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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보한 관찰여행 예능 <내 방 안내서>를 보며 <무한도전>이 떠올랐다

너의길을가라 2017. 10. 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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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 박신양은 자신만의 작업실을 공개했고, 더불어 일상의 한 부분도 꺼내 놓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과 그 속에 어우러지는 삶도 살며시 보여줬다. 늘 가던 빵집에 들러 '제 빵'을 사먹었고, 지나가다 수시로 들리는 자전거 매장에서 원두 커피를 맛보기도 했다. 단골 꽃집에선 "깍아주세요"라며 애교를 부렸고, 익숙한 밥집에서 식사도 했다. 마트에서 "지난 번 불고기용 고기가 맛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박신양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을 소개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은 "우리나라에 있으면서 되게 바쁘게 살았"다면서 "조금 지친 것 같다"며 '쉼'을 강조했다. 그는 '홈 스와핑' 희망국가 1지망으로 네덜란드를 기입했고, 20년 전 그곳을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행복'을 경험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한편, 그가 머물던 전남 해남 미황사에는 정체불명의 네덜란드 여성 3명(마가리뜨, 사빈느, 다프네)이 찾아왔다. 그들은 "OH, MY BUDDA"를 연발하며 혜민 스님의 삶을 영접했다. 과연 이들이 종교적인 공간인 절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체조 요정'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대부분을 보내고, 이제 평범한 20대로 돌아간 손연재는 덴마크의 정치 평론가이자 대학생인 니키타 클래스트룹와 방을 바꿨다. 니키타는 정치, 환경, 여성 등 사회 이슈 전반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는 청년으로 현재 덴마크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라고 한다. 17세에 정당에 청소년 당원으로 참여했던 그의 모습들이 어떤 식으로 그려질지 흥미롭다. 한편, 코펜하겐으로 떠난 손연재는 자신을 향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훨씬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나래는 미국 LA로 떠났다. 미국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프로듀서 스쿱 데빌과 대중적인 인지도가 매우 높은 투어링 DJ 살람 렉과 방을 바꿨다. 박나래는 두 사람의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펜트하우스에서 뷰를 감상하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또, 아침 조깅을 하고 과일 음료를 마시는 등 여유로운(?) LA 라이프를 시작했다. 스툽 데빌과 살람 렉은 한국의 화폐 단위를 처음 경험하면서 한껏 신난 모습이었다. 또, 마치 클럽을 연상케 하는 박나래의 집에서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SBS <내 방을 여행하는 낯선 이를 위한 안내서>(이하 <내 방 안내서>)는 '여행'과 '관찰'을 엮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최근 예능의 변화와 흐름을 적절히 포착한 셈이다. 하지만 그쯤에서 그쳤다면 흔하디 흔한 여행 예능에 그쳤을 게다. 시청자들은 이른바 '연예인(과 그 지인들)을 여행 시켜주는' 프로그램들에 조금씩 싫증을 느끼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신물이 난다는 과격한 반응도 존재한다. 그런데 <내 방 안내서>는 좀 다르다. <내 방 안내서>가 기존의 예능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집 바꿔 지내기'라는 '의미 부여'다. 


1953년 안톤 레이먼과 게오하르그 도그만이 방학 기간을 맞아 집을 교환하면서 '인생 수업'을 한 데서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집 바꿔 지내기'는 이제 새로운 여행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세계적으로 홈 익스체인지 사이트가 100여 개에 달하고, 10만 명 정도가 그런 여행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에어비앤비(AirBnB)와 같은 숙박 공유 서비스가 보편화(192개국 3만 4,800개의 장소에 대한 숙박을 중개, 2013년 기준)된 요즘,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방식의 여행이다. (물론 위험 요소가 잠재돼 있어 무작정 추천하긴 어렵다.)


<내 방 안내서>는 여행이라는 소재에 '방'이라는 공간을 서로에게 내어줌으로써 쌍방향적 관찰을 성사시켰고, 더불어 '일상'이라는 요소를 녹여냈다. 한쪽의 일방적인 여행과 체험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양쪽의 그것을 공히 보여주면서 흥미로운 포인트를 가미했다. 또, 서로의 일상과 주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여행'을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보다 농도 짙은 경험으로 바꿔버렸다. 그와 같은 '부대낌'은 훨씬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생산해낼 것이 분명하다. 



총 10부작으로 편성된 <내 안 안내서>는 첫 회에 4.1%, 4.2%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방송되는 KBS <해피투게더>(3.8%, 3.5%)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상쾌한 출발을 알렸다. 확실히 새로웠된 <내 방 안내서>는 관찰 카레마의 새로운 변주로 할 만 했고, 차별화된 예능이 보고팠던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서 문득 MBC <무한도전>이 떠올랐다. 지난 2011년 1월 <무한도전>은 '타인의 삶'이라는 기획을 선보인 적이 있다. 박명수가 시청자 1명과 서로의 삶을 하루동안 바꿔서 살아보는 프로젝트였다. 


박명수는 재활의학과 전문의로서 하루를 살아가고, 반대로 김동환 교수는 박명수 캐릭터를 연기하며 <무한도전> 멤버들과 프로그램 녹화에 참여했다. 동갑내기였던 두 사람은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하루동안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 보면 <무한도전>은 시대를 훨씬 앞서나간 프로그램이었다. 기존의 어떤 예능보다 재미있고, 그 어떤 파일럿보다 실험적이고 혁신적이었던 <무한도전>의 빈자리가 새삼 느껴졌다.


ⓒ권우성


'적폐 청산'을 외치며, 경영전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와 KBS본부)는 여전히 파업 중이다. 벌써 한 달이 넘어섰다. 파업으로 인해 방송은 차질을 빚고 있고, 당연히 추석 특집이나 추석을 겨냥한 파일럿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무한도전>을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은 5주 째 결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파업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언제까지 이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야 하는 걸까. 


이명박정권 이후 MBC가 자행했던 수많은 부당노동 행위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시점에서 사측의 버티기는 더 이상 정당성이 없어 보인다.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편파적이고 왜곡된 수많은 보도들과 제작의 자율성을 침해했던 사측의 횡포에 대한 책임을 응당 져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적폐'가 청산되고, 토요일 저녁 마음 편히 TV 앞에 앉아 <무한도전>을 시청할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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