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박원순법이 가혹하다는 대법원, 공정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너의길을가라 2016. 5. 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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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서울시는 단돈 1,000원의 부정한 금품만 받아도 직무 관련성 혹은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처벌하는 내용의 '서울특별시 공무원 행동강령', 이른바 '박원순법'을 (개정) 시행했다. '1,000원'이라고 하는 금액이 갖는 상징성과 더불어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느슨했던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매우 파격적이고 강경한 조치였다. 


ⓒ 한국일보


서울특별시 공무원 행동강령은 '서울특별시공무원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준수하여야 할 공정한 업무수행, 부당이익의 수수금지, 업무숙지의 의무, 이해관계자로부터의 독립성 유지, 인지된 부정행위신고 및 보고의무 등에 대한 행동기준을 규정함으로써 서울특별시민의 기본적 권익 보호 및 행정의 투명성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공무원 행동강령

제12조(금품 등을 받는 행위의 금지) ① 공무원은 직무상의 관련여부 및 기부·후원 등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일체의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


사례. 

서울 송파구 박 국장은 지난해 2월 건설업체 간부 최 씨로부터 저녁식사와 함께 5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다른 업체 직원으로부터 12만 원 상당의 놀이공원 이용권을 제공받았다.


서울시의 강화된 처벌 기준에 따르면 박 국장은 명백한 처벌 대상이고, 그에 따라 서울시 인사위원회는 '해임' 처분을 결정했다. 하지만 박 국장은 이에 불복해 소청을 제기했고, 처벌은 '강등'으로 수위가 낮아졌다. 이조차도 불만족스러웠던 박 국장은 '처벌이 지나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법원은 박 국장의 손을 들어줬다. 1, 2심에 이어 대법원은 원고(박 국장)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 국장이 공무원 직무의 청렴성과 공정성을 훼손해 엄한 징계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징계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 등을 감안하더라도 (강등은) 지나치게 가혹하고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을 넘어선 위법한 처분이다." 2015년 9월 19일, 1심


"원고가 받은 금품 액수가 많지 않고 경위가 수동적이며, 담당 구청도 처음에 경징계 의견을 낸 걸 보면 서울시가 징계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외에 서울특별시 소속 지방공무원이 수동적으로 100만 원 미만의 금품·향응을 받은 경우 강등처분을 받은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2015년 12월 22일, 서울고법 행정1부(곽종훈 부장판사)


"징계가 지나치게 가혹하고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을 남용했거나 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위법한 처분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


법원이 내세운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금품을 적극 요구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았다.

2. 금품을 받은 대가로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3. 서울시 소속 공무원이 수동적으로 100만 원 미만 금품 · 향응을 받아 강등된 사례가 없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능동적 수수인지 수동적 수수인지에 관한 관점 차이이지 박원순법 자체에 관한 문제 지적은 아니"라고 설명했고, 박원순 시장은 "50만원 상품권을 받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나?"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그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시민들의 생각을 묻기도 했다. 




시민의 판결을 들려주세요. '박원순법' 첫 사례, 해임처분 취소 소송 원고 승소 확정…"재량권 넘어선 위법한 처분"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직을 보장 받는 공직자는 공평무사해야 하고 청렴결백해야 합니다. '박원순법'은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 서울시가 반부패 청렴 운동 차원에서 선제적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공직에서 부패청렴의 가치가 시급하고 우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도 서울시를 따라 행정자치부령인 지방공무원징계규칙으로 확립한 공직사회의 반부패 청렴기준입니다. 공직사회에서 금품과 향응은 액수의 많고적음이 아니라 주고받는 행위 자체를 근절하고 '무관용 원칙'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여러분의 판결을 들려주세요.


'수동성'을 강조하고,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박 국장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단은 다소 의아하다. 또, 시민들의 '상식'과도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더구나 '사례'가 없기 때문에 '강등'이라는 처벌을 할 수 없다는 논리에선 실소(失笑)가 절로 나온다. 전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법관들의 보수적인 마인드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인데, 앞으로 수동적으로 100만 원 미만의 금품과 향응을 받는 공무원들은 '강등'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박원순법'의 등장으로 서울시 공무원 사회는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다. '박원순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4년 10월부터 2015년 9월까지 금품 수수, 음주운전, 성범죄 등 주요 비위(非違) 적발 건수는 43건으로, 같은 기간의 71건에 비해 39% 감소했다. 또, 공무원이 금품을 수령했을 때 '자진신고'하는 '클린신고센터' 접수 건 수는 51% 증가했다. 이 수치만 봐도 서울시 공무원 사회가 한층 '청렴'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결과의 '원인'이 '박원순법'이라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지난해 9월 서울시 공무원 1,6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박원순법 시행으로 서울시 공직사회 긴장도가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원순법'의 첫 적용 대상이었던 박 국장 사례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징계권 남용'이라는 판단을 하면서 '박원순법'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룰(풍토라고 할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해임'과 '강등'이라는 처벌이 다소 과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법원의 판단도 이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낡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작다고 소홀하게 넘어간다면 대한민국이 공정사회, 신뢰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는 박 시장의 지적(고등법원 판결 후)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5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집계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아 조사대상국 중 37위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점수는 1점 올랐고, 순위는 6계단 상승했다. 하지만 조사대상국이 175개에서 168개국으로 줄어들었고, 2008년 5.6점(10점 만점)을 받은 점수에서 '정체'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없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그 '현실'에 대한 '사회지도층(이라는 표현이 마뜩잖지만)'의 인식은 한심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4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청탁금지법이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했다"며 '김영란법'의 후퇴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대법원은 '박원순법'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한다.


이처럼 국가를 뿌리채 흔드는 공직사회의 부패와 부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 반대편에는 그 노력을 봉쇄시켜 허무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를 썩게 만드는 온갖 종류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선봉에 공무원 사회가 앞장서야 한다. '시민'과 '국민'을 위해 '공적(公的)' 영역에서 일하는 공무원에 대한 '잣대'는 오히려 더 엄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작은 것'을 '사소하다'고 여기고, 처벌이 가혹하다고 말한다면, 박 시장의 말처럼 대한민국이 공정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분의 판결을 들려'달라는 박원순 시장의 요청에 '시민'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그 대답들이 모이고 모여서 또 다른 '원동력'이 돼 사회를 바꿔나갈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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