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미니시리즈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던 월화 드라마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수목 드라마도 그에 못지 않은 외면을 당했다. 한때 13.2%까지 치솟았던 KBS2 <흑기사>는 방향을 잃은 채 표류했고, 시청자들의 원성과 함께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명작의 반열에 오른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꾸준한 상승세를 타며 지상파를 압도했다. 마지막 회 시청률이 무려 11.195%를 기록할 정도였다. 지상파로서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너는 변기 같은 거야. 그냥 내가 싸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싸고, 필요 없을 땐 확 덮어버리는!"
그런 와중에 위기를 타개할 구원 투수가 등장했다. 바로 고현정 · 이진욱 주연의 SBS <리턴>이다.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리턴>은 의문의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떠오른 4명의 상류층 ‘망나니들(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이들을 상대하는 최자혜 변호사(고현정), 독고영 형사(이진욱)의 활약을 담은 사회파 스릴러다. 기대를 받았던 만큼 시청률도 6.7%(1회)-8.5%(2회)로 준수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리턴>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리턴>에 대한 민원이 약 20여 건 접수됐"으며,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지적"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리턴>은 살인 용의자인 상류층 망나니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의 비윤리적이고 싸이코적인 행위들을 잔뜩 묘사했다. 성상품화는 물론이고, 마약, 불륜, 자해, 폭력 등의 소재들이 나열됐다. 가령, 상류층 망나니들 가운데 한 명인 김학범(봉태규)는 비키니 차림의 여성을 물건 취급하며, 술잔으로 머리를 폭행하기까지 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오태석(신성록)은 그 여성에게 돈을 쥐어주며 무마하려 했다.
더 충격적인 장면은 친구들과 그 아내들이 모인 저녁 식사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불륜을 저지르는 상황을 연출한 대목이었다. 굳이 그렇게 자극적인 묘사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그에 대한 진짜 대답은 '시청률'일지도 모르겠다. 일부 시청자들은 <리턴>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며 채널을 돌렸고, 앞으로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률은 그런 여론과는 별개로 움직였다. <리턴>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12.7%(7회)-15.2%(8회)까지 급상승했다. 수목 드라마의 왕좌를 차지한 것이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재미'만 놓고 봤을 때 <리턴>은 분명 경쟁력이 있다.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극단적인 상황들이 발생한다. 또, 매회마다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제시된다. 제법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그 중에서 '망나니들'의 분량과 활약이 도드라진다.오태석 역을 맡은 신성록의 활약도 눈에 띠지만, 그의 연기는 SBS <별에서 온 그대>(2013), tvN <라이어 게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놀랍긴 해도 생경하진 않다.
현재까지 <리턴>의 가장 큰 반전은 역시 봉태규일 것이다. 그동안 코믹한 이미지로만 소비됐던 봉태규는 김학범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 완전히 재평가를 받고 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야말로 '미친' 악역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데, 워낙 예측불허의 캐릭터라 그가 등장하면 긴장감이 증폭된다. 정말이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화를 못 이겨 자신이 돌로 머리를 내리쳤던 친구 서준희(윤종훈)의 장례식장에서 흘린 악어의 눈물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흥미로운 점은 아직까지 주연 배우인 고현정과 이진욱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캐릭터가 탄탄히 자리잡은 망나니들과의 주연 배우들 간의 시너지가 생길 여지가 많다. 드라마의 상승 동력이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리턴>의 시청률 20% 공략은 불가능한 꿈이 아닐 것이다. 이토록 잔인하고 섬뜩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상황을 어찌봐야 할까. 아마도 '욕하면서 본다'는 드라마 마케팅의 성공 사례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편, 시청률 22.8%라는 최고 기록을 세운 MBC <돈꽃>은 '명품 막장'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또, 잘 나가는 주말극들은 죄다 막장의 경계선에 걸쳐 있거나 아니면 대놓고 막장 드라마다. 이제 일정 부분 막장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으면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예외적인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사라진 지금, 그런 분위기는 더욱 가속화될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잔잔하고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가 성공하기 어려운 현실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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