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남경필의 반성, 핵심은 첫째 아들이 아니라 사건 은폐 의혹이다

너의길을가라 2014. 8. 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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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 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선임자가 된)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며칠 전 휴가 나온 둘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걱정일까, 아버지의 사건 은폐 시도일까? 혹은 여론 무마용 사전 작업?


지난 15일, <중앙일보>의 [나를 흔든 시 한 줄]이라는 코너에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기고문이 실렸다. 남 지사는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군에 보낸 아들을 키우며 사무친 선친 생각'이라는 내용의 따뜻한 글을 담았다. 많은 독자들이 감동스럽게 읽었을 이 글의 시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지금부터 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위의 글이 다시 회자된 이유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첫째 아들 때문이다. 남 지사의 첫째 아들은 육군 6사단 예하 의무부대에서 상병으로 근무 중인데, 후임 A 일병이 훈련과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난 4월 초부터 8월 초까지 상습적으로 턱과 배를 폭행을 한 혐의로 헌병대에 입건됐다. 이와 함께 A 일병을 뒤에서 껴안고 바지 지퍼 부위를 손등으로 치는 등 성추행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이 사실이 17일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남 지사는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는 한편 경기도청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 저는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대신해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머리를 숙였다. 또, 그는 "제 아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 법에 정해진 대로 응당한 처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르게 처벌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면서 특별 대우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당연한 일이다. 


김영근 새정치연합 수석부대변인"본인과 아버지인 남 지사가 사과하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군 당국이 엄정하게 수사해서 처벌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민진영 사무처장도 "도지사의 아들, 혹은 차기 대권주자라는 이유로 축소 수사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정확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문제가 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군 수사기관의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주장했다.



이쯤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수신제가체국평천하'는 유교 경전 4서 3경 중 『대학』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사람만이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수 있다'는 뜻이다. 남경필 지사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난은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유교적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좋은 부모 밑에 좋은 자식이 난다. 자식의 잘못은 부모의 잘못이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사퇴'를 운운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타나 가혹행위는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문제" 라는 다산인권센터 안병주 활동가의 말처럼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개인의 문제(도 포함되겠지만)라기보다는 구조적 문제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 도지사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으로 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필자가 오히려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경필 경기도자사의 '은폐 시도'이다. 남 지사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아들의 사건을 언제 접했냐'는 질문에 "지난 13일 헌병대로부터 연락 받았다"고 대답했다. 나흘 가까운 시간 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언론에 의해 사건이 알려지자 이제 와서 사과를 하고 나선 것이다. 글을 시작하면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위의 글은)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걱정일까, 아버지의 사건 은폐 시도일까? 혹은 여론 무마용 사전 작업?'



남 도지사가 아들의 가혹행위 및 성추행 사건 소식을 확인한 건 13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15일 자 신문에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 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선임자가 된)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며칠 전 휴가 나온 둘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는 '첫째'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있다. 의도적이었을까? 상식적으로 볼 때, 사건 은폐 의혹이나 여론 무마용으로 사전 작업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 기고글이 언제 신문사로 넘어갔는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13일 이전에 신문사로 송고됐을, 아주 적은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가능성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사건을 파악한 13일에는 신문사에 그 글을 싣지 말 것을 부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만약 현재 쏟아지고 있는 의혹처럼, 남 지사가 모든 사실을 파악한 이후에 이 글을 썼다거나 혹은 썼던 글을 신문에 버젓이 싣고자 했다면 이는 전 국민을 속이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만약 그에게 '사퇴'를 요구하고자 한다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보다는 '사건 은폐 의혹'이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남경필 도지사는 지난 6 · 4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로 선출되면서 새누리당 내 잠재적 대권 주자 1순위로 부상했다. 또, 지방 차원의 협치와 연정을 추진하면서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취임 직후부터 출퇴근용으로 경차를 이용하고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어렵게 쌓아 올린 금자탑이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물론 다른 시각으로는 무너질 탑이 무너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너진 탑은 다시 쌓으면 그만이다.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아들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사건 은폐 의혹'이다. 남경필 지사는 자신의 첫째 아들에 의해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와 그 가족을 만나 사죄를 하는 동시에 위의 글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명을 해야 한다.


은페를 시도한 것인가, 타이밍을 잰 것인가? 13일에 모든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가증스러운(다소 과한 표현일지라도)' 기고문을 15일자 <중앙일보>에 실었는지에 대해서 또, 나흘이나 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입을 닫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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