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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올림픽에서 패배한 선수들은 왜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너의길을가라 2016. 8. 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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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한창이다. 사실 큰 관심은 없다. 뉴스를 통해 관련 소식을 간헐적으로 접한다. '누가 메달을 획득했다', '누가 탈락했다' 정도를 듬성듬성 알 뿐이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올림픽을 비롯한 여러 국가 단위의 제전(祭典)에 관심이 덜 간 지는 꽤 됐다. 과도한 국가주의(國家主義)에 대한 불편함 일지도 모르겠다. 방송 3사가 한꺼번에 나서서 중계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올림픽 중계가 전체적으로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비단 혼자만은 아닌 듯 하다.



"죄송합니다"


지난 7일이었다. 어김없이 포털 사이트에는 '올림픽'과 관련한 기사들이 기세등등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기다가 지나칠 수 없는 '한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진종오 선수가 남긴 "죄송합니다"라는 사과였다. 10m 공기 권총에 출전한 진종오 선수는 최종 5위로 경기를 마친 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양한 채 "죄송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뉴스 영상을 찾아봤다. 준비했던 노력만큼의 결과를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는 경기 내내 계속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경기가 모든 끝난 후, 진종오 선수는 모여있던 기자들과 카메라를 향해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를 건네고 사라졌다. 그는 무엇이 죄송했던 것일까?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을까, 아니면 국민들이 기대했던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을까. '진종오' 이후에도 승패(勝敗)는 계속됐다. 누군가는 금메달을 땄지만, 거기엔 시선이 가지 않았다. '탈락', '패배', '고배'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된 이름만 기억에 남았다.



지난 9일, 양국 남자 세계 1위인 김우진 선수는 32강에서 인도네시아의 리아우 에가 아가타 선수에게 패배했다. 유도 남자 73kg급 세계 1위인 안창림 선수도 16강에서 벨기에의 디르크 판 티헬트 선수에게 지면서 탈락했다. 여자 유도 57kg급에 출전한 김잔디 선수도 16강에서 브라질 하파엘라 실바 선수에게 무너졌다. 두 선수는 진종오와 마찬가지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를 떠났다. 


어째서 그들의 첫마디가 '(개인적으로) 아쉽다'가 아니라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하다'여야만 하는 걸까.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들은 '패배' 앞에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모습으로 변한다. 물론 외국의 다른 선수들도 '지는 것'에 인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그들은 '죄송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저 자신의 '개인적' 패배 혹은 실패에 안타까움을 표현할 뿐이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반응은 '승부욕'의 범위에서 설명하기 어렵다. 


ⓒ헤럴드 경제


한편, 금메달을 기대했던 선수들의 잇딴 조기 탈락을 두고, 언론에서는 "금메달 10개를 따내서 4회 연속 10위권에 드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빨간 불이 켜졌다"고 쓰고 있다. 올림픽에서 국가의 목표를 설정하고, 선수들의 '개인적 성취'를 국가의 것으로 귀속시키는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올림픽의 순위를 국가의 경쟁력 순위 쯤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목숨을 거는 행태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정윤수 스포츠칼럼니스트는 스포츠 국가주의와 가족주의(경향신문)에서 "우리나라의 스포츠를 주도하는 정념은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라고 지적하면서 "이를테면 김연아 선수를 '대한민국의 딸' 혹은 '우리 연아'라고 호명할 때,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는 한 몸"이라 설명했다. 올림픽을 국력 대결의 장으로 여긴다거나 민족(국가)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용도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도 해왔던 일이지만, 거기에 '가족주의'까지 결합된 양태는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금메달'을 획득하면 그때부터 '대한민국의 아들, 딸'로 호명되며 추앙받지만, 패배자가 된 순간 그들은 '버려진 사생아' 쯤으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과 국민에 실망감을 안긴 죄인, 그 극단적 위치를 오가야 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과 같은 국가 제전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어쩌면 우리의 비뚤어진 스포츠 의식이 만들어 낸 자화상은 아닐까? 그래서 진종오의 "죄송합니다"가, 안창림과 김잔디의 "죄송합니다"가 송곳처럼 가슴을 후벼판다.



마진찬 사회비평가는 '올림픽 시상식의 국기게양, 난 반댈세!(아시아경제)'에서 "올림픽 시상식에서 국기게양을 반대"한다면서 "국가를 대표하여 출전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시상식에서 국기를 게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승은 국가를 대표하여 출전한 '선수'가 한 것이지 해당 국가가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현 가능성은 요원하지만, 적극 동의한다. 부디, 대한민국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국가'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즐겁고 신나게 '승부'에 몰입하고 승패를 즐기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부터 그들의 '어깨'로부터 내려와야 한다. 유도 남자 66kg급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파비오 바실레 선수에게 패배해 은메달을 획득한 안바울 선수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자책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져서 속상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올림픽은 축제이지 않느냐. 즐기려고 마음먹었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의 패배는 지금 이 순간의 패배일 뿐, 인생의 패배도 아니고, 더군다나 국가의 패배도 아니다. 더 이상 패배를 직면한 선수들이 국민 앞에 '사죄'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 그들이 해야 할 말은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아쉽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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