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타바 강(Vltava River)을 가로지르는 카를 교(Karluv Most)에서 올려다 보이는 언덕, 그 위에 솟아있는 프라하 성(Pražský Hrad)의 모습은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이내 마음까지 포섭해버린다.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아름답다. 기네스북에 등재됐을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대 성채, 9세기 중엽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프라하 성은 왕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참으로 매혹적이다.

 

프라하 성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좀더 꼼꼼하게 둘러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갑자기 생긴) 일행이 있었던 탓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수박 겉 핥기에 그쳤다. 프라하 성의 입장권은 Circuit A(350코루나), B(250코루나), C(350코루나) 세 가지로 나뉘는데, (여행 책자에서는) 일반적으로 B를 추천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패키지) 여행객들이 거쳐가는 코스일 게다.


카를 교와 프라하 성


A : B + ‘프라하 성 이야기’ 상설전시, 화약탑, 로젠베르크 궁

B : 성 비타 대성당, 구왕궁, 성 이르지 교회, 황금 소로, 달리보르카 탑

C : 성 비타 대성당 보물관, 프라하 성 회화관

 

면적이 7만㎡, 길이 570m, 너비 130m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인 만큼 모든 곳을 샅샅이 둘러보려면 최소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여기에 C에 속하는 성 비타 대성당 보물관과 프라하 성 회화관까지 살펴보려면 그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프라하 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B 코스를 돌고나서 시간적 여유가 되면 개별적으로 티켓을 끊어 구경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가장 큰 적은 '시간'보다는 '체력'이 아닐까 싶다

 

입장권은 구입한 날과 그 다음 날까지 유효한데, 여행이라는 게 같은 장소를 두 번 들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감동적인 장소라면 또 모르겠지만, 안 가본 곳이 수두룩한데 굳이 또 그곳을 찾을 일은 거의 없기 마련이다. 어차피 다음 날에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가는 일정을 짰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프라하 성 투어는 하루뿐이었다.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시가지


프라하 성을 가는 길(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22번 트램을 타고 이동해서 프라슈스키 흐라드에서 하차한 후 도보로 5분 정도 이동하는 게 첫 번째, 성 니콜라스 성당 부근에서 걸어 올라가는 게 두 번째 방법이다. 처음 프라하 성을 방문할 때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직 대중교통이 낯설 때이기도 하고, 체력이 넉넉할 때 ‘발’로 직접 프라하를 익히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제법 가팔랐다. 쉬엄쉬엄 올라갔지만, 땀이 살짝 날 정도였다. 계단을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프라하 성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는 대통령 궁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프라하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시선은 자연스레 왼쪽으로 먼저 향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째서 프라하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됐는지 알 것 같았다.

 

동유럽 특유의 ‘붉은 지붕’들이 ‘선’을 그리며 아기자기하게 이어져 있었다. 문득 파리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파리를 내려다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건물과 건물로 이어진 수평선과 그 풍경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파리의 시민들이 떠올랐다. 물론 자본주의의 집요한 공습은 그마저도 서서히 붕괴시키고 있었지만. 나는 이 오래된, 그래서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들이 참 좋다.


대통령 궁


대통령 궁은 입장이 불가능하고, 단지 외관을 구경할 수 있다. 성문을 지키는 위병들은 매 시간마다 교대식을 하는데, 정오 교대식이 가장 성대하게 치러져 볼 만 하다. 운 좋게도 타이밍이 맞아 제법 화려했던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교대식 자체가 흥미로웠다기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았다. 시끄럽다기보다는 활기 넘치는 분위기, 여유와 행복이 가득한 공간 특유의 냄새 말이다. 국적도 나이도 당연히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여행객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본격적인 프라하 성 투어를 시작하면, 곧바로 성 비타 대성당(Katedrála svatého Víta)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압도적인 규모에 우선 기가 눌리게 된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눈앞에 웅장한 건물이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다. 고개를 뒤로 끝까지 젖혀야 겨우 시야에 성 비타 대성당을 담아낼 수 있다. 게다가 햇살까지 비추기 시작하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은 3톤으로 치장한 성 네포묵의 묘 


외부에서 바라 본 성 비타 대성당의 모습



프라하 최대의 성당인 이곳은 10세기 무렵부터 지어졌다고 하는데, 완성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남아 있다가 1929년에야 완공됐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내부에 들어갈 수 있지만, 슬라브 족의 역사가 담겨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성 네포묵의 묘 등 성당 내부를 꼼꼼하게 살펴보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전망대가 있지만 별도의 티켓이 필요하고, 계단(287개)을 올라야 한다. 


좀더 높은 곳에서 프라하의 전망을 감상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지만, 그 많은 계단을 올라갈 시간과 체력을 아끼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올라가보지 않아서 그 전망이 얼마나 멋진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는 스팟들이 여러 군데 있기 때문에 전망대에 오르지 않은 선택이 그리 아쉽진 않았다. 여긴 두오모 성당(의 경우에는 총 463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이 아니니까. 


성 이르지 교회



성 비타 대성당을 나오면 구왕궁과 프라하 성 이야기 상설전시관이 나오는데, 역시 눈길을 끄는 건 붉은 벽의 ‘성 이르지 교회(Bazilika sv. Jiri)’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수호성인인 바츨라프 1세(Vaclav I)의 명에 따라 920년에 처음 지어졌다. 내부에는 왕족들을 위한 묘와 예배당이 있는데, 실제로 미사가 열린다고 한다. 방문 당시에는 미사가 없어 마음껏 둘러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황금 소로



성 이르지 교회에서 좀더 걸어가면 황금 소로(Zlatá Ulička)가 나온다. 소로(小路)가 좁은 길이니 ‘골목’ 정도로 바꿔 불러도 상관없다. 오히려 황금 골목이 보다 정겹지 않은가. ‘황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골목에 어째서 황금 소로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원래 이 골목에는 위병(衛兵)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연금술에 심취했던 루돌프 2세(Rudolf II)가 금은세공사와 연금술사들을 살게 하면서 그리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화 속에 나오는 집처럼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그 아기자기함에 반할 정도다. 어떻게 저런 색감을 써서 벽을 칠할 생각을 했을까. 신기하기만 했다. 골목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있고, 옛 갑옷과 무기 등을 전시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황금 소로까지 패스했다면, 고문 기구들이 전시된 달리보르카 탑(Daliborka) 정도가 남은 셈이다.


이렇게 프라하 성 투어가 마무리 된 셈인데, 곧바로 트램을 타고 구시가 방면으로 내려와도 좋고, 스타벅스(최고의 전망이 펼쳐지는 금싸라기 위치)에서 전경을 바라보며 한숨 돌린 후 걸어내려와도 좋다. 다음에는 프라하의 또 다른 명소인 ‘카를 교’를 구경해보도록 하자. 가장 낭만적인 장소이기도 한 카를 교는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끊임없이 찾게 되는데, 낮과 밤의 분위기가 워낙 달라 반드시 ‘시시때때로’ 들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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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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