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에서 발췌 -
강준만이 누구인가? '안티조선운동'의 최전선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였고, '성역은 없다'며 실명 비판을 통해, 조용하기만 했던 학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을 들썩였던 투사(鬪士)가 아니던가? 또, 역작이라고 일컬어지는『김대중 죽이기』를 통해 정치인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전략가이기도 했다.
물론 옛날 이야기다. 최전선에서 너무도 홀로, 외롭게 싸웠기 때문일까? 언제나 맨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맞아내고, 때로는 같은 진영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에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또, 자신의 과잉 혹은 헛발로 고역을 치르기도 했는데, 이러한 상처들이 누적되면서 심각한 내상을 입은 듯 하다. 이제 그 뜨거웠던 강준만을 다시 만날 수는 없으리라. 물론 중후한 나이에 접어든 강준만에게 젊은 날의 강준만을 바라는 것이 과한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그 역할은 또 다른 젊은이들의 몫일 것이다.
최근 강준만의 노선(?)은 철저히 '실용적'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쿨'한 것이다. 뜨거운 강준만을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그것이 반드시 우울한 소식은 아니다. 강준만이 '교양' 서적을 저술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오히려 더욱 큰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전18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 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한국 현대사와 근대사를 다룬 '산책' 시리즈에 이어 '미국사 산책'은 강준만의 일생일대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기획과 내용이 압도적이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강준만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편집증적'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강준만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혹, 그의 존재 자체가 선물일까?
『미국사 산책』을 통해 미국 역사를 전반적으로 그려냈지만, 강준만은『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를 써냈다.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물론 이 책에는 『미국사 산책』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아마 익숙한 분들도 있을 텐데,『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는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했던 '주제가 있는 미국사'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강준만은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의 책이 이렇게 읽히기를 원한다고 적고 있다.나는 미국을 실용적으로, 쿨하게 볼 것을 제안한다.
나는 미국을 실용적으로, 쿨하게 볼 것을 제안한다. 그런 자세는 미국을 보는 내 기본적인 시각이며, 이 책의 기조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 관련 글만 보면 "이 글을 쓴 사람은 좌야 우야? 반미야 친미야?"라고 따져보길 좋아하는 일부 한국인들의 습성은 보기에 딱하다. 그런 이분법으로 보자면, 이 책엔 반미적인 글도 있고 친미적인 글도 있지만, 제발 그런 조잡한 이분법 좀 버리자는 게 이 책의 취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강준만의 명암법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는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프런티어 문화
제2장 아메리칸 드림
제3장 자동차 공화국
제4장 민주주의의 수사학
제5장 처세술과 성공학제
제6장 인종의 문화정치학
제7장 폭력과 범죄
프런티어 문화나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내용은 수많은 책에서 언급됐던 부분이기 때문에 크게 흥미가 있진 않았다.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책의 진가가 드러났다. 카네기와 나폴레옹 힐, 그리고 개신교 목사들이 주축이 된 처세술과 성공학에 대한 부분은 최근 '힐링' 열풍과 연관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소위 지식인들은 '힐링'이라든지, 혹은 '처세술', '성공학'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노력을 강조한다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필자 역시 시스템과 환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현혹'이며 '사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힐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힐링'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사회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정작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그들의 존재가 또 다른 현혹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제7장에서는 최근 논란이 됐던 '개인 총기 소유'를 둘러싼 갈등, 민간화된 교도소로 대변되는 '범산복합체', 전쟁과 군산복합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역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총기 규제를 둘러싼 미국 내부의 갈등은 단순히 미국총기협회(NRA)의 로비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리고 미국총기협회(NRA)가 가장 온건한 단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우리는 총기 규제를 놓고 벌어지는 싸움을 단순히 '이익' 때문이라고 간단히 치부하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이 인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경험, 그것을 견제해야 한다는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것을 과도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내면에 체화된 것들 혹은 유전자에 각인된 것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대한민국에 가장 중요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동맹국(?)으로서 군사적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미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 전반의 거의 모든 시스템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오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아는 것, 미국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 앎과 이해에 강준만의『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이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미국사를 '뚫은' 강준만의 다음 타깃은 무엇일까? 혹시 중국은 아닐까?
'버락킴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뻐꾸기의 알은 누구의 것인가』, 인생은 유전자에 각인된 것일까? (0) | 2013.12.30 |
---|---|
『살인자의 기억법』, 쉽게 읽을 것을 '강요'하는 책 (0) | 2013.12.29 |
『점과 선』, 선입견이 만들어 낸 맹점을 꼬집다 (0) | 2013.12.08 |
『표창원의 사건추적』, 처벌 강화보다는 예방을! (0) | 2013.11.24 |
『솔로몬의 위증』, 오로지 진실을 찾기 위한 아이들의 사투 (1) | 2013.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