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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오가 흘린 눈물, <라이브>가 들려주는 사명감의 의미

너의길을가라 2018. 4. 3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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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려는 마음을 사명감(使命感)이라 한다. 뜻은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그 정도의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으니까. 그런데 현실에서 그 말은 좀더 신성하게 들린다. 자신의 일을 천직(天職)으로 받아들이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 쯤으로 여겨진다. '너희는 사명감이 없어!, '사명감을 좀 가져!'라는 호통에 우리가 매번 쪼그라드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사명감이 필요없는 직업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경찰(또는 소방관)처럼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직종에서 사명감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사명감이 없는 경찰은 시민의 입장에서 불안하다. 그래서 tvN <라이브>의 오양촌(배성우)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명감을 강조하다. 그가 잠시동안 경찰학교 교수로 부임했을 때, 경찰 교육생을 얼마나 쪼아댔던가. "사명감은 어디있어! 집에 놔두고 왔나?"



정말이지 오양촌은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경찰이다. 조직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불합리한 징계를 받게 된 안장미(배종옥)가 "경찰의 적은 골치 아픈 민원인이 아니라 우리를 이용해 먹고 버리는 국가다. 그 말이 이해가 가."라며 오양촌에게 "자긴 경찰된 거 후회한 적 없어?"라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없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직접 사람 구하는 직업이 경찰, 소방관 말고 몇이나 되니?" 역시 (단순한) 오양촌답다. 


당연하겠지만 모든 경찰관이 오양촌은 아니다. 한정오(정유미)처럼 여러가지 이유로 취업 전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지하철에 붙은 경찰 모집 공고문에 이끌려 경찰이 된 케이스도 있다. 드라마에서 다뤄지진 않았지만, MB정부 시절 공무원 시험 과목이 통합되면서 타직렬(가령 행정직)에서 월담한 경우도 상당수 있다. 누군가에겐 천직인 그 일이, 누군가에게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일일 수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사명감 없는 경찰이다. 단지 먹고 살려고 경찰이 됐고, 그게 별로 부끄럽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죽자 살자 뛰고 있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인데, 내일이면 또 다른 사건에 묻힐 일이 뻔한데, 현장의 우리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건 거대한 조직이 아닌 초라한 우리들뿐인 걸. 그래도 나는 아이가 살았으면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먹고 살 일이 있다면 그만두고 싶은 현장이지만, 별다른 사명감도 없지만, 우리가, 내가 이 아이를 만난 이상 제발 이 아이가 살았으면."


유기된 아기를 발견하고, 싸늘해진 그 아기를 살리기 위해 미친듯이 뛰던 한정오는 스스로에게 고백한다. 자신은 사명감 없는 경찰이라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죽자 살자 뛰고 있나.' 매일같이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어김없이 어제의 사건은 오늘의 사건에 묻히고 말 텐데. 그래서 우리의 노고는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 텐데. 그걸 알아주는 건 초라한 우리들뿐인데.


수뇌부로부터 불합리한 징계를 받아도, 독직폭행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써도, 범죄자가 쏜 총에 동료 경찰이 맞아 죽어도, 멈춰서서 한숨을 돌릴 여유조차 없다. 지구대의 시간은 흘러가고, 경찰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순간에도 신고는 쏟아진다. 지령을 받으면 출동해야 하고, 끔찍한 현장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두려운 현장과 맞서 싸워야 한다. 사선(死線)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한정오는 동료들과 함께 심폐소생술(CPR)을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지금이라도 다른 먹고 살 수단이 있다면 현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래서 국비 유학생을 신청한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아이를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인다. '우리가, 내가 이 아이를 만난 이상 제발 이 아이가 살았으면.' 여기에 답이 숨어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사명감이라는 게 대단한 무언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양촌이라고 흔들림이 없었을까. 수많은 좌절과 회의(懷疑) 속에서도 눈앞에 맞닥뜨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굉장히 멀게만 느껴지는 사명감이라는 녀석의 실체이다. 한정오와 마찬가지로 사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경찰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하고 있음을 <라이브>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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