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박람기

RM도 다녀간 성곡미술관, 그곳에서 ‘원계홍’을 만나다.

너의길을가라 2023. 4. 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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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라고 하면, 대개 리움 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처럼 규모가 큰 곳을 떠올리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아기자기한 크기의 정겨운 미술관이 제밥 많다. 이무래도 방문객으로 붐비지 않다보니 여유롭고, 그런 만큼 공간을 사색하기도 좋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성곡미술관'이다.

'이런 곳에 미술관이 있다고?'

의심을 품을 법하다. 경희궁 뒤편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목적지 성곡미술관을 찾았다. 한 눈에 들어오는 크기도 아닌데다 골목에 위치해 있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 이유는 성곡미술관이 쌍용그룹 창업자 고(故) 김성곤의 옛 자택을 개조(1995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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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주소 :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
이용 : 화-일(10:00-18:00)
휴무일 : 월요일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 두 채가 마주보고 있는 구조이다. 작지만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본관과 별관 사이의 언덕은 아담한 크기의 '조각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의 야외 카페는 운치있는 분위기로 유명하다. 오히려 미술관보다 유명할 정도이다.

이번에 성곡미술관을 찾은 이유는 '그 너머_원계홍(元桂泓, 1923-1980)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예약 전까지만 해도 원계홍이라는 작가에 대해 몰랐지만, 에드워드 호퍼를 연상하게 하는 그림을 보고 곧장 예약하고 말았다. 그림이 마음에 들른 공간마저도 취저였던 셈이다.

느긋하게 전시를 관람하면서 원계홍이라는 화가에 대해 차분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흔히 '외골수 화가'로 불린다. 누군가를 외골수라고 칭할 때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이라는 단어의 본래 뜻 자체에만 집중하면 될 듯하다.

독학으로 미술을 습득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 몰두했던 원계홍은 한눈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일정한 수준에 이른 뒤에는 아예 세속을 등지고, 일생동안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며 살았다. '미술계의 외톨이', '미술계의 기인' 등 그의 다른 별명들은 그의 삶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원계홍은 1940년대 초 경제학 공부를 위해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하지만 정작 그의 관심을 끌었던 건 경제 이론이 아니라 그림이었던 모양이다. 원계홍은 일본에 머무는 동안 이노쿠마 겐이치로(Inokuma Genichiro)의 사설 아카데미에서 회화 공부에 매진했다. 원계홍의 삶을 뒤바꿔버린 순간이다.  

1944년 귀국 후에는 세잔, 클레, 칸딘스키 등 거장들의 미술이론에 천착했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주력했다. 외골수처럼 우직하게 미르고 나갔기에 가능했으리라. 초기에 정물에 집중했던 원계홍은 1970년대 후반부터는 서울 골목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앞서 에드워드 호퍼를 연상하게 했다고 썼는데, 둘의 화풍은 묘하게 닮아있다. 에드워드 호퍼가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외로운 내면을 캐치했다면, 원계홍은 개발이 가까이 닥친 서울 뒷골목의 쓸쓸한 정서를 포착했다. 홍은동, 북창동, 회현동, 성북동 등 다양한 서울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외톨이처럼 자신만의 세계에서 골몰하던 원계홍은 1978년 55세의 나이에 비로소 첫 개인전을 열었다. 굉장히 늦은 시기에 세상 밖으로 나온 셈이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시점에서야 드디어 자신의 그림에 만족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원계홍은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고 화가로서 유명세를 떨치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그러하지 못했다. 1980년 심장바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55세의 나이, 너무 이른 이별이었다. 더구나 완성도 면에서 정점에 달한 시점이라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 너머_원계홍(元桂泓, 1923-1980)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5월 2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고, 관람료는 5,000원이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도 전시장을 찾았을 만큼 흥미로운 전시이니 만큼 꼭 한번 방문해보길 권한다. 따뜻한 봄에 나들이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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