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이 끝나면 으레 논란이 일기 마련이다. 얼마 전 열렸던 '제52회 대종상'은 시상식이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은 '제36회 청룡영화상'은 영리한 시상을 하며 모든 찬사를 휩쓸어갔다. 그렇다면 야구 팬들의 시선이 쏠렸던 지난 8일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어땠을까? 수상자의 면면과 함께 '숙제' 몇 가지를 간단하게 짚어보도록 하자.




우선, '촌극(寸劇)'(까진 아니었다)은 없었다. 하지만 마뜩지 않았다. 추억 하나를 떠올려보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1998년, 워낙 압도적인 활약(당시 한 시즌 최다 42 홈런)을 했던 OB(현 두산)의 타이론 우즈가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는 이승엽에게 밀려 눈물을 삼켰다. 전교 1등이 학급 2위에 그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시쳇말로 '쪽팔리는' 시상 이래 외국인 선수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매번 외면당했다. 비단 골든글러브뿐이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야구'만의 문제겠는가?

 

"선정 기준이 다르다. MVP는 성적만 두고 뽑지만 골든글러브는 공격, 수비, 인지도 등 세 가지 기준" (우즈에게서 골든글러브를 '빼앗아(?)' 갔던 KBO 관계자의 당시 발언)



2012년 브랜든 나이트(당시 넥센)는 다승 2위(16승 4패), 평균자책점(ERA) 1위(2.20), 최다 이닝(208⅔) 1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다승 1위(17승 6패) 삼성의 장원삼에게 골든글러브 자리를 내줘야 했다. 2013년은 어떠했는가? 다승왕(14승 6패)을 차지했던 크리스 세든(당시 SK)은 구원 1위(46개) 넥센의 수호신 손승락(현 롯데)에게 밀려 수상을 하지 못했다. 


거듭된 논란과 팬들의 비난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까? '그들만의 축제'에 그치던 KBO 시상식이 외국인 선수에게 점차 문을 열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20승을 거든 앤디 밴 헤켄이 황금장갑을 거머줬다. 올해는 상황이 확 바뀌었다. 무려 3명의 선수(해커, 테임즈, 나바로)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것이다. MVP를 수상한 NC의 테임즈는 '전교 1등'이 '학급 1위'라는 당연한 논리를 증명해보였다. 이처럼 '외국인 선수'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너무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는 10번째다. 정말 감사하다. 제가 4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 자리가 40대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이승엽)


이번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단연 화제는 이승엽(이승엽)의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이었다. 유효 투표 수 358표 중 246표를 획득, 압도적인 득표였다. 그는 최초로 10번째 황금장갑을 끼면서 새로운 전설을 만들었다. 40대에 접어든 이승엽의 골든글러브 수상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논란'을 피해갈 순 없었다. 


야구팬의 입장에서 '이승엽'이라는 선수는 결코 '딴지'를 걸 수 없는 선수다. '평생 까임방지권'을 가졌다고 할까? 실력과 인성, 그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야구 선수다. 그러나 그가 2015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상식에서는 '역대 최초의 통산 400홈런 고지를 밟'았다는 점이 강조됐다. 


한 시즌을 기준으로 삼아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를 뽑는 시상식에서 '통산' 기륵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식이라면 삼성과 2년 계약을 한 이승엽(이 웬만한 성적을 거뒀을 때)을 꺾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제대로 된 평가 기준이 될까? 이승엽과 함께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후보로 선정됐던 다른 선수들의 기록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름 

안타 

홈런 

득점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WAR

(승리기여도) 

 최준석

155 

31 

78 

109 

0.306 

0.428 

0.529 

4.59 

 이승엽

156 

26 

87 

90 

0.332 

0.387 

0.562 

3.54 

  이호준 

132 

24 

48 

110 

0.294 

0.381 

0.510 

2.38 


기록 면에서 한 수 아래인 이호준(NC)를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최준석은 이승엽보다 비슷하거나 혹은 더 나은 성적을 거뒀다. 그럼에도 득표는 75표에 그쳤다. 뭔가 개운하지 않다. 골든글러브가 소위 '인기 투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아냥이 근거 없는 물어뜯기일까? 골든글러브 투표인단의 구성을 살펴보면 '전문성'이라는 부분이 제대로 충족되는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현재 골든글러브 투표인단은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아나운서, PD 등 300명이 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이러한 구성도 문제지만, 1위부터 3위표까지 차등을 둘 수 있는 메이저리그의 방식과 달리 KBO의 경우에는 1명에게만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향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또, '시기'적인 문제도 있다. 윈터미팅이 열리기 전에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발표하는 메이저리그(11월 11일)나 그보다 하루 앞서 시상식을 열었던는 NPB(Nippon Professional Baseball)와 달리 KBO는 지나치게 늦다. 외국인 선수 입장에서 오로지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위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대한민국에 머무를 순 없는 일이다. 2015시즌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3명의 외국인 선수의 경우에도 대리 수상자가 집으로 돌아간 그들을 대신해 무대에 올라야했다. 


시기를 조정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2015년 넥센에서 최다안타 1위, 100득점-100타점을 동시에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던 유한준은 KT 소속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아무래도 어색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FA 이적 이후에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리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삼성에서 NC로 이적한 박석민도 마찬가지였는데, NC 소속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그는 수상소감에서 삼성 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골든글러브 규정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KBO에 FA나 트레이드를 통해 공식적으로 표시된 팀이 있기 때문에 이적팀 소속으로 받게 된다. '전(前) 어디어디 소속'이라고 표시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 KBO 관계자의 대답이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기'를 앞당기면 된다. 굳이 12월에 골든글러브를 시상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토록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어째서 KBO는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이제 마지막 태클을 걸어보자. 보다 본질적인 논의인데, 바로 '골든글러브'라는 명칭에 대한 것이다. '방망이(배트)'가 '공격'을 상징한다면, '글러브'가 상징하는 것은 '수비'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최고의 수비수에게 '골든글러브'를 수여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공격, 수비, 인지도를 모두 고려한다. 한마디로 '잡탕'이라는 얘기 아닌가? 이제 KBO도 그 나름의 역사에 맞게 좀더 세분화되고 객관적인 시상을 할 때가 됐다. 공정성은 기본이다. 


어찌됐든 2015년 골든글러브 시상은 모두 끝이 났다. 뛰어난 활약으로 영광스러운 황금장갑을 수상한 10명의 선수와 후보에 올랐던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또, 비록 후보엔 오르지 못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다른 선수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그들의 땀과 노력 덕택에 한 해가 즐거웠다. 내년부터는 KBO가 미진했던 부분들을 보완해서 좀더 성숙한 시상식을 만들길 기대한다. 그래야 한 시즌을 마감한 선수들도 보람이 있을 테고, 이를 지켜보는 야구팬들도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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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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