 차별할 위험이 커지며 사회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말한다.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비롯해 최근에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계속해서 누적되어 왔던 것이 이제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자, 이제 멈춰서야 한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그래서 정신 없이 달리고 또 달리게끔 만드는 이 주사위 게임을 잠시 멈춰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주사위를 확인하자. 아무리 던져도 11이라는 숫자가 나오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파악해보자. 문제는 나와 당신이 아니다. 우리가 아니다. 6면이 모두 1로 세팅된 주사위의 문제이고, 그 주사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넨 사회의 문제이다. 이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하루빨리 이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수많은 힌트들이 주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무기력한 '좀비처럼' 주사위를  던지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우리 또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어째서 우리는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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