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전력이 훨씬 부족한 약팀이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있다. 가령, 지난 2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허더즈필드가 맨유를 상대로 2 : 1 승리를 거둔 경기가 대표적이다.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스포츠에선 이런 일들이 가끔 벌어진다. 영화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추석 극장가를 떠올려보자. 출연 배우들의 이름값, 배급사의 규모와 스크린 숫자 등에서 한참 밀렸던 <범죄도시>가 <남한산성>을 넘고 추석 극장가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범죄도시>는 여러모로 관객 동원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범죄도시>는 돌풍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는데, <범죄도시>의 선전을 넘어선 완승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남한산성>이 기대와 달리 379만 9,205명을 동원하는 데 그치며 손익분기점 500만에 한참 못 미치는 스코어로 문을 닫게 된 것과 대조적으로 <범죄도시>는 500만 관객을 돌파(528만 7,856명)하며 <토르: 라그나로크>에 이어 여전히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있다.


ⓒ키위미디어그룹


이와 같은 예상밖의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두 영화의 차이점에서 그 까닭을 도출해 보자면 역시 '카타르시스의 유무'에 정답이 숨어있는 듯 하다. <남한산성>의 경우에는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관객들의 입장에선 쾌감을 느낄 여지가 없었다. 반면, <범죄도시>는 장첸(윤계상)이라는 극악(極惡)의 캐릭터를 설정해두고, 강력반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이를 철저히 깨부수는 카타르시스를 완벽히 보여주고 있다. 그 쾌감은 극상(極上)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범죄도시>는 어떻게 극상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균형'이다. 범죄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악역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면적이고 색깔 없는 악역은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파멸이라는 뻔한 결말을 향해 수직 강하한다. 13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베테랑>의 성공에 조태오(유아인)라는 매력적인 악역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범죄도시>에는 역시 장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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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범죄조직 보스 장첸은 완벽한 악인이다. 그야말로 극악무도하다. 사람을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고, 기본적인 윤리의식도 없다. 도끼를 들고 '니 내가 누군지 아니?'라고 묻는 그의 살범함과 잔혹함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강윤성 감독은 '악인을 악인처럼 보이게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고, 윤계상은 그 원칙을 100% 소화했다. 영화 속에서 윤계상은 장첸 그 자체였다. 악역이 탄력을 받자 극의 균형이 맞아떨어졌고, 이는 곧 팽팽한 긴장감이 돼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당연히 결말 부분의 카타르시스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블리' 마동석의 활약도 눈부셨지만, 첫 악역을 맡은 윤계상의 변신은 놀라웠다. 머리카락을 붙여 장발을 연출하고, 수염을 기르고 체중을 불렸다.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사실감을 높였다. 장첸 역에 몰입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티가 역력했다. 준비는 곧 실전의 힘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캐릭터와 혼연일체된 상태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표정, 몸짓, 대사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저리 신이 나 연기하는 배우가 스크린 속에 있는데,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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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윤계상을 악역의 카테고리에 넣어놓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악역을 향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잘 안 들어온다. 순한 외모 때문인 것 같다"고 스스로도 밝혔듯이 눈웃음이 선한 그에게 다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윤성 감독은 윤계상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착해보이고 선한 역할만 했던 윤계상이 그려내는 악역은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고 설명했는데, 과거 박찬욱 감독이 이영애에게서 '금자'를 발견했던 것처럼 그 판단이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god 출신인 윤계상은 1세대 아이돌이자 1세대 연기돌이다. <발레교습소>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꾸준히 작품을 찍어 왔다. <비스티 보이즈>(2008), <집행자>(2009)<풍산개>(2011), <소수의견<(2013) 등 다양하고 의미있는 영화들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하지만 흥행작이 없었다는 점은 스스로도 아쉬웠으리라. 하지만 <범죄도시>를 통해 흥행에 대한 아쉬움을 깨끗하게 털어냈다. 인생 캐릭터와 대표작을 손에 거머쥔 윤계상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까. 그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