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논란과 시청률은 정비례하는 것일까. 언뜻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의아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병헌 캐스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작했던 tvN <미스터 션샤인> 첫 회는 시청률 8.852%(닐슨코리아 유료가구플랫폼 기준)를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케이블 드라마 중 첫 회 기준 시청률 1위 기록이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이하 <도깨비>)의 기록(6.322%)을 갈아치운 것이다. 김은숙이 김은숙을 경신한 셈이다.
2회 시청률은 더 올랐다. 9.691%, 3회만에 시청률 10%의 벽을 넘어설 기세다. (참고로 <도깨비>도 3회만에 시청률 10%를 넘어섰다. 정확한 수치는 12.471%.) <미스터 션샤인> 1, 2회는 24부작의 긴 호흡을 담아낼 차분한 밑그림과도 같았다. 구한말이라는 시대적 배경, 일제강점기 직전의 격변기를 그리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미스터 션샤인>은 흔들리고 부서지면서도 엄중한 사명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쾌하고 애달픈, 통쾌하고 묵직한 항일투쟁사다."
유진 초이(이병헌), 고애신(김태리), 쿠도 히나(김민정). 1, 2회에 도드라졌던 3명의 인물을 통해 <미스터 션샤인>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뚜렷해졌다. 김은숙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이야기의 정체가 명확해졌다. '이름 없는 영웅들의 항일투쟁사.' 여기에 이들과 얽키고설킬 구동매(유연석)와 김희성(변요한)까지, 저물어 가는 조선을 지켰던 아무개들의 활약. 구한말 의병(義兵), 그것이 김은숙이 구현한 새로운 '김은숙 월드'였다.
각각의 인물들은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김은숙은 인물들의 서사를 쌓아올리는데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선택은 과감했지만, 탄탄히 쌓인 캐릭터는 곧바로 힘을 발휘할 것이다. 1회에선 노비로 태어나 억울하게 부모를 잃은 유진의 유년기와 성장기가 그려졌다. "내 조국은 미국이야. 조선은, 단 한 번도 날 가져 본 적이 없거든."라는 오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를 <미스터 션샤인>은 납득시켰다.
2회에서는 단숨에 애신에게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의병이었던 부모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애신은 사회적 금기와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깥세상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당시를 살아가던 여성에겐 감히 허락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럼에도 애신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끝내 '총'을 손에 쥔다. 거듭 만류하던 할아버지도 그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조선 제일의 총잡이 장승구를 소개해 스승으로 모시게 한다.
스쳐 지나가듯 그려졌던 구동매와 김희성과 달리 쿠도 히나의 캐릭터는 또렷히 드러났다. 친일파 아버지 이완익(김의성)의 딸이자 글로리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그는 남자 손님에게 희롱당하는 종업원을 구한 후 이렇게 말한다. "그깟 잔이야 다시 사면 그만, 나는 네가 더 귀하단다. 그러니 앞으로 누구든 너를 해하려하면 울지 말고 물기를 택하렴." 강인하면서도 지혜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다.
이렇듯 찬란한 주제의식과 매력적인 캐릭터, 내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미스터 션샤인>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연기로는 깔 수가 없다'는 이병헌은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눈빛과 분위기로 카메라를 압도한다. 충무로의 샛별로 떠오른 김태리는 귀품있는 연기와 완벽한 딕션으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김태리는 오랜 경력의 이병헌에 결코 밀리지 않는 강단을 보여줬다. 문제는 '러브'를 나눠야 할 두 사람의 케미다.
유진과 애신이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는 2회 엔딩은 김은숙 작가의 히든카드와도 같았다. 마치 <도깨비>에서 위기에 빠진 지은탁을 구하기 위해 김신(공유)와 저승사자(이동욱)가 안개를 뚫고 등장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공교롭게도 그 장면도 2회 엔딩이었는데, 강렬하고 상징적인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김은숙만의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물론 많은 시청자들이 손으로 상대방의 코와 입을 가리고 서로의 눈매를 확인하는 두 사람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일각에선 '잃어버린 딸을 찾는 아빠의 모습같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20살 차이'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다. 게다가 이병헌은 성 관련 추문의 주인공이니, 이 로맨스를 마냥 곱게 볼 수 있겠는가. 각각의 연기는 훌륭하고 흡인력이 넘쳤지만, 이들이 뭉쳤을 때 주는 위화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또, 고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유진이 신미양요(1871년) 직후 미국인을 만나 미국으로 건너가는 설정은 미국인이 조선에 들어온 시기(1885년)를 고려하면 잘못된 것이고, 김태리가 사용한 연발총은 일본군이 사용했던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증에 대한 지적이 까다롭다 여길 수 있겠지만, 우리의 역사를 다루는 일에 좀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자는 주장을 그냥 넘기긴 어려운 일이다.
김은숙은 달라졌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애신과 쿠도 히나를 전면에 배치한 건 의미있는 변화다. <태양의 후예>에서 보여줬던 여성상의 연장이라 볼 수 있겠지만,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종속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지루함을 답습하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그들이 유진을 놓고 삼각관계를 벌이게 될 때, 오로지 사랑만을 갈구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뻔한 여성상으로 전락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어찌됐든 간에 김은숙은 구한말이라는 숨겨진 시간을 도려내 시청자들 앞에 꺼내 놓았다. 이름 없는 의병들의 숭고한 역사를 발굴했다. 또, 김은숙은 자신의 영역과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로맨스라는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는 동시에 새로운 장르와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와 교감에 나서고 있다. 그래서 김은숙은 달라졌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직까진 반반이겠지만 말이다.
2회까지의 <미스터 션샤인>은 김태리(를 비롯한 배우들)의 하드캐리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김은숙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의 독보적 재능이 '영화 같은 드라마'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즐거움 못지 않게 스트레스도 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통찰을 이루었을지 지켜볼 일이다. 설령 그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김은숙은 김은숙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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