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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시대, 아이유의 공감, 아이유의 위로

너의길을가라 2018. 1. 1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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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2017년 3월 24일, 아이유가 보낸 ‘밤편지’가 도착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마치 펜을 꼭꼭 눌러 한 글자 한 글자 고이 적어 띄운 연애편지를 받은 것 같은 설렘이었다. 제목부터 두근거렸다. 아날로그적인 정겨움을 머금은 편지라는 말이 밤이라는 감성을 입자 완전히 새로운 단어로 태어났다. 밤은 응당 차가워야 함에도, '밤편지'에는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그건 노래에 덧입혀진 아이유의 음색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제목부터 가사, 멜로디, 음색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노래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밤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아니 듣고 또 들으며 지냈다. 얼마 뒤, 또 다른 선공개곡 '사랑이 잘'(2017. 4. 7.)이 공개됐다. 권태기 연인의 현실적인 대화를 연상케 하는 '사랑이 잘'은 앞서 공개된 '밤편지'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노래였다. 오혁과의 호흡도 돋보였는데, 듀엣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아이유의 기량이 여실히 발휘됐다. 그로부터 2주 후 정규앨범 'Palette'(2017. 4. 21.)가 발매됐다. 타이틀 곡은 물론 수록곡 모두 듬뿍 사랑을 받았다. 아이유라는 가수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이유의 걸음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가을이 되자 두 번째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2017. 9. 22.)으로 돌아왔다. 가을 감성을 듬뿍 머금은 채 말이다. 특히 양희은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가을 아침’은 놀라운 청량감을 선물했다. 또, 에픽하이의 '연애소설'(2017. 10. 23.)을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그야말로 '열일'했던 한 해였다. '2017 멜론뮤직어워드(MMA)'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또, 한국갤럽이 실시한 '올해를 빛낸 가수' 여론조사에서 트와이스(9.1%)를 제치고 1위(15.2%)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열린 '제32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시상식의 주인공도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이유였다. '밤편지'가 디지털 음원 부문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여성 솔로 가수가 골든디스크 음원 대상을 수상한 건, 2007년 아이비 이후 무려 11년 만의 일이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었고, 굉장히 놀라운 성취였다. 이렇듯 2017년은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아이유가 작정하고 음악적 성과를 쏟아냈던 해였다. 대상만큼 빛났던 건, 아이유가 남긴 특별한 수상 소감이었다. 


대상 수상자로 호명된 아이유는 무대에 올라 "'밤편지'가 작년 3월에 나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꾸준히 사랑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똑부러진 수상 소감이었다. 도움을 줬던 사람들을 호명하며 일일이 고마움을 전하고 팬들에게도 거듭해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진행자 이승기에게 "더 해도 돼요?"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나서 아이유는 마음 속에 담아뒀던 진짜 하고 싶은 말들, 진심이 가득 담긴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사실, 아직 조금 많이 슬픕니다. 사람으로서도 친구로서도 뮤지션으로서도 너무 소중했던 한 분을 먼저 미리 먼 곳으로 보내드리고, 왜 그분이 그렇게 힘들고 괴로웠는지 그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것 같고, 또 저도 전혀 모르는 감정은 아닌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많이 슬프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는데요. 저 뿐만 아니고 아직 많은 분들이 슬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 다 너무 내일 일이 너무 바쁘고 한 달 후도 걱정해야 되고 일년의 계획도 세워야 되는 사람들이라서 그 슬픈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보내주지 못하는 상황이 또 많이 안타깝고 더 슬픕니다.


지난해 너무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샤이니의 종현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는 일이었다. 연말이다 새해다 해서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가슴 한 켠에 남겨둔 일이었다. 시간에 쫓기고 삶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상처조차도 뒷전이었다. 얼마 전 종현의 추모 공간이 방치됐다는 내용의 기사는 잊고 있던 고통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누군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공감이 필요했고,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유는 '공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도 아직 많이 슬프다면서, 그 괴로움의 이유와 감정을 전혀 모르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연소시키지 못한 슬픔이 남아있는 것이, 내 삶에 급급해 좀더 깊이 슬퍼하지 못하는 상황이 결코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다독인다. 공감은 최고의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들은 사람들의 덧나있던 상처를 살며시 보듬었다. 그리고 시상식에 참석한 여러 아티스트들을 향해 진심을 담은 조언을 건넸다.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프면 힘없고 아프면 능률 떨어지고 그런 자연스러운 일들이 좀 자연스럽게 내색되고 또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저희 아티스트 분들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니만큼 프로의식도 좋지만 사람으로서 먼저 스스로를 돌보고, 다독였으면 좋겠습니다. 내색하려 하지 않으려 하다가 오히려 더 병들고 아파지는 일이 없었으면, 진심으로 없었으면, 정말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유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현재의 자신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내는 '신호'에 곧장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를 돌보고 다독이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제발 좀 내색하며 살자고 강조했다. 그건 비단 아티스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었다. 연예계에서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온, 그래서 수많은 상처들을 마주했을 그가 건네는 성찰적인 조언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모두 잘 잤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유의 마지막 인사는 '잠'이었다. 한때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던 그에게 밤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다고 한다. '모두 잠드는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의 외로움은 얼마나 시린 것이었을까. 그래서 아이유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당신만큼은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야말로 아이유가 생각하는 사랑인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무릎'이 되고, '머리칼을 넘겨주는 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유의 진심처럼, 더 이상 아픔이 없길.. 깊은 잠을 자길.. 


그의 공감과 위로가 더할나위 없이 고맙다. 아이유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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