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히는 책. 쉽게 잃히도록 쓰인 책. 쉽게 읽을 것을 '강요'하는 책.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호흡이 빠르다. 듬성듬성(?) 쓰여져 있다. 문장이 간결하며, 문단도 간결하다. 불필요한 묘사도 없다. 말하자면 직구, 직구, 직구다. 속도감이 빠르다. 순식간에 읽힌다.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도 좋다. 게다가 책도 두께도 얇다. 고작 176 페이지라니!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마주할 때와는 긴장감부터가 다르다. '후딱 해치워 버릴까?'라는 '자만(自慢)'이 고개를 들이민다.
그렇게 가뿐 호흡으로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 순간 '어라?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는 '아, 당했다!'라는 묘한 쾌감이 자리잡는다. 스릴러 영화에서 더할나위 없는 반전을 선물해준 감독에게 괜시리 고마워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김영하는 소설 속에 몇 가지 트릭을 숨겨 뒀다. 우선,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라는 주인공에 대한 설정 자체부터 하나의 트릭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문화평론가 권희철이 책의 말미에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두었으니, 트릭이 궁금하신 분들은 소설을 완독한 이후에 자연스럽게 읽어보면 될 것이다. 물론 그 트릭을 소설을 읽는 도중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리한 작가는 이 이야기를 쉽게 읽히도록 써두었기 때문이다. 문장이 무겁거나, 복잡했다면 그만큼의 속도감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치를 채기엔 쉽게 읽힌다는 '자만'이 너무도 크다.
따라서 『살인자의 기억법』을 '잘' 읽는 독서법은 그냥 '자연스럽게' 쉽게 읽는 것이다. 그리고 뒤통수를 세게 맞고,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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