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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굿와이프>는 이제 막 예열을 마쳤다

너의길을가라 2016. 7. 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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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하다


4회까지 진행된 tvN 금토드라마 <굿와이프>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다. 방영과 동시에 '웰메이트 드라마'로 '찬사(讚辭)'를 받고 있는 드라마에게 고작 '노련하다'는 칭찬을 하는 게 다소 약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표현이야말로 <굿와이프>를 위한, <굿와이프>에 가장 적절한 찬사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이 드라마는 하나에서 열까지 능수능란(能手能爛), 노련함의 극치다. 



드라마의 '중심'에 서서 모든 출연 배우들과 '합'을 이루며, 급기야 각각의 개성을 살린 '조화'까지 이끌어내는 전도연의 연기는 평가 불가(不可)의 대상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그는 다양한 감정들을 원숙하게 표현해내고, 어느 때는 자신이 돋보였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상대 배우를 빛나게 한다. <굿와이프>에서 전도연은 연기의 강약과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화면 속으로 관객들을 완벽히 몰입시킨다. 그 노련함은 상상 그 이상이다.


여기에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유지태의 절제된 연기가 보태지고, 이제는 '배우'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윤계상의 무르익은 연기도 드라마의 밸런스에 기여한다. 김서형은 '커리어 우먼'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감탄을 자아내고, 김태우도 차별화된 악역을 무리없이 소화한다. 급기야 민폐만 안 끼치면 다행일 거라 생각했던 나나도 (전도연의 지도 덕분이라고는 하지만) 적절한 연기로 드라마에 향기를 불어넣는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제작진의 '노련미'가 돋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굿와이프>는 2007년부터 C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동명의 미국 드라마가 원작이다. 7시즌을 이어오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런 미드를 '리메이크'한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정서적 공통점이 많은 일드의 리메이크도 성공률이 절반인데, 전혀 다른 정서를 바탕으로 한 미드를 각색한다니 그야말로 모험 아닌가?


그런데 <굿와이프>는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세심한 준비를 했다는 뜻이리라. 원작의 '알리샤(줄리아나 마굴리스)'가 '김혜경(전도연)'으로, '피터 플로릭(크리스 노스)'이 이태준(유지태)으로 바뀌었지만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애초에 김혜경과 이태준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또, 시어머니와의 관계 설정(원작에서는 원만하지만, 리메이크 과정에서 틀어진 관계로 수정됐다)이라든지 자녀들에 대한 내용들도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적절히 바뀌었다.



제작진의 노련함이 더욱 두드러지는 부분은 극의 흐름을 '조율'하는 능력이다. <굿와이프>는 회차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시작하고 마무리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각 사건마다 임팩트가 강할 뿐더러 그 완성도도 매우 높기 때문에 고작 4회가 진행됐을 뿐인데 영화 4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에피소드들이 사실 하나의 줄기로 엮여 있고, '진실'로 나아가는 중요한 힌트로 작용한다는 점은 놀랍기만 하다.


등장 인물들의 '밸런스'를 '조율'하는 것도 감탄스럽다. 아무래도 1, 2, 3회는 잘 나가던 검사인 남편 이태준이 섹스 스캔들(과 정치 스캔들)로 구속되자 아내인 김혜경이 '변호사' 일을 시작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때문에 포커스가 '김혜경'에게 맞춰져 있었다. 또, MJ로펌의 공동 대표이자 서중원의 누나 서명희(김서형)와 로펌 조사원 김단(나나)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며 드라마를 꽉 채웠는데, 이처럼 여성 캐릭터들이 전면에 활약했다. 



"냉정해. 서중원이, 지나치게 냉정한 변호사야. 계속 이 일 하다보면 자네도 알게 될 걸세."


"그 영상은 눈가리개일 뿐이야. 그 친구 수사 도중 배신 당했어. 다들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빴던 거지. 나도 많이는 몰라. 하지만 조심하게나. 이번 일에 관련된 자들 위험한 자들이 많아. 이태준이 이해 못할 일을 하더라도 좀 봐줘. 그런 자들과 싸우면서 가족이든 자신이든 뭔가를 지켜려다보면 어딘가는 망가지게 돼 있으니까."


이제 바통을 남성 캐릭터들이 이어받으면서 무게의 추가 어느 정도 맞춰진 느낌이다. MJ로펌의 창립자인 서재문(윤주상)을 등장시킨 3회는 사실상 개별적인 에피소드인데, 그를 굳이 등장시켜야 했던 이유는 한 가지다. 선악을 가늠할 수 없는 서중원에 대한 암시를 던지는 동시에 이태준에 대한 (김혜경과) 시청자들의 '판단'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가 사라지면서 서중원과 이태준에 대해 남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두 캐릭터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그러니까 <굿와이프>는 이제 '예열(豫熱)'을 끝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벌어질 예측불허의 전개를 위해 달려나갈 준비를 마친 셈이다. 4회는 보석으로 풀려난 이태준이 가족에게 되돌아 오면서 끝을 맺는다. <굿와이프>의 핵심적인 '갈등'의 키를 쥐고 있는 이태준이 전면에 등장하는 5회부터는 그야말로 '전쟁'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3회의 끝에서 이태준과 서중원이 서로를 묘한 표정으로 응시하던 장면은 앞으로의 전개에 어떤 식으로 활용될 것인가. 또, 사법연수생 시절 김혜경의 비밀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10년의 노하우가 쌓아올린 '노련함'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시그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렇듯 '쫄깃한' 드라마를 또 다시 만들어 낸 tvN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이 정도로 '노련한' 드라마라면 기꺼이 포로가 되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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