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시간이 없어서 유가족 못 만난다? 대통령은 교황을 본받으라!

너의길을가라 2014. 8.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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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하는 변명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시간이 없다'는 변명을 통해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꽤나 많이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변명을 하는 사람도, 그 변명을 듣는 사람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시간이 없다'는 말에 생략된 '진실'을 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와 '관심' 그리고 '애정'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시간이 없다'는 변명을 한다면, 그에게 있어 당신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관심이 없고, 애정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를 하기 마련이고,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잠깐의 틈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 · 30 재보궐 선거에서 전남 순천시곡성군에서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고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릴 만큼 측근 중의 측근이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을 위해 앞장서서 '변명'을 대신 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 일을 어떡하랴. 하질(下質)의 변명으로 오히려 국민의 화만 돋운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한 이 최고위원의 발언을 들어보도록 하자.



한수진/사회자 : 지금 대통령께서 유족 만난 것도 거의 넉 달 만인데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주 만나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 : 대통령님은 뉴스를 통해서나 보고를 통해서나 수도 없이 그런 보고를 듣고 있기 때문에, 10번을 보는 것이나 5번을 보는 것이나 뵙는 것은 아마 그 심정이나 문제를 고치려고 하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려고 하는 의지는 같다고 봅니다. 자주 뵈면, 기회만 된다고 하면 좋겠죠. 그렇지만 또 대통령은 다른 국정이 그런 게 있겠으나,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함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 때 제가 청와대 근무 했을 때 뵀던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유족을 자주 만나는 것이 어떻겠냐는 질문에 이 최고위원은 "자주 뵈면, 기회만 된다고 하면 좋겠다. 그렇지만 또 대통령은 다른 국정이 그런게 있다" 고 대답했다. 간단히 말해서 '다른 국정 때문에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풀어보면, '유족들 만날 시간 따윈 없다' 정도 일까? 그러면서 이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서 소홀함이 없다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박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도 대체 '소홀함이 없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새누리당은 조사진상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세월호 특별법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주장은 애초에 성립이 안 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 새누리당이 그렇게 계속 주장하고 싶다면 대한변협과 다투면 될 일이다. 사법 체계를 운운하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새누리당과 그 뒤에서 '오더'를 넣고 있는 청와대는 진상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가 령, 박상은 의원이 해운업계로부터 수천만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을 주목할 만하다. 과연 박상은 의원뿐일까? 지난 14일, JTBC <뉴스9>는 세월호 참사의 직접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컨테이너 부실 고박 관련 업체들이 인천 지역의 여당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준 사실이 있다면서 "해운업체 관계자들은 박상은 의원 2천210만 원을 비롯해 윤상현, 황우여 의원 등에게 각각 2천만원, 2천500만원을 후원했다. 개인 명의이긴 하지만, 로비 목적이 아니냐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합법적인 정치자금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역시 합리적은 의심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찔 리는 부분이 있는 건 새누리당 의원들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당일(4월 16일) 오전 10시에 서면으로 첫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오후 5시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약 7시간의 시간이 증발한 셈이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의 조원진 의원은 '대통령의 사생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쉴드를 치다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조선일보>와 일본 우익 언론인 <산케이신문>으로부터 조롱을 당하기까지 했다. 청와대는 <산케이신문>의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 라는 기사에 대해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청와대가 <산케이신문>의 보도 내용을 문제 삼기 위해서는 <산케이신문>이 인용한 <조선일보>의 칼럼도 문제 삼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입증 책임'을 청와대가 져야 한다는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결사적으로 막고 있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와 고 김웅기 군의 아버지 김학일 씨 등이 십자가를 짊어진 채 120km 가 넘는 거리를 도보순례하는 동안에,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37일 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과 노숙을 하며 그토록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는 동안에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소홀함이 없다'는 발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 14일 한국 땅을 밟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의 일정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다. 과연 교황이 '시간이 남아 돌아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을까?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잠깐동안 가슴에 달고 버린 '노란 리본'을 프란치스코 교향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시복식 미사, 꽃동네 방문 등의 주요한 행사마다 가슴에 달고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도보순례를 할 때 짋어지고 걸었던 십자가를 교황청으로 가져가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오로지 '우선순위'의 문제다. 무엇을 우선순위의 최상단(最上端)에 놓느냐의 문제다. 대한민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아파하고 슬퍼하는 유가족'이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 그 눈물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전히 '시간이 없다'는 변명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할 것인가?


지난 18일, 37일 째 단식을 이어오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서 김 씨는 "정말 두려운 것은 몸이 망가지거나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유민이와 유민이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러설 수 없다.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우리를 구해달라.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달라. 대통령에게 공식 면담을 요청한다. 저는 유가족이 요구하는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계속 청와대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유민 아빠'의 요청에 응답할까? 또 다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진 않을까? 박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독대 자리에서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의례적인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주객전도이 참으로 경악스러웠다. 국민들의 경악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제 박 대통령이 교황이 떠난 자리를 대신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고 진심을 다해 위로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알아 듣긴 한 걸까? 전달이 되긴 한 걸까?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당장 '유민 아빠'를 만나야 한다. 다시 세월호 유가족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꽉 막혀 있는 세월호 정국을 뚫어내야 한다. 유가족의 원하는, 진상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는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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