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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의 눈물로 <안녕하세요>의 꿉꿉함을 덮을 수 없다

너의길을가라 2018. 4. 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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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딸의 사생활을 구속하는 아빠. 딸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4~50통씩 전화를 걸고, 20분 간격으로 동선을 체크한다.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치마를 갈기갈기 찢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딸은 숨이 막히고, 무섭기만 하다. 그런데 아빠는 이 모든 게 딸을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이라며 '딸 몸에 손을 댄 적은 없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소름이 돋는다. 끔찍하기만 하다. 


명백히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사연이다. 화가 난다고 딸이 보는 앞에서 TV를 때려 부수고, 대걸레를 부러뜨리고 던지는 건 정상 범주를 벗어난 행동이다. 그런데도 아빠는 태연하게 '화를 낼 때는 액션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생동감 있는 연출이었다고 웃어 넘기려 든다. 이런 상황에서 패널로 출연한 조성모는 자신은 이해가 된다며, "바르게 길을 이끌어주려는 행동이 과한 것"이라며 아빠를 두둔하는 코멘트를 던진다. 어이가 없다.


그래도 MC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찬우는 "연락이 안 되는 상황도 아니고, 너무 많이 연락을 하시고 체크를 하는 게 아닌가"라며 지적했고, 신동엽은 "집어던지가 깨부수고 하는 건 진짜 잘못된 겁니다. 앞으로 절대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따금하게 일침을 놓았다. 이영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일견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난 늘 방황했어요. 지금도. 우리 아버지도 한번도 (표현해 주지 않았어요.). 표현해줘야 돼요. 알려줘야 돼요. 아버지가 그렇게 못하면, 엄마라도 번역해줘야 돼요. 아버지는 널 사랑하는 거란다. 나도 널 사랑하는 거란다. 아버지도 안 해줬고, 엄마도 안 해줬어요. 끝끝내 안 해줬어요. 내가 50이 됐는데도. 그래서 우리 세 딸은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받지 못한 마음을 나눠요. 또 남은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무조건 자식은 사랑이에요. 그래야 세상을 나가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언론은 '이영자의 눈물'에 포커스를 맞춰 기사들을 쏟아냈고, 시청자들은 이 끔찍한 사연을 '감동'이라는 프레임에 갖혀 소비했다. 정작 문제의 본질은 흐트러졌고, 사연의 주인공인 19세 딸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가정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의 방식, 무려 8년동안 지속해 왔던 괴상한 태도이자 회피적 자세이다.


위의 사연만 해도 '웃음'으로 넘기고, '눈물'로 포장해 버릴 간단한 것이 아니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아도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최소한 여성긴급상담전화(1366), 한국여성상담센터(02-953-2017) 등 전문기관과의 상담이 필요하거나 경찰의 수사 내지 개입이 필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안녕하세요>의 아슬아슬함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매주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365일 술을 마시고 다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말려달라는 사연(2017년 6월 12일), 전화와 문자 내역까지 확인하는 엄마의 집착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중학교 2학년 딸의 사연(2017년 7월 17일), 여자친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여자친구를 자신의 소유물인양 생각하는 남자친구를 고발하는 사연(2017년 8월 28일), 아내에게 욕설과 폭언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연(2017년 10월 17일)까지.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이렇듯 심각한 문제들을 놓고서 <안녕하세요>는 안이한 포맷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스트 투표를 통해 '고민이다', '고민이 아니다'를 판단하게 하고, 객석에 있는 방청객들에게 투표를 하게 해 그 결과로 '우승'을 가린다.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과정은 매우 불필요하고, 쓸모없어 보인다. 자극적인 소재 선정과 작위적인 연출을 조장할 우려가 농후하다. 


또, 서로에게 서운했던 점을 말하게 하고,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라며 분위기를 몰아간다. 출연자들은 엉겹결에 화해를 하고, MC들은 합의점을 도출해 낸다. 그러면 패널들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듯 개운한 표정을 짓고,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한마디로 얼렁뚱땅이다. 전문가가 없는 상황(정신과 의사를 게스트로 부르기도 했지만 일회성에 그쳤다)의 한계는 수박 겉핥기식의 문제해결로 이어진다. 



<안녕하세요>는 무려 8년동안 사랑받고 있는 장수프로그램이지만, 결코 안녕하지 못한 사연을, 전혀 안녕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시청자들은 매주 '이거 실화냐?'라고 되묻게 될 만큼 믿어지지 않는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그것이 방송을 위해 설정과 연출이라 한다면 지금의 포맷에 대해 심각히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고, 만약 꾸며낸 것이 아니라 실화라면 지금과 같이 은근슬쩍 넘어가는 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안녕하세요>에서 다루고 있는 사연들은 사안의 중대성을 볼 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은 신동엽의 일침, 이영자의 공감과 같이 MC들의 역량에만 의존하고 있다. 또, 웃음과 눈물을 통해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희석시킨다. 자칫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해결 지침을 내려줘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랑하니까 혹은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가라. 화해해라는 건 매우 심각한 폭력이자 2차 가해일 뿐이다.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불안하다. 방송에 출연한 저들은 괜찮을까. 이해하라고 얼버무리지 않고 헤어지라고 강권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살라고 하지 않고, 이혼하라고 해야 했던 건 아닐까. 방송에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담을 받거나 경찰의 도움을 빌리거나 가정법원에 가도록 해야 하지 않았을까. <안녕하세요>를 보는 시청자들은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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