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雇傭勞動部, Ministry of Employment and Labor). 이젠 익숙해진 명칭이라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기괴(奇怪)한 이름이 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름'에는 그 대상의 정체성(正體性)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고용 + 노동'부"라는 명칭에 담겨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도대체 고용노동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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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용노동부가 그 이전에 '노동부'라고 불렸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잠시 그 역사를 되짚어보자. 1963년 보건사회부 노동국은 노동청으로 개편 · 신설됐고, 1981년 4월 8일 노동부로 승격되기에 이른다.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는 '존재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노동부'만큼 더 적합하고 명확한 명칭이 또 있을까?
설령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명칭만큼은 딱 맞아떨어졌던 '노동부'가 MB 정부 시절 대대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다분히 친(親)기업적이었던 MB 정부는 지난 2010년 7월 5일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라는 이율배반적(二律背反)인 이름으로 바꿔버렸다. 그것도 노동 앞에 '고용'을 덩그러니 붙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부 내 고용정책 총괄 부처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고용정책의 총괄" 기능을 명기하고, 산업재해 예방 및 근로자 건강보호 등 중요성을 고려하여 "산업안전보건" 기능을 추가하는 등 관장사무 중 일부를 수정ㆍ보완하고 명칭을 고용노동부로 개칭했다.
자본과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재계에 비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서있는 노동자를 보호 · 대변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정책을 입안해야 할 노동부가 '고용'이라는 이름이 덧씌워지면서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고용은 정부가 주도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고용정책을 총괄한다는 것은 결국 기업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이름도 노동고용부가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아닌가? 어디에 방점이 찍혀있는지는 뻔하다. 정책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를 예측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줄임말도 '노동'은 쏙 빠진 채 '고용부'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 노동은 사라졌다. 그리고 정부 내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줄 기관도 사라졌다. 결국 노동자의 설 땅이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일까? 고용노동부와 관련된 기사는 이런 식이다.
'학점 인턴' 부당 착취.. 감독 손 놓은 고용부 <세계일보>
"아이돌보미는 근로자 아냐" 고용부의 변심 <한국일보>
과연 고용노동부는 '고용자'의 편일까, '노동자'의 편일까? 고용노동부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 이름만큼이나, 그 조직은 모순적이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니 급기야 기업이 직원 1명을 고용하면 월 평균 467만 원을 부담하게 된다는 조사를 하기에 이른다. '고용'이 노동을 압도한 결과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직원 1명이 기업에 벌어다주는 이익은 얼마나 될까?
한때 '경제 민주화'를 부르짖던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만약 경제 민주화가 목적이라면 개혁의 대상은 마땅히 '재벌'이 되어야 하지만, 정부의 칼날은 어느새 낭떠러지로 몰려있는 노동자를 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강변하지만, 과연 지금의 노동자들이 '개혁'당할 만큼, 무언가를 내줄 만큼의 여유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방향성은 '고용'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에 맞춰져야 한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법정 노동시간을 보장하게 되면,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일자리가 190만 개라는 연구 결과(한국노동연구원, '장시간 노동과 노동시간 단축(1)', 2012년)도 있지 않은가?
ⓒ 한겨레
무엇보다 더 중요한 화두는 '재벌 개혁'일 것이다. 시장의 독점과 재벌의 지배 구조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경제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롯데가(家)의 경영권 분쟁은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제들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정부 내 부처가 전무(全無)하다는 것이다.
급기야 고용(노동)부는 정부의 '노동개혁'에 맞서기는커녕 총대를 메고 있는 형편이다. 아니, 그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기댈 곳 없는 이 땅의 노동자들은 과연 어디까지 밀려나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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