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안에서 용의자를 발견한 경찰은 다짜고짜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해댄다. "나와, 이리 나와"라고 소리를 치며 그를 잡아 버스 밖으로 끌어낸다. 길바닥에 내팽개친 다음에 무자비하게 발길질을 계속한다. "나 몰라, 나 몰라요, 진짜"라며 외치며 몸을 방어하는 용의자를 걸레 자루로 흠씬 두들겨 패고, 주먹질까지 한다. 이윽고 총을 꺼내 위협하고, 수갑을 채워 놓는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정말 왜 이러시는 거예요?"라고 항의해도 소용 없다.


기분이 꿀꿀해졌다. 위의 묘사는 OCN 드라마 <듀얼> 속의 한 장면을 옮긴 것이다. 물론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베테랑 형사 장득천은 자신의 딸이 납치돼 미치기 직전의 상태이고, 자신이 봤던 용의자의 얼굴과 똑같이 닮은 남성을 보고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딸이 납치된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그와 같은 폭력성이 조금은 납득이 간다. 그야말로 극단적인 상황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득천은 '경찰'이다. 이는 그가 안고 있는 상황적 특수성을 뛰어넘는 직업적 특수성이라 할 만 하다. 


애초에 딸이 납치된 경찰관이 수사에서 배제되는 건 상식이어야 함에도 '말릴 수 없다'는 이유로 장득천은 납치범과의 '거래'에도 앞장설 뿐만 아니라 수사 전반에 깊이 관여한다. 당연히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폭력을 휘두르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것도 깜빡하고 만다. 당연히 장득천의 현행범 체포는 불법이고, 따라서 용의자는 풀려나게 된다. 애써 잡아놓고도 풀어줘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 속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얼마 전,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벌어졌던 독직 폭행 사건 말이다. 지난 5월 27일, 성동경찰서 강력팀은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옥수역 부근으로 출동했다. 용의자로 보이는 한 남성을 발견하고, 그를 체포하려고 시도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오인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그 남성을 바닥에 눕히고 집단으로 폭행했다.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당연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경찰들에게 이미 그는 '범죄자'였으니 말이다.


졸지에 범죄자로 몰려 체포를 당했던 그 남성은 얼굴이 만신창이가 됐다. 눈이 퉁퉁 부어 올라 시퍼렇게 변했고, 팔에는 상처가 나 피가 흘렀다. 그는 이렇게 항변했다. "내가 범인이라도 얼굴을 이렇게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백번 맞는 말이다. 공권력은 가능한한 최소한으로 행사되어야 마땅하고, 그 행사에 있어 '적법성'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마찬가지로 경찰관이 범죄자(로 추정되는 자)를 체포하는 데도 당연히 적법성이 뒷받침 돼야 한다. 또, 그 행위가 정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저항하려는 의지가 없는 상대방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장득천이나 성동경찰서의 형사들처럼 피체포자를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패는 건 '민주 사회'의 경찰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야만적이다. 위법한 체포에 대항한 피체포자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봐서 무죄로 판결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현실 속의 경찰이 이에 대해 '둔감'한 것처럼, <듀얼>의 작가(김윤주)도 공권력, 즉 경찰의 위법한 체포 행위에 대해 아무런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야, 모른다, 아니다, 난 진짜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너 지금 그게 경찰들한테 통할 거라고 생각하냐?"

"난 정말 몰라요. 기억이 없어."

"이 새끼가 이거 진짜, 정신 못 차리지? 아저씨가 정신 번쩍 들게 도와줄까?"


체포된 용의자는 경찰의 승합차에 태워져 이동하면서도 계속해서 경찰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다. 설령, 그 용의지가 진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는 곧바로 풀려날 것이다. (물론 그에게 비싼 변호사가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애초에 불법한 체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득천은 독직 폭행으로 징계를 받고, 고소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동경찰서의 윤승영 서장이 사과문을 발표했던 것처럼, 장득천이 소속된 경찰서의 서장도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되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은 '인권 친화적 경찰'을 전제로 내걸었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오랜 숙원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터져버린 성동경찰서 사례는 치명적이라 할 만하다.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찰의 인권에 대한 태도는 후진적이라 할 만하다. 현장의 어려움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행위는 더욱 엄정한 잣대라 필요하다는 점에서 환골탈태에 준하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범죄 수사 장르물을 만드는 드라마 관계자들도 좀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했던 OCN <터널>에서도 경찰관들이 피혐의자를 상대로 수사를 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들이 여러 차례 노출됐다. 위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듀얼>의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작가를 비롯한 드라마 제작진은 이런 장면들이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딸이 납치됐으니까 아버지의 심정으로 이 정도는 용인된다고 봤던 것일 테지만, 상식선을 넘어선 폭력 장면은 아무래도 불편했다. 



차라리 현실에 대한 풍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드라마의 전개를 볼 때, 그런 고차원적인(?) 접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터널> 속의 경찰관들과 <듀얼>의 장득천은 그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쯤되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경찰관의 폭행 장면을 드라마 속에 집어 넣었던 제작진들은 성동경찰서의 사례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럴 수도 있지'라며 드라마 속의 인물에 감정이입을 했던 시청자들은 어떨까.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고, 현실은 곧 드라마에 녹아든다. 이는 완벽히 분리돼 있는 다른 세계가 결코 아니다. 드라마 속에서 횡행하는 저 공권력의 무분별함이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지 않았던가. 드라마 속에서 용인됐던 행위가 현실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데, 현실의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일이고 드라마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이상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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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