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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최동원상, 이럴 거면 기준은 왜 만들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5. 10. 1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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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문제를 풀어보자. 야구(野球)의 '야'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풀 수 있는 상식적인 문제다. 오로지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만 따져보면 되기 때문이다. 아래에 상(賞)을 위해 제시된 6가지 기준이 있다. 그리고 후보로 선정된 3명의 선수(익명으로 표기)가 있다. 여러분이라면 과연 어떤 선수를 수상자로 선정하겠는가? 


★ 선발투수 기준


1. 선발등판수 : 30경기 이상 

2. 승리 : 15승 이상 

3. 평균자책점 : 2.50 이하 

4. 이닝 : 180이닝 이상 

5. 탈삼진 : 150K 이상 

6. QS : 15회 이상 


A 선수 : 선발 31경, 15승, 2.44, 184⅓이닝, 157K, 19QS 

B 선수 : 선발 30경기, 17승3.76, 194이닝, 164K, 17QS

C 선수 : 선발 30경기18승3.94189⅔이닝126K17QS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상식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6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A 선수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견의 여지가 있을까? 조건을 한 가지 충족시키지 못한 B 선수나 두 가지나 채우지 못한 C 선수를 수상자로 선택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동원 기념사업회의 결정은 달랐다. 지난 12일 최동원 기념사업회는 제2회 최동원상 수상자로 두산 베어스의 좌완 투수 유희관을 선정했는데, 그는 바로 C 선수였다.



애초에 최동원 기념사업회에서 내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유희관의 수상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켰던 기아 타이거즈의 양현종(A 선수)와 한 가지만 미달됐던 삼성 라이온즈의 윤성환(B 선수)은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유일한 기준 통과자 양현종의 수상 실패는 의아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故 최동원을 기리기 위한 최동원상의 권위가 실추됐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최동원상 선정위원 (7명) 


어우홍 전 롯데 감독 

양상문 LG 감독 

김인식 국가대표 감독 

김성근 한화 감독 

박영길 스포츠서울 해설위원 

천일평 OSEN 편집인 

허구연 MBC해설위원


최동원상 수상자 선정은 7명의 선정위원들의 투표로 이뤄진다. 메이저리그의 사이영상과 마찬가지로 선정위원들은 각 후보들에 1, 2, 3위 표를 주고, 1위 표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이 주어져 합산된다. 이렇게 해서 유희관이 총점 21점을 얻어 18점에 그친 양현종과 17점에 머문 윤성환을 제치고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7명의 선정위원들은 무슨 생각으로 투표를 한 것일까? 그들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유희관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진 못했지만, 정확한 컨트롤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으며 좋은 투구를 보였다. 투수가 공이 빠르지 않아도 컨트롤(제구)이 좋으면 승수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올해 두산의 3위가 되는 데 중요한 공을 세웠다" (어우홍 위원장)


어우홍 위원장이 밝힌 수상의 변(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희관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진 못했'다는 첫마디에서 이미 모든 것은 결정된 것 아닐까? 뒤에 따라오는 합리화는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삼성을 정규리그 5연패로 이끈 윤성환이 수상자로 더 적합한 것 아닐까? 만약 모든 후보가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면, 선정위원들의 판단이 필요하고 '투표'가 의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6개의 조건을 모두 채운 양현종이 버젓이 후보에 포함되어 있고, 그렇다면 투표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절차여야 했다. 만장일치라도 무관했다. 그런데 왜 선정위원회는 양현종을 외면했을까? 그가 제1회 최동원상 수상자였기 때문에, 2연속 수상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것이 변명이 될 순 없다.



LG의 양상문 감독은 "우리가 선수 최동원을 떠올릴때 기억하는 것은 투혼이다. 최동원상은 기준 6가지를 모두 채워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 한가지만 기준을 채웠다고 해도 올 시즌 KBO리그에서 가장 최고 투수가 누구냐에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이럴 거라면 애초에 기준을 제시할 필요조차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5강 싸움에서 양현종이 보여줬던 '투혼'은 유희관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제1회 최동원상을 수상했던 양현종은 방어율(4.25)과 이닝(171.1이닝)에서 기준에 미치지 못했던 것에 아쉬워하며 "언젠가는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해 다시 최동원상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올해 약속을 지켰다. 타고투저의 흐름 속에서 투수가 방어율 2.50 이하를 기록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양현종은 이번 시즌 유일한 2점대 방어율 투수였다. 

스스로 제시했던 기준을 우습게 만든 최동원 기념사업회는 故 최동원 선수를 기리기 위한 최동원상의 권위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당사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야구팬들도 깊은 상처를 입었다. 유희관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 선발 등판해 4이닝동안 7피안타(2홈런) 4사사구 3탈삼진 3실점으로 패전의 멍에를 썼다. 수상 발표로 인해 구설수에 오른 시점의 등판이라 선정위원회와 수상자 모두 머쓱해졌다. 

기준은 곧 '투명함'이자 '명쾌함'이다. 이를 거스르고자 하면 꿉꿉한 의혹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어낸 꼴이다. 만약 故 최동원 선수가 찜찜했던 제2회 최동원상 수상자 선정 과정을 보고 있었다면 뭐라 했을지 참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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