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변호인>, 당신의 눈물에는 정치색이 담겨 있지 않다

너의길을가라 2013. 12. 2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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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겠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예고편을 통해서 감동적인 영화일 거라는 생각은 충분히 했다. 하지만 '아, 이 장면은 견디기 쉽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던,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치는 부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물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잔잔히 흘러 나왔다. 송우석 변호사를 변호하기 위해 변호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142명(참석은 99명)의 변호인 이름이 한 명씩 호명되는 장면 말이다. 아마 감독도 그 장면을 영화의 진짜 '하이라이트'라고 여기고 있지 않을까? 


영화 <소원>에서 소원이가 담담하게 '왜 태어났을까?'를 말하는 장면에서도,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전도연의 오열 장면에서도 필자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따라서 필자의 눈물에서 '정치색'을 찾으려는 헛된 시도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눈물들은 저렴하지도, 그렇다고 도도하지도 않은 필자의 눈물샘 탓이니까.



<변호인>은 '노무현 영화'다. 실제로 변호사 노무현을 대상으로 만든 영화이고, 개봉 이전에 이미 한바탕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변호인>은 1981년 제5공화국 정권 초기 부산 지역에서 벌어진 부림사건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변호인'은 노무현 위인전인가 아닌가 (듀나)

'변호인' 노무현 미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황진미)


이에 대해 영화 평론가 듀나는 "영화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위인전'이 되어 버"렸다고 '불평'했고, 반면 황진미는 "<변호인> 의 주인공은 故 노무현 대통령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며 '영화 속 주인공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인물'이지만, 그의 삶은 이미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삶은 특정인물의 삶으로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영화를 다 감상한 후에 이 영화가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해서 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만약 그 반대가 되면, 특정 인물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거나 별다른 호감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를 기피하게 된다. 혹, 그 인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영화 자체가 주는 재미와 감동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떡하랴? 이미 <변호인>은 '노무현 영화'라는 딱지가 붙여졌고, 그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진 것을..! 


이 작품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인생의 단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그 분을 미화하거나 그 분을 헌정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작품이었다면 저는 참여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이 영화로 상식적인 세상을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니 영화를 보기 전 괜한 오해와 편견은 안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개봉 후에는 어떤 비판을 받을 준비는 돼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서 반전이 있다. <변호인>들을 다 감상하고 나면, 그것이 단지 '노무현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을 송강호의 말처럼, <변호인>은 '상식적인 세상을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엄혹하고 참혹했던 대한민국의 80년대를 보여주는 영화이고,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현재'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의 제공과 배급을 맡은 NEW의 김우택 대표는 '송강호가 없었다면 <변호인>이 상업영화가 될 수 없었을 '이라며 송강호에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송강호가 출연을 결정하자마자 영화에 대한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만약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변호인>은 대형 상업영화가 아닌 <남영동> 정도의 작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외적으로도 송강호의 힘이 큰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송강호는 배우로서 '연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오랜 세월 우리가 송강호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고 새로운 송강호 모습이 아닐까 한다.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며 그의 연기를 극찬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우아한 세계>이후 송강호의 연기는 정체되어 있었다. 물론 그 정체가 워낙 높은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었기에 관객들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었지만, 그를 극한으로 몰고가는 영화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존의 송강호라는 배우의 캐릭터를 활용하는 수준이었다고 할까? 


반면, <변호인>은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새로운 송강호의 모습'을 이끌어냈다. 여기에는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부담감이 훨씬 더 깊은 연기에 대한 고민과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연습을 이끌어냈던 것 같다. 어쨌든 몇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송강호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은 관객 입장에선 매우 반가운 일이다. 




<변호인>은 '상식'이라는 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시절, 폭압적인 군사정권의 무자비하고 비열한 군홧발에 맞서 싸웠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보안법 하에 선량한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워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자들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던 시민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단지 과거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닌 듯 하다. 비록 고문과 같은 물리적인 공포는 사라졌지만, 보다 교묘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국가폭력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지 않던가? 그래서 <변호인>은 단지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142명의 변호인의 이름처럼..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상식을 사수하기 위해서,

이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자들에 의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세워졌던,

송우석 변호사, 

혹은 노무현 변호사,

혹은 수많은 시민들을 위해,

그 진실된 양심들처럼,


필자의 이름도 그 끝없는 호명의 끄트머리 어디쯤에 불려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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