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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으로 증명, 제목이 '강감찬' 아닌 '고려거란전쟁'인 이유

너의길을가라 2024. 3. 1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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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죽지 않는다. 고려는 승리할 것이다." (강감찬)


KBS2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끝은 역시 '귀주대첩(龜州大捷)'이었다. 귀주성 앞 평원에서 제3차 여요전쟁 그 최후의 일전이 펼쳐졌다. 고려군과 거란군은 모두 배수진을 치고 대회전(大會戰)을 벌였다. 강감찬과 강민첨이 이끄는 고려군은 제1 검차진은 고립되고, 제2 검차진도 전투 불능 상황에 빠지는 위기 속에서도 버티고 버텼다.

불리한 전황을 뒤집는 요인은 김종현(서재우)이 이끄는 중갑기병의 합류였다. 야율융서(김혁)의 거란군을 제압하기 위해 고려가 준비했던 비밀병기 중갑기병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승기를 잡은 강감찬(최수종)과 강민첨(이철민)을 비롯한 고려군은 처절한 전투 끝에 승전보를 울렸다. 귀주대첩의 극적인 승리로 약 25년 동안 이어졌던 여요전쟁이 막을 내렸다. 고려의 승리였다.

귀주대첩을 담은 KBS2 <고려거란전쟁> 31회, 32회(마지막 회)는 '때깔'부터 다른 역대급 전투신을 탄생시켰다. 강감찬과 소배압(김준배)의 지략 싸움과 검차를 필두로 한 디테일한 전투 장면이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 특히 혼란에 빠진 병사들 사이를 지나 검차를 향해 다가가는 강감찬의 결연한 모습은 '사극의 신' 최수종의 연기 내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병사 한 명 한 명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부분도 흥미로웠다. 그동안 사극은 전쟁신에서 병사들을 '소모품' 쯤으로 여겨 왔다. 당연히 전투 장면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우르르 몰려가 칼 몇 번 휘두르다 죽거나 승리 후 환호성을 지르는 식이었다. 실제 지옥과도 같은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병사들임에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고려거란전쟁'은 병사들의 관점에서 전투를 바라보며, 그들이 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담아냈고, 생사가 오가는 아비규환 속에서 그들이 마주한 두려움과 공포까지 생생히 그려내려 노력했다. 물론 전장의 장수들의 카리스마와 집념도 균형감 있게 표현했다. 앞서 앞서 양규(지승현)의 활약상도 영화처럼 담아내지 않았던가. '고려거란전쟁'은 그 무게중심을 영리하게 잡아냈다.

'고려거란전쟁'은 귀주대첩의 전투 장면에 약 30분 가량을 할애했다. 승부수는 통했다. 시청자들은 영화와도 같은 전투 장면에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고려의 승리에 함께 환호했다. 한 방이 통한 것이다. 그동안 '고려거란전쟁'은 '고려궐안전쟁', '고려박진전쟁'이라는 오명을 들을 만큼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원작자와 갈등을 빚기도 했고, '역사 왜곡'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힘을 바탕으로 한 엄정한 중립, 그것이 우리 고야가 두 대국 사이에서 평화를 지켜 나가는 길이오." (현종)


솔직히 의아했다. 왜 드라마 제목을 '강감찬'으로 짓지 않았을까. '사극의 신'이라 불리는 최고의 배우 최수종을 캐스팅하고서 말이다. 어째서 KBS2 '태조 왕건'이나 '대조영' 등과 같이 한 인물에 집중해서 그의 일대기를 다루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훨씬 더 몰입도 있게 드라마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풀리지 않는 의문은 마지막 회를 통해 해소됐다.

김한솔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고려거란전쟁'을 강감찬만의 전쟁이라 생각하지 않고, 고려 전체의 전쟁이라 판단했던 듯하다.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서 얻어낸 승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원성황후(하승리)는 원화황후를 비롯한 황실 여인들과 궁인들 모두 함께 갑옷을 만들며 '합심'을 강조하고, 현종(김동준)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자 승리할 것이라 확신한다.

제작진은 고려의 구심점으로 현종을 제시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는 현종의 성장이 필요했다. 초반에 현종을 철부지처럼 묘사한 것은 그 때문이다. 또, 나주 몽진, 김훈/최질의 난 등 몇 가지 사건을 통해 현종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아냈다. 다만, 그 과정에 설득력이 부족해 현종 캐릭터가 '금쪽이'에 비교되기도 하고, 분량 조절에 실패해 강감찬이 소외되기도 했다.

마지막 회의 퀄리티로 패착을 어느 정도 만회하긴 했지만, 불필요한 역사 왜곡으로 상흔을 입은 건 안타깝기만 하다. '현종의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그의 평생 반려자인 원정황후를 악역으로 몰아가고, 가상의 인물 박진을 설정한 부분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불필요한 장면들을 빼버리고 '전쟁'에 좀더 집중했다면 만듦새가 더 좋지 않았을까.

물론 제작비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 예상된다. 270억 원이라는 큰 제작비를 투자(회당 제작비 8억 5천 만 원으로 정통사극 중 최고이다.)받았지만, 완성도 높은 전투 장면을 구현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인 것도 사실이다. 중반의 엉성한 전투신과 CG는 유종의 미를 위한 집중과 선택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회차를 줄여 퀄리티를 높이는 방안도 모색해 봄직하다.)

여러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정통사극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고려거란전쟁'은 의의가 큰 작품이다. 최수종을 비롯한 수많은 배우들은 '고려거란전쟁'이 많은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드라마를 지켜냈다. 그들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또, 정통사극에 대한 애정으로 드라마를 완주한 시청자들이야말로 일등공신이다. 13.8%의 시청률은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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