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낭만닥터 김사부>, 강동주가 터뜨린 청년세대의 울분

너의길을가라 2016. 11. 16. 15:53
반응형


강동주(유연석)는 흙수저다. 그러나 금수저처럼 살고 싶었다.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던 건 그 때문이다. VIP에 밀려 먼저 병원에 도착했음에도 외면당해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가난 탓이었다. 그 경험은 강동주의 인생을 뒤바꿨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의대에 들어갔다. 의대에서 6년, 인턴과 수련의 과정 5년, 11년 동안 '인정'받기 위해 처절히 싸웠다. 높으신 분들의 눈에 들기 위해 애썼다. '전국 1등'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말이다. 성공과 출세, 오로지 그것만 바라보고 달려왔건만, 금수저들의 벽은 높디높았다. 



"지랄 맞은 케이스인가보죠. 잘못 됐을 때 뒤집어 씌울 만만한 사람이 필요했고, 그게 나인 거고"

"그때 응급실에 쳐들어와서 몽땅 깨부순 게 자네 맞지. 까다로운 케이스야. 잘해봤자 수술로 성공 확률 30% 미만. 기회를 잡으려면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해야지. 그 정도 배포도 없이 나랑 맞짱 뜨겠다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건 아니겠지?"


전문의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병원장 도윤완(최진호)의 아들 도인범(양세종)에게 쏠렸다. 이러한 현실에 강동주는 "차별의 시대, 실력보다는 연줄과 배경이 지배하는 시대, 생명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미덕이 있어야 할 병원에서조차 여전히 21세기판 성골 · 진골이 존재했다."는 씁쓸한 독백을 내뱉는다. 여전히 성공이 배고팠던 강동주는 먼저 대기하고 있던 환자를 미루고 VIP 응급 수술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취한다. 욕망을 좇고자 부당함과 부조리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수술 성공률은 애초에 성공률은 30% 미만이었다.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 했던 강동주는 결국 수술에 실패한다. 성배는 사라지고 독만 마신 꼴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부정한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강동주는 곧바로 거대병원(거산대학병원)의 분원 '돌담병원'으로 좌천된다. 그곳에서 만난 김사부(한석규)는 실력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의사가 분명하지만, 계속해서 강동주에게 독설을 내뱉는다. 자신의 억울함을 이해해주지 않고, 되려 출세욕에 찌든 한심한 청년이라 여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화상 환자를 맞아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냈지만, 김사부에 의해 의사 자격을 박탈당한 윤서정(서현진)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넌 그냥 순발력 없는 겁쟁이뿐이야."라고 무시를 당한다. 급기야 김사부는 강동주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기를 쓰고 전국 수석 보드 따는 것도 그렇고. 죽자사자 거대병원이라는 타이틀에 목메는 이유도 다 그런 거 아니겠냐. 그런 거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열라 겁나니까." 여기까지 듣고 참을 수는 없다. 강동주는 가슴에 쌓여있던 울분을 쏟아낸다.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 따위로 말해. 함부로 지껄이는 건데. 나보다 나이 먹고, 많이 살면 그럼 다 아는 거야? 나이 많은 어른이면 새파랗게 젊은 놈 그렇게 함부로 무시해도 되는 거잖아. 아니잖아. 당신이야말로 나에 대해 쥐뿔도 모르잖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막말하는 거 아니지. 어른이란 사람이" 강동주의 분노는 곧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고된 청춘들의 것이었다. 그래서 공감의 깊이와 파장은 훨씬 컸다. 



하지만 김사부는 여전히 강동주를 '가짜'라고 몰아세운다. 더 이상 참지 못한 강동주는 김사부를 향해 달려든다. 두 사람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마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깊은 갈등을 보여주는 듯 했다. 결국 강동주는 회의 중인 원장실을 찾아가 원장(여운영)과 김사부, 행정실장 장기태(임원희), 수간호사 오명심(진경)이 보는 앞에서 사직서를 내던진다. 그리고 김사부를 응시하며 그동안 참아 왔던 청년세대의 분노를 터뜨리며 일갈한다. 


"실력 대단하신 것도 알겠고, 잘나신 것도 잘 알겠는데요. 그런데 선생님이야말로 당연한 걸 너무 대단한 척 꼰대질하고 살지 마십시오. 네, 맞습니다. 저요, 말씀하신 대로 겁쟁이에 멍청한 새낍니다. 전국 수석, 거대병원 타이틀, 그런 거라도 기대지 않으면 열라 겁나서 죽어라 공부한 것도 맞고요. 출세하고 싶어서 줄타기 하려 했던 것도 맞고요. 참 비굴하고 못생기게 살아온 거 다 맞는데요. 그런데, 이 세상을 그 따위로 만든 건, 다 당신 같은 꼰대들이잖아! 나 같이 쥐뿔 가진 것도 없는 놈들이 그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뭣도 될 수 없게끔 세상 만들어 놓고, 그래놓고 우리 보고만 겁쟁이다 멍청하다 눈 내려깔고 비난만 하면 답니까. 제대로 사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제대로 살라고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역겨우니까."


강동주의 저 외롭고 안쓰러운 외침처럼,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삶을 통해 배워간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말은 교과서에나 적혀 있는 '박제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죽어라 '노력'해도, 그래서 '실력'을 갖춰도 애초에 '흙수저'는 끝까지 '흙수저'일 뿐이다. 동일하지 않은 출발선에 서서, 동일하지 않은 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실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배경'이 아니던가. 과연 그 누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또 각박한 현실을 몸소 경험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 세상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동주처럼 줄타기를 하거나 비굴하고 못생기게 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그들을 향해 너무도 쉽게 비난한다. '노력이 부족하다', '의지가 부족하다', '우리가 젊었을 땐 그러지 않았다' 강동주의 저 뜨거운 열변은 절망과 좌절을 몸으로 체험하며, 생존을 위해 현실에 순응하는 방법을 터득한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또, 배경이 실력에 우선하고, 온갖 특혜가 노력을 우습게 만드는 이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원망과 한탄이 담겨 있기도 했다.



김사부는 어린 시절의 강동주에게 건넸던 조언을 다시 반복한다. "네가 시스템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고 그런 세상을 만든 꼰대들을 탓하는 거, 다 좋아. 좋은데! 그렇게 남 탓해봐야 세상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정말로 이기고 싶으면 필요한 사람이 되면 돼. 남 탓은 그만하고  실력으로! 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보다 더 적절한 조언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말을 이 시대의 강동주들에게 할 자신이 없다.


남 탓을 해봐야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바꾸는 일이다. 1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가 고교시절 광범위한 특혜를 받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이화여대 입· 재학 시절과 승마 선수로서 온갖 특혜를 받았던 사실도 밝혀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는 '엄마'의 치맛바람 덕분에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비호까지 받을 수 있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의경 시절 '꽃보직'인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는 의혹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뿐이겠는가. 아들과 딸, 혹은 친족들에게 특혜를 준 사례를 수두룩 하다. 정계, 재계, 문화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거늘, 과연 '남 탓해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아.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라고 조언하는 게 온당한 것일까. 물론 내가 바뀌는 것이 첫걸음이겠지만, 그리하여 가닿을 세상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우선이다. '나'보다' '사회'를 말하는 것이 먼저다. 


이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나도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도 바뀌지 않는다.


반응형