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들은 여전하다. 이순재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 TV를 좋아해 한번 자리를 잡았다 하면 라면의 유혹마저 뿌리칠 정도지만, 아직까지 ‘직진순재’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신구는 늘 그래왔듯 자상하다. 혼자 주방을 지키고 있는 이서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무엇이든 할 기세다. 언제나 청춘인 박근형은 세월이 흘러도 자기관리에 투철하다. 앞장 서서 무거운 짐을 나르고 솔선수범한다.
백일섭은 푸근하다. 그가 짓는 미소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이야기하는 그의 천진한 표정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김용건의 투입은 ‘신의 한수’였다. 그의 수다는 꽃할배들을 들썩이고, 그의 농담은 꽃할배들을 배꼽잡게 만든다. 그가 소환하는 추억들에 꽃할배들은 그저 행복해진다. 꽃할배들은 여전히 꽃할배다웠고, 그들의 여행은 따스한 감동을 선물했다.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를 매주 챙겨본다. 피곤하고 지친 금요일 저녁에 좋은 활력소가 된다. 8.444%의 높은 시청률(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만 봐도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할배들의 여행에 동참하며 위로를 얻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겐 낯설고 누군가에겐 반가운 유럽의 풍경들과 그곳을 누비는 할배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꽃보다 할배>는 분명 좋은 텍스트다.
그런데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할배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그들의 표정 속에서 ‘그때 그 시절이 좋았지’라는 아쉬움이 자꾸만 느껴져서 그렇다. 아무리 할배들의 이름 앞을 ‘꽃’으로 치장해도 그들의 눈길이 과거 파란만장했던 젊음으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옛 이야기를 나누며, 그 추억 속에 아스라이 빠져드는 그들의 표정이 왜 그리 아련해 보이는지 알 것도 같다.
그들의 정신은 청춘일지라도 육체는 확연히 늙었다는 게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처음 여행을 떠났던 5년 전과 비교하면 그들의 늙음은 확연하다. 흰머리가 더욱 늘었고, 발걸음은 더욱 더뎌졌다. 잠깐의 외출 후 코를 골며 뻗어버린 할배들이 짠하다. 에너자이저였던 이순재는 부쩍 피로를 쉽게 느낀다. 신구는 말이 현저히 줄었다. 백일섭은 아픈 몸을 이끌고 가뿐 숨을 내시며 겨우 걸음을 맞춘다.
여행은 젊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들의 세대에 그것이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이번 시즌에 들어 ‘짐꾼’ 이서진에 대한 의존도가 눈에 띠게 늘었다. 이제 이서진 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숙소 예약에서부터 식사 준비, 침구 정리는 물론 일정을 짜고 길을 안내하는 것 등 여행 전반의 모든 일이 짐꾼의 몫이다.
이쯤되니 일각에서 '효도 관광'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할배들이 무언가 주도적으로 여행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이라면 <꽃보다 할배 리턴즈>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할배들의 도전이라고 해봐야 아침식사를 주문하는 것 정도다. 할배들은 이제 누군가의 도움을 넘어 인도를 받아야만 여행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늙는다는 건 그런 걸까.
그러다보니 이서진도 과부하에 걸렸다. 함께 여행을 떠났지만, 이서진에겐 여행지가 주는 감동을 느낄 여유가 전혀 없다. 그저 다음 숙소를 어디로 정할지가 걱정이고, 저녁 메뉴로 뭘 먹을지가 고민이다. 온통 할배들 생각뿐이다. 아무리 짐꾼의 신분이라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서진이라고 왜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그도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말이다.
이번 시즌까지는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전보다 늙어버린 할배들을 스토리텔링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한 백일섭을 배려하는 할배들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 무엇보다 김용건의 합류는 처진 분위기를 살리며 잠재하고 있는 문제를 감추는 특효약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은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딜레마다.
그럼에도 <꽃보다 할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에 뒷짐지지 않고, 호기심을 품고 공부하는 태도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는 ‘꼰대’와는 다른 어른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늘 청춘인 할배들을 통해 자신의 ‘노년’을 상상해 보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꽃보다 할배>는 그 효용을 다하고 있다.
딜레마는 딜레마대로 내버려 두고 <꽃보다 할배>는 그만의 역할과 기능에 전력을 다하는 게 답일까, 소수의 멤버를 교체함으로써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답일까? 아니면 아예 새롭게 합류한 김용건을 중심으로 새판을 짜는 게 답일까? ‘리턴즈’ 다음을 생각하고 있는 나영석 PD의 고민이 깊어질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이제 반환점을 돈 <꽃보다 할배 리턴즈>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이 조합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TV + 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독 말이 없었던 신구의 진솔한 고백이라 더욱 뭉클했다 (0) | 2018.08.04 |
---|---|
이병헌부터 이정현까지, 폭염보다 뜨거운 <미스터 션샤인>의 열연 (0) | 2018.08.03 |
왕자와 거지 닮은<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윤시윤에게 달렸다 (0) | 2018.07.27 |
이런 의학 드라마라니! <라이프>, 조승우와 이수연 작가는 남달랐다. (0) | 2018.07.25 |
못하는 게 없는 '짐꾼', 만능 예능인 이서진과 꼭 붙어있고 싶다 (0) | 2018.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