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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만 남은 <푸른 바다의 전설>, 초반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6. 11. 1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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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사랑'에 빠져야 할 대상은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인물)'다. MBC <W>에서 잘 표현됐듯이 작가는 캐릭터를 창조한다. 출생부터 외모, 성격, 말투, 습관까지 캐릭터의 모든 것은 작가의 세심한 손길을 거친다. 마치 오성무가 강철을 만들어 냈던 것처럼. 하지만 '창조된' 캐릭터는 그 순간부터 살아 움직인다. 어느 순간, 강철의 의지가 오성무의 컨트롤을 거부했던 것처럼. 그리하여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이끄는 건 온전히 '캐릭터'의 몫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글로 옮기면 그뿐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을 이야기하려던 참이다. 이 드라마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어'가 천재 사기꾼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사건들을 다룬 판타지 로맨스. '인어'라고 하는 동화 속 존재를 드라마로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되긴 했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그 인어 역할을 '전지현'이 맡았다는 것과 그가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 '이민호'라는 사실이었다. 위기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배우가 캐릭터를 압도하는 상황 말이다.



1회 방송이 전파를 타자 언론은 전지현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사람에게 잡혀와 연못에서 그 자태를 드러내는 장면은 압권이었고, 바다 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상상 속 인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상대 배우를 바라보는 눈빛도 원숙해졌고,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전지현이 빛난 만큼 시청률도 대박이 터졌다. 1회 시청률 16.4%, 경쟁작들을 가볍게 제쳤다. 2회에서 20%를 넘을 거라는 '설레발'을 치는 언론도 눈에 띠었다.


하지만 시청자의 반응은 달랐다. '손발이 오글거린다', '내용이 유치하다', '몰입이 안 된다', '이야기가 산만하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상당수였다. 이를 외면했던 언론들의 헛발질은 곧 밝혀졌다. 2회 시청률 15.1%로 하락한 것이다. 전지현의 매력을 앞세우고(이민호도 '잘생김'으로 서포트했다),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로 뒷받침한 부분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역시 '캐릭터'가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배우 '전지현'은 살아있지만 그가 연기하는 '인어' 심청(전지현)의 캐릭터가 죽어버렸다. 허준재(이민호)의 노트북으로 한국어를 습득하기 전인 1회와 2회 중반까지 대사가 없었던 만큼 캐릭터의 매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는 건 차치하고, 기존에 그가 연기했던 다른 캐릭터들이 '짬뽕'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따라 포즈를 취하고, 스파게티를 손으로 집어 먹거나 티슈를 뽑는 걸 신기해 하는 행동들은 자연스레 <엽기적인 그녀>가 떠오른다. 


또, CF에서나 나올 법한 '나 사랑스럽지?'라는 표정들은 SBS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가 오버랩 된다. 물론 전지현이 가진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결국 그 책임은 박지은 작가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박 작가는 SBS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과 한번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를 활용하는 방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을 것이다. 또, 전지현을 가장 예쁘게 표현하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알고 있음'이 이번에는 독이 돼버렸다.



순간순간 '전지현'은 돋보이지만, '심청'은 온데간데 없는 주객전도는 작가가 이야기(극본) 속의 캐릭터에 집중하지 못하고 현실의 '배우'를 의식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더군다나 박지은 작가가 창조한 '심청'은 당당하고 주체적이었던 '천송이'와 달리 남자 주인공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로 그려진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기다려'라는 말을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말"이라 새기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여자 주인공의 행동은 귀엽고 사랑스러워야 하고, 그를 보호해주는 상대를 향해 예쁘게 웃어야만 한다. 


이쯤에서 이민호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여보자. '평타'를 치고 있긴 하지만, 그의 연기는 애석하게도 SBS <상속자들>의 '김탄'을 떠올리게 만든다. 제벌 3세라는 설정이 사기꾼으로 바뀌었을 뿐, 까칠한 말투나 '츤데레'스러움은 판박이처럼 그대로다. 이민호와 전지현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드라마'라기보다는 화보나 CF 촬영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캐릭터'보다 '배우'들이 돋보이기 때문이고, 그 책임은 '캐릭터'를 사랑하기보다 '배우'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작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SBS <질투의 화신>, KBS2 <공항가는 길>, MBC <쇼핑왕 루이>가 뜨거운 승부를 펼쳤던 한 차례의 '수목극 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매치업이 시작됐다. 초반에는 <푸른바다의 전설>이 앞서나가는 모양새지만, 지금처럼 '혹평'이 계속 이어진다면 새판이 짜여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처음엔 주목받지 못했던 <소핑왕 루이>가 보여줬던 '역주행'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KBS2 <오 마이 금비>와 MBC <역도요정 김복주>가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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