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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가을 아침', 2017년에 듣기엔 불편하다

너의길을가라 2017. 9. 3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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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목소리'로 충분하다. 많은 악기가 필요하지 않다. 기교도, 전략도 그 목소리 앞에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의 목소리는 간단히 공간을 채우고 빈틈을 허용치 않는다.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묘한 '힘'을 지녔다. 특유의 음색은 마치 '마법'처럼 듣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어떤 노래에선 커다란 호수처럼 차분하고, 어떤 노래에선 골짜기의 개울처럼 장난기가 가득하다. 어떨 땐 마음을 휘어잡듯 매혹적이다가, 어떨 땐 맑고 투명한 청초함이 그득하다. 화려함을 능숙하게 활용하다가도 깨끗하고 순수한 매력을 어필한다.


여전히 종잡을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꾸미지 않은 '편안한 목소리'가 듣는 이들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수로서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거기에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까지 갖췄으니, 그가 '최고'가 아니라면 더 이상한 일이다. 아이유 말이다. 이미 '가수 아이유'로서 독보적인 지위에 올라있던 그는 JTBC <효리네 민박>에 출연하면서 '인간 이지은'까지 대중들에게 '설득'시키고야 말았다. 감히 말할 수 있다. 아이유는 전 세대를 '통합'하는 전무후무한 뮤지션의 자리에 가닿았다. 


ⓒ페이브엔터테인먼트


두 번째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9월 22일 발매)은 매우 '영리'한 선택이었다. 효리 언니 덕분에 '아이유(이지은)'라는 이름에 대한 '친근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시점에 어떤 앨범을 냈더라도 성공을 거뒀겠지만, <효리네 민박>의 주 시청층에게 친숙한 명곡들을 끄집어낸 전략은 아주 '영악(긍정적인 의미로)'했다. 게다가 선공개 곡으로 골랐던 '가을 아침'은 예능에서 보여줬던 소탈하고 수수한 이미지를 이어가는 징검다리와도 같았다. 훌륭한 연결고리를 골랐던 덕분일까. <꽃갈피 둘>은 음원차트에서 승승장구했다.


"음악적으로 존경하는 두 분(이병우, 양희은)의 당시 음반은 어린 시절 풋풋함과 청량함을 느낄 수 있어 정말 많이 들어왔다. '가을 아침'은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아이유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가을 아침'은 풋풋함과 청량함이 노래 전반에 녹아 있다. 원곡에서 양희은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유도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화자의 입장에서 바라 본) 지극히 평화로운(?) 아침 풍경들이 묘사된 가삿말이 귓가에 살며시 스며든다. 지금의 계절과도 맞닿아 있어 더욱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뭔지 모를 '불편함'이 피어난다. 그건 아마도 아이유의 음색과 노래의 분위기가 익숙해지면서 '가삿말'이 선명해지면서 생긴 불편함일 것이다.


ⓒ페이브엔터테인먼트


이른 아침 작은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 할까 말까


이 얼마나 평온한 아침의 풍경인가. 새들의 노랫소리가 잠을 깨우고, 창문에는 햇살이 가득 비치고 있는 가을 아침. 마치 제주도의 효리네 집에서 작사를 했다고 해도 믿어질 만큼의 감수성이다. 물론 이 노래는 원작자(기타리스트 이병우)가 있으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 '무릎', '밤편지' 등에서 표현됐던 아이유의 감성과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가사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다. 아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 문제는 그 다음에 묘사된 아침 풍경들이다. 


'가을 아침' 속의 화자는 자신의 '평화로운 아침'을 위해 '어머니'를 등장시킨다. 노래 속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묘사된다. '딸각딸각 아침짓는 어머니의 분주함', '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 반면, 아들(화자이기도 하다)은 늦잠을 자고 겨우 일어나선 '엉금엉금 냉수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을 피우고, '동기동기 기타치는 (그 아들의) 한가함'을 뽐낸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뭘 하고 계실까? 어머니가 분주하게 요리를 하는 동안 집안 청소라도 하고 계셨을까?


그럴리가, 아버지는 유유자적하게 '산책갔다 오시'다가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를 하나 가득' 들고 오셨다.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라던 '가을 아침' 속 화자가 떠올린 아침의 풍경이란 오로지 어머니의 희생만으로 채워져 있었다. 여기에서 '화자'는 이 노래의 원작자인 이병우다.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그때는 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았다(<중앙일보>, "30년 전 만든 '가을 아침' 1위 신기" 양희은과 달라서 매력)"며 소회를 밝힌 것을 보면, 자전적인 노래임을 알 수 있다. 그의 나이 23살 때라고 한다.



아직까지 '가을 아침'이라는 곡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아침을 묘사하는 노래로 들리는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에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없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니 말이다. 물론 이 노래가 처음 발매된 시기가 1991년이라고 하니, 당시에 이 노래를 들었다면 지금의 불편함 없이 감상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양성 평등'에 대한 인식이 더욱 커지고, 성역할의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한 교정(矯正)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2017년에 듣기엔 참으로 거슬리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가을하면 추석이 아니던가. 평소의 끔찍한 '가사 노동'에 이어 답 없는 '명절 노동'까지 감내해야 할 수많은 '어머니'들을 생각하니 더욱 듣지 못할 시대착오적인 노래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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