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배트맨, 원더 우먼, 아쿠아맨, 사이보그, 플래시. DC의 슈퍼 히어로들이 뭉쳤다. DC 코믹스가 <저스티스 리그>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일찌감치 슈퍼 히어로 군단인 '어벤져스'를 영화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던 마블 코믹스에 비해 DC 코믹스의 움직임은 한참 뒤쳐져 있었다. 마블 코믹스는 <아이언맨>(2008)의 성공을 토대로 지구 최강의 영웅들을 차례차례 불러 모았는데, 그 중심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캐릭터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있었다. 아이언맨이 자리를 굳건히 잡자 이야기의 확장이 원활했고, 다른 히어로들도 무리 없이 어벤져스에 합류해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반면, DC 코믹스는 <배트맨> 시리즈의 실패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크리스터포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만이 예외적인 대성공을 거뒀는데, 그 성취는 가히 경이로웠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DC 코믹스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정신을 못 차리고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정점을 찍은 후 뒤따르기 마련인 하강이었지만, 그 속도가 너무 급작스러웠고 모양새도 매우 나빴다. 여기에 <어벤져스>(2012)의 개봉은 결정타였다. 두 회사의 격차는 점차 커지기만 했다.




이렇게 되자 DC 코믹스는 뒤늦게 '저스티스 리그' 카드를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원래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에 영향을 받은 마블 코믹스가 '어벤져스'를 탄생시켰던 역사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DC 코믹스는 자사의 대표적인 슈퍼 히어로인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을 그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을 통해 DCEU(DC Comics Extended Universe)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엉성한 스토리와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가 패착이었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아든 DC 코믹스는 임원 교체를 단행했고,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는 듯 하다. <원더우먼>(2017)은 그 반격의 출발점이었다. 갤 가돗은 원더우먼 역을 맡아 자신의 매력을 확실히 드러내며 길고 긴 잠에 빠졌던 DC 코믹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스티스 리그>가 개봉했다. <저스티스 리그>는 개봉 첫 날 3880만 달러(한화 약 426억 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는데, 기대했던 오프닝 성적은 아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출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DC 코믹스가 내놓는 영화들에 혹평을 쏟아냈던 대한민국 관객들의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저스티스 리그>는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며 18일까지 851,080명을 동원했는데, 19일에 100만 돌파는 기정사실이다. <토르 : 라그나로크>의 성취(4,526,907명)를 넘어설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DC 코믹스의 변화에 대한 의지와 노력을 높게 평가하는 반응이 많아 '입소문'을 기대할 수 있을 듯 하다. 과연 DC 코믹스가 마블 코믹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균형을 맞춰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저스티스 리그>는 슈퍼맨이 빌런 둠스데이와의 전투 끝에 죽고 난 뒤의 세계를 그린다. 수호자를 잃어버린 지구는 혼돈 속에 놓인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추앙하던 영웅과의 이별을 슬퍼한다.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았던 존재의 상실은 형언할 수 없는 좌절감을 안긴다. 거리의 곳곳에는 다시 무법(無法)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배트맨(벤 애플렉)의 고민도 커지기 시작한다. 배경 음악으로 노르웨이의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Sigrid)의 'Everybody Knows'가 깔리는 이런 장면들은 착잠함을 더한다. 


이 틈을 빌런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행성 아포콜립스(Apokolips)의 지배자 다크 사이드의 대장군 스테픈 울프는 '마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파라데몬 군대를 이끌고 지구로 온다. 마더 박스는 시공간, 에너지, 중력을 통제하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물체인데, 스테픈 울프는 세 곳(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와 아틀란티스, 인간계)으로 흩어져 있는 마더 박스를 합쳐 지구를 멸망시키려 한다. '인류의 멸망'을 좇는 빌런들의 뻔한 욕망이 지겹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구가 위기에 빠져야 슈퍼 히어로가 존재 의의를 얻게 되는 것을.





배트맨은 원더 우먼(갤 가돗)과 함께 스테픈 울프를 막기 위해 팀을 꾸리기 시작하는데,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 사이보그(레이 피셔) · 플래시(에즈라 밀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아틀란티스의 왕위를 계승한 아쿠아맨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인데, 바닷속의 수많은 생물들과 조종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무기로는 삼지창을 사용한다. 사이보그(레이 피셔)는 몸 자체가 컴퓨터로 세상의 모든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 번개를 맞고 초월적인 스피드를 얻게 된 플래시는 엉뚱한 모습으로 영화에 활력을 준다.


그런데 이들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배트맨은 '슈퍼맨의 부활'을 모색하게 되고, 마더 박스를 이용해 슈퍼맨을 죽음에서 깨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슈퍼 히어로 간에 의견 다툼이 발생하지만, 슈퍼맨을 되살리는 일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전체가 된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은 스테픈 울프로부터 마더 박스를 지키고, 지구를 수호하기 위해 전투를 벌이게 된다. 물론 싸움 자체는 시시하기 짝이 없다. 슈퍼맨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저스티스 리그>의 가치는 '과정'에 있는 만큼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저스티스 리그>는 '저스티스 리그의 창설'과 '멤버들의 소개'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러닝타임(120분)의 절반 가량을 팀 규합에 할애하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다. 액션신을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면서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배트맨 대 슈퍼맨>과 달리 초반에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액션 장면을 적절히 집어 넣었다. 아쿠아맨 · 사이보그 · 플래시 등 새로운 캐릭터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무엇보다 원더 우먼의 활약이 돋보인다. '원더 우먼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을까'라는 염려가 나올 만큼 훌륭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이야기의 엉성함은 고질병처럼 남아 있다. 배트맨이 뜬금없이 자살 특공대가 되려 하는 장면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힘이 아닌 스토리의 힘을 기반으로 했던 DC 코믹스로서는 힘을 잃어버린 이야기 구조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또, 빌런인 스테픈 울프의 힘과 매력이 약했던 점도 아쉽다. 저스티스 리그의 결성과 멤버 소개에 치중하다보니 불가피했던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어차피 스테픈 울프는 거쳐가는 단계에 불과하니 말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배트맨의 역할이 지나치게 약해졌다는 것이다. 플래시가 배트맨에게 당신의 능력은 뭐냐고 묻자 "나 부자야"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배트맨의 능력에 대한 아쉬움을 보여준다. 초인적 능력을 갖춘 슈퍼 히어로들의 등장으로 배트맨은 능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가 내세울 건 리더십과 돈이지만, 그마저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슈퍼맨의 절대적인 힘과 비교할 때 초라함이 더욱 커진 게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 고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DC 코믹스가 반격의 서막을 올렸지만, 이후의 행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P.S. 쿠키 영상이 2개 있으니 섣불리 자리를 뜨지 않길..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