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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단에나 그 구성원들을 선도하는 리더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 '이끎'은 집단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또 그 집단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만약 그 집단을 '대한민국 예능계'로 좁혀본다면, 그리고 그 '직업군'을 PD로 국한한다면, 우리는 그에 합당한 인물로 두 명의 이름을 당장 떠올릴 수 있다. 좋다, 기왕 하는 김에 좀더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해보도록 하자. 대한민국 예능계에는 두 명의 PD가 존재한다. 바로 MBC의 김태호 PD와 tvN의 나영석 PD 말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잘할 뿐 아니라 심지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두고 우열(優劣)을 가리는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굳이 그런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한번 해보도록 하자. 처음부터 '자극적'이기도 작정을 했으니 말이다. <무한도전>이 '국민 예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김태호 PD가 <1박 2일>의 나영석 PD를 압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주요 타깃층이 '젊었던' 탓도 있겠지만, 김태호 PD의 연출은 확실히 실험적이었고 도전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웃음과 재미를 놓치지 않았고, 정치적인 풍자와 사회적 비판 의식도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반면, 나영석 PD는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1박 2일>의 연출을 맡았기에 전반적으로 무난한 느낌을 유지했다. 간혹 출연자들을 상대로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의 눈에 나영석 PD는 그가 입고 있는 옷 스타일처럼 무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김태호 PD를 보면 뭔가 정체돼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여전히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임에 틀림 없고, 그런 프로그램을 12년 동안 이끌어 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일 것이다. 어쩌면 '정체돼 있다'는 평가는 '상대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2012년 12월 KBS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13년 1월 CJ E&M로 이적을 결정했던 나영석 PD의 결단력과 이후 그가 거둔 성과와 족적이 워낙 또렷하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둥지와도 같은 곳을 뛰쳐나와 완전히 새로운 공간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연달아 최고의 성적을 거둔다는 것 또한 '기적'이리라. CJ E&M로 자리를 옮긴 나영석 PD는 '화수분'마냥 그동안 쌓아뒀던 아이디어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배낭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등 <꽃보다> 시리즈를 연속해서 히트시키는 한편, <삼시세끼> 시리즈로 농촌과 어촌의 각기 다른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무엇보다 나영석PD가 보여준 '섭외의 미학'은 예술의 경지라 할 만 했다.
<꽃보다>와 <삼시세끼> 시리즈가 배우와 가수 등 그동안 예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비예능인을 섭외해 '프로의 맛'을 제거한 신선하면서도 조용한 프로그램이었다면, '서유기(西遊記)'의 캐릭터를 빌린 <신서유기> 시리즈는 아예 대놓고 왁자지껄 시끄러운 방송을 추구한다. '막장'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독하게 웃음 사냥에 매진한다. 과거 <1박 2일>을 함께 했던 멤버들(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과 재결합하면서 당시의 기분을 맘껏 냈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인재(안재현, 규현, 민호)를 발굴하는 데도 멈춤이 없었다.
'구님' 구혜선과 깨 볶는 신혼을 보내고 있던 안재현을 통해 <신혼일기>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했고, 이는 나영석 PD가 그동안 줄곧 강조했던 '예능의 다큐화'에 한걸음 더 다가간 방송이었다. 물론 그 연출과 편집을 '나영석 사단'인 이우형 PD가 전담했지만, 프로그램 전반에 나영석 PD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또, 올해 상반기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윤식당>(연출 이진주 PD)도 빼놓을 수 없다. 윤여정, 신구, 이서진, 정유미가 출연했던 <윤식당>은 최고 시청률 14.141%를 기록할 만큼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대중의 판타지를 적확히 포착해 이를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나영석 PD는 <윤식당>을 통해 '은퇴 후 자영업'이라는 공식을 친절히 풀어보여줬다. 물론 그것이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선물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은 큰 위안을 받았다. 또, 윤여정(과 신구)을 통해 '꼰대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을 갈망하는 시대적 고민에 자신만의 대답을 던지는 등 대중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힐링'이었다.
거침없이 '나영석 월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그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연출 양정우 PD)을 통해 또 한번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등 잡학박사에 '청자' 역할인 유희열을 투입한 이 기묘한 조합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아재들의 수다'라는 콘셉트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다소 '피곤'하게 다가올 수 있음에도 1회(5.395%)보다 2회(5.687%)의 시청률이 상승하는 등 반응이 매우 폭발적이다.
현재 나영석 PD는 <알쓸신잡>과 <신서유기 4>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의 양 날개를 달고 순항 중이다. '교양'과 '품격'을 강조한 <알쓸신잡>과 오로지 웃음만을 향해 맹목적인 질주를 하는 <신서유기4>는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난 13일, <신서유기 시즌4>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던 나영석 PD는 "<알쓸신잡>은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일 사랑하는 프로그램은 <신서유기>"라는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큐'가 예능의 미래라 언급했던 그이지만, 그래도 예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웃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말이리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욱 큰 걸음을 뗄 수 있었던 나영석 PD. CJ E&M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속에서 자신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나영석 PD. 그는 현재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예능 PD가 됐다. 2015년 제5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던 그의 질주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이쯤되면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시쳇말을 인용해서 "우리 서기(석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아니, 이미 그는 그렇게 하고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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