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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드라마 <비밀의 숲>, 조승우의 추리에 빠져든다

너의길을가라 2017. 6. 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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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음독, 묵독, 정독, 미독(味讀), 속독, 발췌독. 


'읽기'의 다양한 방식이다. 흔히 '책(활자)'를 읽을 때 하나의 방법만 가지고 접근하기 쉽지만, '효과'와 '효율'을 생각하면 그 우직함이 항상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정독이 필요한 책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발췌를 해서 일부분만 습득해도 되는 책이 있다. 소리 없이 음미해야 하는 책이 있고, 크게 소리를 내서 읽어야 이해가 빠른 책도 있다. 마치 요리사가 칼을 선택할 때 다양한 용법을 고려하는 것처럼, 헤어 디자이너가 손님의 머리 상태를 보고 시술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처럼 책을 대하는 '독자'에게도 영리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드라마'는 어떨까. 그러니까 드라마의 '시청자'의 입장은 어떨까. 과장을 전혀 보태지 않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자면, 우리는 너무도 완벽하게 '시청자'라는 포지션을 이해하고 있다. '드라마 시청학'이라는 과목이 있어 특별히 수강을 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로부터 그와 관련한 가르침을 받았을 리도 만무한데 말이다. 놀랍게도 '시청자'가 된 당신은 그때그때마다 스스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선택해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어젯밤, 혹은 오늘 아침 당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쩌면 오늘 밤에 당신이 그리할 것처럼. 


가령,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봐야 하는 드라마가 있다. 이런 드라마는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끝나는 순간까지 그 긴장감을 유지시켜야 한다. 반면, (굳이 특정하진 않겠지만) 어떤 드라마는 '다른 짓'을 하면서 봐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하등 문제가 없다. 대사 위주로 드라마를 따라가다가 갈등이 고조된 순간에 잠깐 화면을 응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귀로 보는' 드라마라고 할까. 또, 영상이 워낙 수려하고 유려해서 시선을 뗄 수 없는 드라마도 있다. 



한편, tvN <비밀의 숲>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까다로운 드라마다. '검찰 스폰서 살인'이라는 메인 사건을 바탕으로 범인과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는 검사 황시목(조승우)의 추적극을 그린 <비밀의 숲>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니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넓게 퍼진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시청자들은 빼곡히 울창한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한여진(배두나)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용의자' 선상에 올랐고,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끝도 없이 이어진다. 


허투루 넘길 장면이 없다. 반전이 숨겨져 있고, 복선이 깔려 있어 방심은 금물이다. 어쩌면 모든 장면들이 '떡밥'이고, 진실에 접근할 '단서'다. 독서로 치면 '정독'은 필수라고 할까. 모든 장면에 집중해야 한다. 황시목의 예리한 시선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이창준(유재명)과 서동재(이준혁), 영은수(신혜선)의 '의뭉한' 눈빛과 행동을 놓치면 다음 장면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혹시 혹시 빨래를 개키거나 홈쇼핑 잡지를 읽으면서 <비밀의 숲>을 볼 생각이라면 애초에 그만 둘 것을 정중히 권하고 싶다. 그렇게 봐선 이 드라마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왜 완전히 끝내지 않았지? 이 수고를 치르고서, 왜 굳이 여기야. 얻어지는 게 뭔데."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13분. 애매하다. 차장 말이 사실일까. 뭐지? 웃고 있다. 벨."

"경고. 벌. 차장을 벌할 수 있는 사람. 박무성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 김가영이 사라지길 원하는 사람. 차장에게 벌을 내리고자 할 사람."


<비밀의 숲>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래서 극도의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는 황시목의 추리를 따라간다. 자신의 기분을 이기지 못해 격분하고, 감정적인 선택과 판단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곤 했던 기존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는 달리 황시목은 침착하고 논리적인 태도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나간다. 다시 말하면 '없던 캐릭터'이고,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없던 경험'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황시목의 추리는 상당히 섹시한데, 이는 뇌의 특정한 부위에 묘한 쾌감을 준다. 


여전히 사건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드러난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건 재연 현장에 황시목과 함께 있었다'는 한여진의 진술로 황시목은 자신을 용의자로 지목한 경찰의 의심을 (당장은) 지울 수 있었다. 범행도구로 쓰인 칼에 찍힌 지문에 대한 알리바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한 박무성(엄효섭)의 아들 박경완(장성범)의 행동도 의심스럽다. 그가 납치됐던 김가영(박유나)와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였고, 그를 몰래 촬영한 듯한 사진을 지우는 장면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차장 검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창준과 그를 컨트롤하는 실세 장인 이윤범(이경영), 그리고 그들을 '앞잡이'로 쓰고 있는 더 큰 집단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덮어씌운 뇌물 혐의로 나락으로 떨어진 영일재(이호재)와 그 사실을 알아버린 딸 영은수. 이토록 깊고 지독한 미궁이라니. 과연 황시목은 범인을 밝히는 동시에 깊이 감춰진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황시목과 함께 이토록 촘촘히 우거진 그래서 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비밀의 숲'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비밀의 숲>은 연기, 연출(안길호 PD), 극본(이수연 작가) 등 무엇하나 흠잡을 데 없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이야기는 더할나위 없이 치밀하고 쫄깃하며, 연출은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조승우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놀라울 만큼 정성스럽다. 케이블 드라마의 것치고는 높은 편이긴 하지만, 시청률이 4%대에 머물고 있다는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출발'이라는 안재현의 '명언(?)'을 떠올리며 <비밀의 숲> 정주행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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